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문화의 이해, 답사기행] '길상사'를 가다..//24년1월17일
마을버스를 타고 길상사에 도착했다.
1970~1980년대,
요정정치라 불릴만큼 요정은 큰 영향력을 가졌고,
최고급 요정인 '대원각'이 사찰로 탈바꿈한 특이한 이력으로 유명하다.
당대 요정이었던 대원각의 소유주 김영한은 남편과 사별 뒤 기생이 된 후
1950년대부터 대원각을 운영하면서 큰 돈을 벌게 되지만 명예와는 거리가 먼 삶
그즈음 김영한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1987년 스님에게 요정 터 7,000여평과 40여채의 건물, 당시 싯가 1,000억이 넘는
액수를 시주하고 사찰을 세워 달라지만 오랜시간 거절 당하게 되고
결국, 1995년에 그요구가 받아 들여져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등록되면서 길상사가 세워진다.
20대 젊은 시절, 영어교사이자 천재 시인이었던 백석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남북분단으로 인해 서로 영원한 생이별을 해야 했던 그들의 안타까움은
백석이 1937년 쓴 시'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통해서도 그 절절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백석으로부터 불리어진 아명 '자야'
그녀는 숨을 거둔 후 유언대로 눈이 많이 내리는날, 길상헌 뒤뜰에 유골이 뿌려진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키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아응앙 울을 것이다

기념사진을 부탁하길래 배경을 잘 선택해서 몇커트 찍어 주었더니
우산속으로 들어가 세분이 모여 휴대폰에있는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다.
법정스님이 머물렀던 진영각,
들어가는 담밑에는 법정스님의 유골이 뿌려져 있다.
진영각 안에는 스님의 유품이 그대로 전시 보관되어 있다.
스님의 손길이 베어있는 건물 안에선
다 헤어진 승복을 비롯한 몇 안되는 소박한 유품과 저서등이 진열되고
소유에서부터 오는 집착에서 벗어나 모든 걸 버리고
산 깊은 곳으로 이주하여 생활하셨던 분
법정스님은 무소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무소유가 아니다
무소유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길상화 김영환님에 관하여는 길상사 홈페이지에 내용을 인용한다.
관음상,
최종태 교수의 작품
길상사에도 눈내리는 밤으로
서서히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