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회루를 안으로 들어가서 관람하고../22년8월31일
경복궁역 5번 게이트로 나가는 벽면에는 화려한 문양의 그림들이 있다.
시간이 촉박하지 않으면 발길을 잠시 멈추고 감상해도 좋겠다.
고궁박물관을 지나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
경복궁 근정전을 보면서 옆문으로 들어가면 경회루가 보인다.
초창기는 규모가 작은 누각이었으나 1412년(태종 12)에 큰 규모로 중건하였고,
1473년(성종 4)·1474∼1475년·1506년(연산군 12)에 수리공사가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타 버려 1867년(고종 4)에 재건하였다고 하는데
규모는 가로 33m, 세로 28m, 높이는 21m가 되는 누각이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전 예약후, 함홍문에서 출입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함홍문에서 안을 살짝 들여다 보면..
경회루로 들어갈수 있는 교각은 세개가 있는데 들어가면서 왼쪽 문은 해,
중간 문은 달, 오른쪽 문은 별이라 칭하는데, 해는 왕이, 달은 왕실가족, 별은 대신들이나
궁인들의 출입이 가능했던 곳이라 한다.
특이한건 왕이 출입하는 다리는 중앙이 아니고 왼쪽에 있는 문과 석교인데
이는 궁에서 바로 이동할수 있도록 했던것이고 다른 문과 달리 용마루까지 앉아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십여명이 모여있고 해설사의 안내가 시작된다.
경회루의 아래쪽에 있는 기둥은 바깥 24개로 정사각형 단면,
안쪽은 24개로 원형단면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유교적 세계관을 표현한것이라고 한다.
천장의 온통 연꽃 문양으로 되어있다.
서쪽을 바라보시라..인왕산이 보이지 않는가.? 치맛바위애 관한 전설이다.
중종은, 연산군 때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고, 부인은 단경왕후이다.
단경왕후의 아버지는 반정에 가담하지 않은 인물로 중종이 반정에 성공하게 되면서
역적으로 몰리게 되어 처형을 당했고 역적의 자식은 왕후의 자격이 될 수 없다는
대신들의 여론으로 경복궁에 온지 7일만에 폐위되었다고 한다.
중종은 왕후를 그리워하며 경회루에 올라 왕후의 집이 있는 인왕산 자락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 소식을 듣고 슬픔을 감해드리기 위해 자신이 즐겨입던 저고리와 치마를
잘 보이는 바위 위에 걸쳐 놓았다고 하는데서 치맛바위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는것이다.
신발장에서 실내화로 갈아신고 2층으로 올라간다.
2층 마루에 오르다.
당연 높은 단은 왕이 3칸으로 천, 지, 인 사사을 담고 있으며
그 아래로 신하들의 자리는 12칸, 맨 아래 단은 악공 등이 앉는다고 한다.
왕이 앉아계실 때도 경치를 가리면 안 되니 왕의 위엄과 시야차단 방지를 위해 단차를 두웠다고 한다.
연산군때 조성된 인공섬 두곳은 배를 띄우고 기녀들과 흥을 즐겼는데
당시 궁에 들어오는 기녀들을 흥청이라고명명했고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 흥청망청이다.
배를 띄웠던 근거로 이곳에서 배에 올랐던 곳이라고 한다.
해설 투어를 마치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앞에서 안쪽을 관람하는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1997년, 경회루 못 바닥에 쌓인 흙을 걷어내는 작업을 하던 중
11월8일 하향정 동쪽 옆 축대 아래에서 구리합금으로 만든 용이 나와 화제가 되었다.
인부들이 못 바닥에 깔린 큰 돌을 치우자 그 안에서 뻘에 파묻힌 용이 나왔다.
발견 당시에는 용이 좌우로 나뉘고 머리가 없었지만, 며칠 후1 m쯤 떨어진 곳에서 머리가 나왔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중인 용>
안쪽에서 바깥방향으로..
밖으로 나와 경회루를 배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