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이있는오솔길/한국전통문화의 이해, 답사

[한국전통문화의 이해, 답사기행] 여러 전설이 깃들어 있는 淸平寺로..//25년6월18일

가잔티 2025. 6. 18. 20:32

 
 
문화유산 답사를 춘천지역으로 정하고,
오전 8시에 동작구청앞에서 출발하여 올림픽로, 미사강변을 지나 생소한 춘천휴게소에 들렀다가,
2시간 30분만인 10시30분에 청평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늘 방문한분들 대부분이 한두번은 다녀간 곳인데.
그 전에 왔을때는 소양강에서 배를 타고 들어왔던 분들이 많아 초입을 잘 모르는것 같았다.
차에서 내려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가까운곳인데도,
 

 
 
평지로 돌아서 가는 길을 택했으니 더 많은 길을 걸어간것은 어쩔 수없었다.
 

 
 

 
 

 
 
부용교를 건너는데, 옆에 연꽃모양을 한 구름다리가 설치되어있다.
구름다리는 길이 43m, 폭 1.5m, 별로 출렁거리지 않아 건널만 하다.
 

 
 

 
 

 
 
초입에서부터 당나라 공주와 관련된 설화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는 동굴모형속에 있는 내용중 훼손된 글자도 있다.
 

 

 
 

 
 
소양강에서 들어 온 배가 정박하는 나룻터가 있는 곳인데  바닥이 보인다.
 

 
 

 
 

 
 

 
 
청평사 매표소를 지난다.
이곳은 일주문과 사천왕상이 없는게 이색적이다.
도로는 시멘트로 포장 되어있다.
 

 
 

 
 

 
 
당나라 공주에 관한 실화,
당나라 황제 태종에게 공주가 있었는데, 평민인 청년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이 내용이 태종에게 알려지자, 화가 난 태종은 청년을 죽여 버렸다.
청년이 죽은 후 형장에 커다란 뱀이 나타났다.
공주를 사랑했던 청년의 혼이 상사(想思)뱀으로 나타난 것이다.
 
뱀은 궁궐로 들어가 공주의 몸을 칭칭 감아 버렸다.
궁궐에서는 공주에게서 뱀을 떼어내려 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공주는 점점 야위어 갔다.
그러자 한 노승이 신라에 영험한 사찰이 있는데, 그곳에 가서 기도를 드려 보라고 했다.
공주는 노승의 권유로 이곳 청평사에 오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계곡에 범종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공주는 자신을 감고 있는 뱀에게 '절에 가서 밥을 얻어 오려 하니 제 몸에서 내려와
주실 수 있는지요' 하니 뱀이 순순이 몸을 풀어 주었다.
공주는 계곡에 목욕을 하고, 사찰에 가서 기도를 올렸다.
 
한편, 뱀은 공주가 혹시 도망가지나 않았을까 걱정해 청평사로 갔다.
정문(회전문)에 들어서려는 순간 맑은 하늘에 소나기와 벼락이 떨어져 뱀이 그 자리에서 죽고
빗물에 떠내려 가 버렸다. 법회를 마치고 공주가 계곡을 내려가던 중에 
뱀이 죽어 폭포에 둥둥 떠있는 것을 보았다.
공주는 깜짝 놀라 뱀을 정성껏 묻어 주었다.

태종은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여 금을 내려보냈다.
공주는 이 곳에 오래 머물며 상사 뱀의 극락왕생을 빌다가 귀국했다고 한다.
이후 공주가 머물던 동굴을 공주굴, 목욕을 했던 웅덩이는 공주탕,
삼층석탑은 공주탑이라 불린다는 전설이다.
 

 
 
좀 더 올라가면 암석이 보이는데 거북바위라 한다.
1915년에 청평사를 정비하고 청평사지를 편찬하도록 기여한 
신규선이라는 이름이 바위 아래쪽에 새겨있다.
 

 
 
단정하면서도 웅장한것 같이 보이는 폭포, 구송폭포이다.
춘천 서면 삼악산의 등선폭포, 남산면 문배마을의 구곡폭포와 함께
춘천의 3대 폭포로 꼽힌다.

 

 
 
공주굴,
 

 
 

 

 

 
 

 
 
세향원(細香院)터,
 
매월당 김시습이 설잠 스님으로 세향원을 짓고 시를 남겼다.
 
청평사(나그네)
나그네 청평사에 와서
봄 산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노니는구나
새들은 우짖는데도 외로운 탑은 고요하고
꽃잎은 떨어져 작은 여울물에 흘러가네
맛있는 산나물은 때를 아는 듯 돋아 나오고
향기로운 버섯은 비 그친 뒤에 더 부드럽네
거닐며 시를 읊조리며 신선이 사는 산골짜기에 들어서니
나의 오랜 근심이 녹아 없어지네
 

 
 

 
 

 
 
영지 명문 바위(影池銘文 바위)
영지앞 바위로 윗면에 아래와 같은 한문으로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
이 시는 스님이 깨우침을 얻고 나서 지은 시라는 뜻의 오도송(悟道頌)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오도송(俉道頌)

심생종종생(心生種種生)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 만물 일어나고

심멸종종멸(心滅種種滅) 마음이 사라지면 모듬 만물 사라지네

여시구멸이(如是俱滅已)       이와 같이 모두가 사라지고 나면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        모든 세상 곳곳이 극락세계일세

 

 
 
영지(影池)
영지는 사각형 연못으로 서기 1089년 관직을 버리고 청평사에 숨은
이자현(1061-1125년)이 사다리꼴로 석축을 쌓은 뒤 개울물을 끌어 인공연못을 만들었다.
날씨가 맑으면 오봉산의 그림자가 비췄다고 해 영지로 불린다.
 
매월당 김시습이 청평사 영지를 보고 지은
'청평산 세향원 남쪽 창에 쓰다'를 남겼다.
 
네모 못엔 천 층의 봉우리가 거꾸로 비치고
절벽에선 만 길 물 내달리며 떨어지네
이것이 바로 청편산 선경(仙境)의 운치
어이하여 시끄럽게 지난 행적 묻는가?
 

 

다리를 건너면 청평사 방행이 보이기 시작한다.
 

 
 

 
 
청평사
소양호 한쪽에 우뚝 솟아있는 오봉산(해발 777.9m, 과거 청편산, 경운산)기슭에 자리했으며
고려 광종 24년(973년)에 창건되었고, 세 번의 중창과 조선 명종 때
보우대사가 중건하여 대사찰이 되었다.
한국 전쟁때 거의 소실된 것을 1970년대에 전각들을 다시 짓고 회전문을 보수하고
범종각과 요사채를 앉혔다.
 

 
 
회전문(廻轉門)
1557년 보우대사가 청평사를 대대적으로 불사할 당시에 세운 사찰의 중문(中門)으로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의 형태로 대들보가 3개인 3량식 가구(架構)이며
주심포(柱心包)계의 익공 건물로 조선 전기에 세워진 매우 귀중한 건축물이다.
 

 

 
 
회전문을 지나 위에서 바라본 모습,
 

 
 

 
 
관음전,
관음보살은 모든 환란을 구제할 뿐 아니라 중생의 안락을 불가사의한 인연과
신력으로 돕기 때문에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이기도 하다.
관음전 내에는 감로병을 얹힌 연꽃을 들고 연화좌 위에 앉은 관음상과 후불탱화로
관음보살과 협시인 남순동자를 묘사한 관음탱화를 봉안하였다.
 

 
 

 
 

 
 
현세불인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협시보살(脇侍菩薩)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다.
문수보살은'지혜'를 보현보살은'행'을 실천하는 보살로 두 보살의 손에 든 연꽃위에는
문수동자와 보현동자가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있다.
 

 
 

 
 
극락보전
 

 
 

 
 

 


 

 
 
점심은 춘천시 신북읍 신샘밭로 721(0101-2756-5153)에 있는 '화계닭갈비"에서 했다.
우리 일행이 한동을 다 차지했다.
 

 
 
닭갈비는 세가지로  간장구이, 소금구이, 마지막으로
양념구이 순으로 구운다.
식사로는 모밀막구수나 공기밥에 된장찌게로 마무리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