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선생 생가를 찾아../15년5월31일(일)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은..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다.
김정희 선생이 태어나 성장한곳으로
김정희 선생의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대왕의 사위가 되면서 예산과 서울에 저택을 하사받았다.
1700년대 중반에 건립한 53칸 규모의 양반 대갓집이었는데
1976년에 그 중 일부만 복원해 현재 고택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서울의 저택인 월성위궁은 김정희 선생이 관직 활동을 할 때 주로 지낸 곳이고
예산은 조상의 터전이 있는 곳이라 성묘와 독서를 위해 왕래를 하며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해지며, 주변에 추사의 묘/백송/기념관등이 있다.
추사고택 입구
김정희 선생은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의,
병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거쳤으나 윤상도 옥사 사건으로 당쟁에 몰려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1852년 유배지에서 풀려났지만 1856년 경기도 과천에서 71세 나이로 별세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곳에는 추사가 태어나서 성장한 고택과 추사의 묘,
그리고 추사 기념관과 체험관을 볼 수 있다.
추사고택의 사랑채 댓돌 앞에 눈길을 끄는 물건은 "석년(石年)"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높이가 1m 정도인 돌기둥이다.
고택이 동-서 축으로 자리잡고 있음에 비해 이 돌기둥은 남-북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돌기둥은 해시계 구실을 한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서 이 돌기둥이 그림자를 만드는데,
그림자의 방향과 위치를 보고 시간을 알 수 있다.
옛날에는 시계가 없었으므로 이 돌기둥이야말로 훌륭한 자연시계였을 것이다.
추사선생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石年이라는 글씨도 추사체다.
서명록에 서명한 이들이 거의 한문에 조예가 있는
분들인지 서체가 대단하다.
가문 대대로 이용해 온 추사고택의 우물
기념관으로..
추사선생이 사용한 인장들,
역시 감히 대적할 엄두가 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서체 체험관..
오후 5시가 넘으니 뭉을 닫아 버리고 아무도 없다.
백송공원..
청나라 연경에 사신으로 파견 된 생부를 따라 갔다가 구해온 백송은 본래 가지가 3개였으나
먼저 간 아내들처럼 두 가지는 고사하고 하나만 살아남아 푸른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는 백송이다.
태워주고, 간식주고, 밥사주고 하루를즐겁게 해준
호친구에게 서광 비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