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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있는오솔길/이런저런모임

분단,그리고 현재는..판문점을 다녀와서../16년12월22일(목)

  

 

 

겨울을 재촉하는 빗발이 내리던 12월 22일(목요일)..

 

 올 마지막 추억만들기 행사는 판문점 견학이다

아무때나 쉽게 갈 수 없는 판문점 견학이라 관심도 높고 공동경비구역과

 북한 접경지역을 직접 밟아 본다는 설레임은 나이 들어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신분증은 필수 지참목록이고  복장도 기준에 맞게 갖추어야 한다 

 

평소 출근시간보다 빠른 아침 7시, 회사앞에서 출발.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는데

자유로가 유난히 막혀 지나다 보니 도로옆에 사고 차량이 서있다.

 

맑지 않은 차창 왼편으로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 보인다.

북한땅이 지척인데 넓지도 않은 이 땅에서 오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픈 마음이 들었는가 싶더니

 8시 40분이 되어 임진각에 도착한다.

 

 주차장에 내리니 실향민들이 설날과 추석 때 모여

합동으로 제사를 지내는 망배단이 눈에 들어 온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안보견학관에 도착했다.

JSA에 관한 역사와 개요를 보여주는 홍보 동영상을 시청하고

이어 인솔병사의 브리핑을 듣고 

 JSA에서 제공하는 대형버스로 갈아타고 이동했다.

 

판문점은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과 북한의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점리에 소재한다.

서울에서 서북방으로 62Km, 북한의 평양에서 남쪽으로 215Km,

개성시로부터는 10Km 떨어져 있다

 

공식명칭은 JSA-Joint Security Area-공동경비구역이다.

유엔군과 북한국의 공동경비구역으로 남북한 어느 쪽도 행정관할권을

가질 수 없는 특수지역이다.

 판문점은 6·25 전에는 널문(板門)이라는 지명으로

초가집 몇 채만 있던 외딴 마을이었다.

  19511953년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곳에 천막을 치고 시작한 휴전회담은 195110월 이래 19개월이나 계속되었고,

휴전회담을 마친 뒤 정전협정 조인을 위해 부근에 목조건물을 지었으며,

 그 후 1km 남쪽의 현재 위치로 다시 이전했다

 

버스 이동 중이나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 장소 외에는

사진을 찍어서는 안된다고 안내 사병이 몇번씩 주의를 준다.

 

판문점 향하는 길에 비무장지대에 사는 대성동마을 주민들이

 농사를 마무리한 공터 논밭들이 조금씩 내리는 빗물에 젖은 차창 좌우로 펼쳐진다

경지정리가  잘 되어있는걸 보니 열심히 농사를 짓는 느낌을 받았다.

 대성동(臺城洞) 마을 주민은  200여명이 거주하면서 UN의 통제를 받는다

마을 주민은 병역과 납세의 의무가 없지만  규제가 심하다

 

북측에는 기정동(機井洞) 선전마을이 있는데 대성동 마을과의 거리는 1.8km.

멀리서 봐도 대성동과 기정동 마을의 국기게양대가 어디에서나 높이 서 있는데

사실은 서로 게양대 높이 때문에 치열하게  경쟁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북측의 인공기 게양대의 높이는 무려 160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양대라고 한다.

 남쪽 대성동마을 국기게양대는 99.8미터인데

아파트 33층 높이이고 태극기는 가로 19미터, 세로 12미터로 엄청나게 크다.

이 태극기가 대성동 마을에 먼저 들어서자 한달 뒤 

북한의 기정동에는 높이 160m의 게양대가 들어서서 기싸움을 벌였다.


 

 

 

 

 

 

 

 

 

 

 

 

 

 

 

드디어 공동경비구역에 도착..

 자유의 집에서 건너편 문으로 나가니 북측의 판문각 건물이 바로 앞에 보이고

영화에서 보던 경비병들이 부동자세로 서서 근무를 하고 있다.

 

북측 판문각과 남측 자유의 집 사이에 작은 집들이 보이는데

파란색은 남측하얀색은 북측 건물이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예전에는 주로 휴전을 관리하는 장소로 이용되었으나,

 1971920일 열린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을 계기로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장소 뿐 아니라

·북한간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 및 남북을 왕래하는 통과지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JSA)이 설치된 이후 처음에는 쌍방 군사정전위원회 관계자들은

구역 내에서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76818일 북한군의 도끼만행사건 이후부터 양측간 충돌 방지를 

위해 군사분계선을 표시하여 경비병을 포함한 모든 군인들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상대측 지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으며,

개인적으로 북한군을 만나거나 말을 거는 것이 금지되었다

 

 회담장 안에서는 북쪽으로 경계를 넘어갈 수 있도록 허용이 되어

 잠시나마 즐거운 기분으로 북한땅을 밟아 볼 수 있었다.

 

 

 

 

 

 

 

 

 

 

 

 

 

 

 

   

 

 

 

 

 

 

 

 

 

 

 

 다시 안보전시관으로..

 

 

 

 

 

 

 

 

 

 

 

 

 

 

 

 

도라 전망대..

도라산의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1000년 사직의 신라국을 삼한 통일을 이룩한

고려의 왕 왕건에게 바치고 고려의 수도인 송악(현재의 개성)에서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 노후를 보내게 된다.

 

낙랑공주는 경순왕의 우울함을 위로하고자 수도 개성에서 20여리 떨어진

도라산 중턱에 암자를 지었고 경순왕은 아침저녁으로 

이산의 산마루에 올라 옛 新羅 도읍 서라벌을 사모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도라산(都羅山)이라는 지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도라산은 서부전선 군사분계선 최북단에 자리 잡고 있는데 개성공단과

개성시 변두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며, 그밖에 송악산·금암골(협동농장

장단역·북한선전마을 기정동·김일성 동상 등이 바라다 보인다.

 

망원경도 관망을 위해서 설치되어 있다.

고려 왕건이 궁궐을 지었던 만월대가 요즘 남북 역사공동발굴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개성공단과 송악산이 바로 코 앞에 보이니 감회가 새롭고 사람이 막아 놓은

 경계선과 통행금지가 얼마나 실없는 일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개성공단과 송악산은 날씨가 흐려 잡히질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정전협정 후에 포로들이 오가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다리였는데 

잡초가 우거져 있고 시골마을의 개천을 건너는 다리처럼 작은 다리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반구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