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에서 보낸 4일간의 여름 휴가(첫날).18년8월5일(일)-8일(수)
평창으로 여름휴가지를 가게 된건 호친구 덕분이다.
며칠전 Tv에서 강릉에 거주하는 분들이 평창에 와서
밤을 보내고 출근하는 영상을 보았는데 정말 시원할까..?하는
궁굼증을 갖고 있었던것도 사실이었다.
이런저런 기대속에서 다섯가족이 부부동반으로 10명이
두대의 차량으로 나누어 떠나기로 했다.
특히 현직에 있는 선재아우네가 같이 해준데 대하여 고마움을 느낀다.
아침부터 변덕스런 날씨가 계속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폭염이 이어지는 날씨에 이 또한 얼마나 고마운 단비인가..?
그런데 올림픽도로에서 분당으로 가는 도중에 도로 가운데에서
작은 물체가 차바닥에 따닥하고 부닥치는 소리가 났지만
그런대로 조용하더니 1km 주행하다 타이어가 한쪽으로 기울어 지는 느낌..
긴급출동차를 부르니 한참 지나 차가 온다.
뾰족한 철심끝에 타이어가 빵구난것이다.
타이어가게를 찾아가는등 어찌 어찌해서 그것으로 마무리되어
다행이었지만 출발은 그랬다.
강원지역에 진입하니 자연을 이용한 홍보물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보는 이들에게 2018년에 동계올림픽이 열렸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메밀꽃 필 무렵" 의 이효석 문화관을 찾아서..
강원 평창군 봉평면 효석문학길 73-25
구(지번) 주소봉평면 창동리 544-3 (지번)
차를 주차하고 언덕위에 있는 이효석 문학관으로 향한다.
축제기간에 와서 허드러지게 피어있는 메밀꽃과 추억이 담긴한장의
기념사진이라도 남기면 좋겠지만 번거로움을 피하고 한산할때 와서
한바퀴 둘러보는것도이 지역의 양면을 볼수 있어 괜찮을것 같다.
왼쪽으로 암시를 하듯 물레방아와 연필 모양의 조형물이 보이는
이곳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하고 입장하니..
왼쪽으로 가산 이효석 문학비(可山 李孝石 文學碑)가
자연석을 머리에 이고 서 있다.
오른쪽의 돌속에 있는 스피커에서는 음악이 흘러 나오고..
문학관 건너편에는
전망대가 있어 봉평시내가 조망권이 한눈에들어오면서 9.1~ 9.8일까지
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아직은 이른철이라서 그런지 정작 있어야 할 메밀꽃은 안보이고
파종하기 위해 가지런히 다듬어 놓은 구역의 흙들만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전망대를 지나 문학관 앞에서 기념도 남긴다.
문학관에서는 1907년 봉평에서 태어나 1942년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의 자취를 꼼꼼하게 살필수 있었다.
"메밀꽃 필 무렵"의 대략은..
일찍이 재산을 탕진한 뒤 이리저리 떠돌며 사는
장돌뱅이 허생원의을 중심으로 얘기가 펼쳐 지는데..
장돌뱅이 허생원은 밥집 충주댁에게 농짓거리를 하던
젊은 장돌뱅이 동이를 꾸짖게 되고,
이 일로 두 사람은 어색한 사이가 되나
곧 화해하고 함께 달빛 속에 밤길을 걸어간다.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얗게 피어난 메밀꽃을 보며
허생원은 새삼스럽게 감회에 젖는데,
젊을 적 어느 처녀와 잊지 못할 인연을 맺은 밤도
메밀꽃이 가득 피어난 달밤이었던 것으로,
허생원의 이야기에 이어 동이는 자신의 출생과
어머니에 얽힌 얘기를 털어 놓는다.
그런데 동이가 허생원과 마찬가지로 왼손잡이임이 드러나면서,
소설은 두 사람이 아비와 자식 사이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며 끝나게 된다.
이효석은 그의 대표작인 단편 "메밀꽃 필 무렵"에서
개연성이 옅은 우연의 연속으로 말미암아,
자칫 통속화로 흐를 수도 있는 줄거리를 사건 전환이나
설명에 의존하지 않고 상징과 암시, 여운을 적절하게 사용해,
마치 밑그림이 비치는 담채화처럼 드러내주었다.
"이효석생가터"를 찾아..
생가터를 배경으로..
생가터 옆에있는 "메밀꽃 필무렵"식당
생가터는 지나치고 식당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려고 줄서있다.
이곳이 생가터로 착각할수 있겠다는 생각도..
오찬은 생가터 옆에 있는"봉평메밀꽃향기"식당에서
10여분 대기한후 메밀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메밀국수
반찬은 무우지와 양배추 김치가 전부이다.
음식점 명함이다.
오죽헌을 보기위해 강릉으로..
강릉의 시가지 도로는 참 정리도 잘 되어있었다.
도로 중앙 분리대에 심어논 소나무들은 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이 든다.
오죽헌·박물관에 도착하니..
엄청 덥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오듯한다.
강원 강릉시 율곡로3139번길 24 구(지번) 주소죽헌동 201 (지번)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이 태어난 곳.
사임당 넷째 딸의 아들인 권처균이 집 주위에 까마귀와 비슷한
검은 대나무들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고 한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입장하기전 기념으로..
오죽헌과 박물관이 같이 있다는 안내
입장권을 구매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제일 먼저 눈에 띄이는게 율곡 이이의 동상이다.
<見得思義:이득을 보거든 옳은것인가를 생각하라>
오른쪽에 화단이 있는데 오이, 가지, 원추리등을 심어 조성해놓았다.
신사임당의 그림에서 자주 보아왔던 소재들이다.
"사임당 빛의 일기" 2017년도에 SBS드라마를 오죽헌과 선교장에서
촬영한 기념의 조형물이다. <송승헌과 이영애 주연>
자경문으로 들어가 본다.
경내로 들어가니 넓은 광장이 드러난다.
정면으로 박물관이 있고 오른쪽의 계단을 오르면
오죽헌 몽룡실이 있다.
오천원권 지폐에 새겨진 배경이 바로 이곳..
오른쪽의 계단을 들어가니 문성사가 있다.
율곡 이이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이다.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고,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라는 의미의 문성사는
인조가 율곡에게 내린 시호라고 한다.
오죽헌(보물 제 165호)과 몽룡실
몽룡실에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몽룡실은 한자 그대로 "용의 꿈을 꾼방"인데
율곡 이이를 낳은 장소이다.
신사임당의 그림·글씨·시는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데,
그림은 풀벌레· 포도· 화조· 어죽(魚竹)· 매화· 난초· 산수 등이 주된 화제(畵題)이다.
마치 생동하는 듯한 섬세한 사실화여서 풀벌레 그림을 마당에 내놓아 여름 볕에 말리려 하자,
닭이 와서 살아 있는 풀벌레인 줄 알고 쪼아 종이가 뚫어질 뻔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그림에 후세의 시인·학자들이 발문을 붙였는데 한결같이 절찬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림으로 채색화· 묵화 등 약 40폭 정도가 전해지고 있는데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그림도 수십 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씨로는 초서 여섯폭과 해서 한폭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몇 조각의 글씨에서 그녀의 고상한 정신과 기백을 볼 수 있다.
뒷편에는 오죽이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율곡매(천연기념물484호)
수령이 600년으로 추정된다는 홍매다.
높이가 7m로 율곡이이와 신사임당이 이곳에 살때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손때와 숨결이 깃들어 있는 나무이다.
기둥엔 조선 후기 시,서,화에 능했던 천부척 학자인
김정희가 쓴 추사체글씨들이 보인다.
바깥채와 안채
어제각
율곡이이가 어린시절 사용하던 벼루의 바닥에
정조는 "그를 찬양하는 글을 새기고 소중히 보관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것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이곳의 박물관은 실내전시관으로
율곡기념관, 향토민속관, 강릉시립박물관, 율곡인성교육관이 있다.
율곡기념관으로..
율곡기념관에서 나와 기념으로..
오죽헌 앞문으로 나가면 강릉시립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앞에 있는 신사임당 동상
향토민속관으로..
강릉시장 지하 수산물시장에서..
날씨가 더우니 해산물도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더우기 백암자제분들이 남해에서 문어를 많이 잡아 와서
내일 아침 버스편으로 부쳐준다고 연락왔으니
더 사야할 이유가 없었다.
곰치와 고동을 샀다.
곰치는 탕을, 고동은 삶아서 초장에..
지상에 있는 강릉시장
다섯가족이 합류하여 저녁식사후
대관령 정상의 옛 대관령휴게소 주차장에 가보았다.
피서족들이 곳곳에 텐트를 치고 캠핑카들도 맞대놓고 두집이 담소를 하는등
며칠전 보았든 방송보도와 같이 더위를 피하는 진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밤하늘의 유성별은 흐린 날씨로 별로였다는..
나흘간 묵은 "유덕 휴먼빌"이다.
우리가 위치한 8층은 해발 789m였다.
그러니 새벽에는 추워서 이불을 덮고 자야하는
행복을 주는 그런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