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이야기들/나라뜰헤매기

경복궁가기.. 덤으로 수문장교대식까지../22년6월4일

가잔티 2022. 6. 4. 21:44

 

 

 

청와대 경내에 있는 오운정, 미남불을 보고..

밖으로 나와 옆에있는 궁정동으로 가서 7궁을 보고..

백악산에있는 전망대에 올랐다가..

 

경복궁으로 들어가 본다.

이곳에는 전통 한복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느라 바삐들 돌아다닌다.

 

 

 

청와대 방향에서 경복궁으로 들어오면 처음 만나게 되는게 집옥재이다.

고종이 서재로 외교관 접견 장소로 사용되었던 중국풍 건물이다.

1887년 건청궁과 함께 조선 최초로 전기가 들어왔다는 기록도 남겼다.

 

 

 

 

향원정의 주변은 사계절,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향기가 멀리 퍼져 나간다"는 뜻을 가진 "취향교"라는 구름다리가

견청궁과 향원정을 이어주고 있다.

조선시대에 연못에 놓인 목교로 가장 긴 다리였다고 한다.

 

 

 

 

 

건청궁으로 가본다.

향원정 뒷편으로 깊숙한곳에 있는 건청궁은 

1873년 고종이 사비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주로 국왕과 왕비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외교적인 접대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대문과 창고 사이에 있는 작은 방의 사용처가 궁굼하다.

 

 

 

 

 

곤녕합..

왕비의 거처로 사용된 전각으로 비운의 왕비 명성황후가 1895년 10월 8일

일본인 자객에 시해를 당한 을미사변의 비운의 역사를 남긴 장소이다. 

7년간 왕실 의사로서 왕비를 모신 미국인 엘리스 벙커여사는 

명성황후에 대해 성품이 부드럽고 친절하며 조선 여성의 미인이라고 회상하였다.

 

1895년 2월 청일전쟁이후, 일본이 만주까지 침략하자 조선 왕실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

일본을 국내에서 철수 시키려 하였다.

이에 일본 군부는 왕실을 압박하는 비상사태를 만들기 위해 10월 8일 새벽에

민간인 복장을 한 일본 장교들이 건달들을 끌고 건청궁에 난입하여 왕비를 시해하였다.

 

폭도들은 왕비의 시신을 건청궁 동쪽 언덕 녹산 자락에서 태우고 남은 뼈를 그 자리에 묻었다.

이후, 왕실에서 이를 거두어 경운궁(현 덕수궁)에 시신을 안치하고 국장을 지냈다.

 

 

 

 

 

자선당 기단과 주춧돌

 

 

 

교태전은..

왕비가 거주하면서 궁 안 생활을 총 지휘하던 곳이다.

 

 

 

 

근정전을 돌아보고..

 

 

 

 

근정문으로 나가는데..

 

 

이때 시간이 오후 2시..

주변이 시끌하다.

 

 

 

안내방송이 나오고 경복궁수문장 교대식이 시작된다.

오전 10시, 오후 2시에 교대의식이 있다고 한다.

 

 

 

 

 

 

 

 

 

 

 

 

광화문 광장에 오가는 인파는 "코로나19"를 잊은것 같은 

활달한 분위기여서 덥기는 하지만 같이 몰려 다녔던 시간이 기억에 남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