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400년 전 백제인의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용현리 삼존불 (국보 48호)
약 1400년 전 백제인의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마애불을 만나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본 서산 마애불을 친견하러 도착하니
주차공간이 별로 없다. 이곳이 유명세를 타긴 하는구나..!
초입 넓지 않은 공간에서는 먹거리(어족탕)를 시켜
끼니를 해결하려는 이들로 북적이고..
계곡물에 앉아 더위를 식히는 이들도 여기 저기 보인다.
저위에..아, 삼존불이다!
시간이 멈췄다. 동서남북 사방과 위, 아래의 공간도 사라졌다.
세 분의 미소와 나그네들만 존재한다.
3존불은 법화경의 과거불, 현재불, 미래불의
세 부처를 새긴 것으로 추정
이곳 3존불은 석가불인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이 있다.
좌협시는 미륵보살이 확실하나 두 손에 보주(寶珠)를 들고 서 있는 우협시는
관음보살이라는 의견과 제화갈라보살이라는 의견이 있다.
현재불인 석가불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석가불 이전에 성불한 부처들은 과거불,
석가불 이후의 부처들은 미래불이라고 한다.
이곳의 제화갈라보살은 과거불인 연등불이 보살이었을 때,
미륵보살은 미래불인 미륵불이 보살일 때의 모습을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좌우 보살은 각각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둘 다 부처인 셈이다.
그래서 이곳 3존불은 현재불인 중앙의 석가불을 포함하여
왼쪽에 미래불, 오른쪽에 과거불 등 세 부처를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중앙에 서 있는 석가불은 크기, 돋을새김 등에서 중심이 되고..
중앙에 서 있는 석가불은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높은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었다.
3존불의 중심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 주변의 광배와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서 석가불의 위대한 권능은 더 돋보인다.
또, 햇빛이 둥근 얼굴에 내려 앉으면 터질 듯 살이 오른 두 뺨,
살구씨 모양의 눈, 입에서는 자비로운 미소가 흐른다.
그리고 두 손 모양 역시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시무외여원인을 표현하고 있어서 자비로움이 넘친다.
우협시는 석가불이 전생에서 만난 연등불을 보살 모습으로 새긴 제화갈라보살..
법화경에 의하면 일월등명부처는 출가 전 여덟 명의 왕자를 아들로 두고 있었다.
아버지가 성불하여 일월등명부처가 되었다는 소식에
왕자들 모두 출가하여 부처가 되었다.
그 중에서 막내 왕자가 연등불(燃燈佛)이 되었다.
부처가 되기 전 윤회하던 전생에서 석가불은 상인, 왕, 브라만 승려 등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선혜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수행하던 전생에서의 어느 날,
연등불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일곱 송이 연꽃을 공양하고 진흙 길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 연등불이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이에 연등불이 선혜보살에게 부처가 되리라는 예언을 해 주었다.
이렇게 닿은 연등불과 석가불의 인연 이야기는
여러 불교 국가에서 많은 불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는데
이곳 서산에서는 마애불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어린 아이처럼 밝게 웃는 미륵보살은 미래의 희망을 주는 듯하고..
반가(半跏)의 자세로 사유(思惟)하고 있다.
법화경에 의하면 일월등명부처의 여덟 왕자에게 스승인 묘광보살이 있었다.
묘광보살의 많은 제자들 중에 구명(求名)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구명은 경전을 독송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잘 잊어버렸다.
이렇게 수행이 더디었던 구명이 미륵보살이었다.
미륵보살은 먼저 부처가 된 석가불로부터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지금도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이 미륵보살상 역시 소년 같은 체형에 어린 아이 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국보 중 하나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명상에 잠겨 고뇌하고
또, 빼빼 마른 육체가 가늘고 잘 빠진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 보살상은 통통하고 중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듯한 밝은 표정으로 사유를 하고 있다.
[출처] 조선닷컴에서..
저녁은 안산에 있는 "산골미꾸라지매운탕"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