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문화의 이해, 답사기행] 남한강 뷰와 어울러진 여주 신륵사를..//24년6월26일
여주에 있는 신륵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다.
몇십년전에는 은모래, 금모래 강가에 놀러 오는기회에 신륵사를 들리곤 했다.
지금부터는 걷는것도 햇빛이 중앙에 있어 여성분들은 양산을 써야 좋다.
주차장을 벗어나 사찰로 들어가는 초입에는지역 명성에 맞게 생활 도자기들이 진열되어있다.
가는길 오른쪽으로 연못에 수연이 잘 자라서 수놓은것 같아 보이고,
왼쪽으로는 도자기를 굽는 전통가마가 있어 여주가 광주, 이천과 함께
도자기의 고장임을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있게 해준다.
백년의 탐욕은 하루 아침의 티끌이로다.
탐욕, 티끌, 사찰에 오면 되뇌어지는 글귀들이다.
걸어서 다니는데 덥다.
그래도 볼건 보고 다녀야 기억에 남을것 아닌가..?
3문중 사찰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不二門)이 보인다.
"진리는 둘이 아님을" 알렸다.
사찰초입이면서 남한강변에 660년 되었다는 은행나무와 참나무,
소원지가 줄줄이 엮어 끼어져 있고..
고려말 공민왕사 나옹스님이 심었다고 안내문에 써있다.
구룡루(九龍樓)에서 남한강을 배경으로,
구룡루에서 바라본 극락보전
신륵사를 대표하는 보물 제225호인"다층석탑"이 압권이다.
삼성각으로 오르는 길이다.
삼성각,
조사전,
불당 중앙에는 지공화상이 모셔져 있고, 그 좌우에는 무학대사와 나옹화상의 영정을 모셨다.
조사당 뒷편 언덕을 오르면,
보물 제 229호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驪州神勒寺普濟尊者石鐘碑)가 있다.
이 비는 고려말의 보제존자 나옹의 묘탑과 영정을 모신 진당(眞堂)을 조성한
내력을 적은 내용으로 나옹이 말년에 밀양 영원사로 가던 중 신륵사에서
세상을 떠나자, 제자들이 절 북쪽 언덕에 종모양의 부도를 세워 그의 사리를 안치하고
이를 계기로 그의 초상화를 모실 진당을 짓는 등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으며,
비문은 목은 이색(李穡)과 서예가인 한수(韓脩)가 짓고 썻는데, 단정한 필치가 돋보이며,
뒷면에는 건립에 참여한 제자와 시주자의 명단, 중창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
비는 2단의 지대석 위에 연꽃 무늬를 지붕 모양으로 된 개석(石)을 얹었다.
비석 옆에는,
보물 제228호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驪州神勒寺普濟尊者石鐘)으로
나옹, 혜근(惠勤, 1320~1376)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이다.
명부전 앞에 있는 향나무,
높이 7m, 둘레 2,2m로 아름다기는 이곳 사찰에서는
제일인것 같다.
국내 유일의 다층전탑,
벽돌로 쌓은 탑으로 높이 9.4m 흙으로 구워 쌓아 올린 전탑이다.
보물 제 226호이다.
강과 달의 집이라는 강월헌(江月軒)이 있고,
삼층석탑 옆에는 바위틈에서 자라 나온 앙상하게 보이는 한 그루의 나무가
마치 석탑을 보호하고 있는것 같이 보인다. 신륵사에서 제일가는 뷰인것 같다.
강바람이 불어오고 넉넉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평화롭고 한가롭네..
답사 기념으로 추억의 한 장면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