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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있는오솔길/성서평화나눔

상록수의 시인 심훈선생의 생가터를 찾아서..

 

심 훈(沈熏: 1901-1936)


소설가, 영화인. 서울 출신. 본명은 대섭. 호는 해풍(海風).

1919년 제일고보 재학중 3.1운동에 참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복역,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방랑, 한때 항주 지강대학을 다녔다. 

1923년 귀국 안석주, 최승일 등과 신극 연구단체인 극문회(劇文會)를 조직,

1926년 동아일보에 영화 소설 <탈춤>을 연재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영화계에 진출, 1927년 영화 <먼동이 틀 때>을 원작, 각색, 감독하였다.

1930년 이루 <동방의 애인> <영원의 미소>

<직녀성> 등의 장편 소설과 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하였다.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 소설에 장편 <상록수>가 당선되자

그 상금으로 당진에 상록학원을 설립하였다.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는 신문 호외에 감격하여

그 뒷면에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즉흥시를 쓴 것을 마지막으로 급서하였다. 

그의 작품은 대중적이며 계몽적인 것이고,

특히 <상록수>당시 브나로드라는 민족주의 운동을 반영한 것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탈춤>, <동방의 애인>, <영원의 미소>,

<상록수>(1935<동아일보> 창간 15주년 현상 공모 당선작), <직녀성> 등이 있다

 

 

             

                          <동작구편>                 동작구가 낳은 인물 중의 인물 심훈 선생..!  

동작구와 동작구민들보다는 충남 당진과

경기도 안산에서 더 주목하여 기리는 인물이다.

 

노량진은 심훈 선생이 3.1운동으로 감옥에 갔을 당시 주소지였는데..  

동작구와 동작구민의 무관심을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는 않을런지..?

 

 

 

 

우리에겐 소설 <상록수>로 많이 알려져 있는 심훈 선생..!

그러나 심훈 선생은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영화인이기도 했고,

시인이기도 했으며, 방송인이기도 했다.

3.1운동 시절에는 열아홉의 나이게 감옥에 갔다 오기도 했고~

 

 

 

 

아래 사진은 "심훈생가터"라는 표석으로,

서울시에서 설치하였는데~  

 

노량진배수지공원에 설치되어 있다가..

 

 

 

 

 

지금은 흑석동성당 입구로 옮겨져 있다.

아래 사진은 "심훈생가터"라는 표석으로..

 

 

 

 

 

가을에 멀리서 본 표지석

 

 

 

 

 

            <당진군편>     심천보장로의 작은 할아버님이신 심명섭목사(심훈의 형님)의 
                                      부인이신 권유희 권사님 6.25동란중인 1950년대 초에 세우셨다는
                                      상록수교회가 바로 뒤 언덕 위에서 고택을 내려다보고 있다.

 

 

 

 

                                             -고택 앞마당에 애향가석- 해방전 애국가곡인 올드랭사인곡에
                                                       심훈이 애국가 가사를 개작하여  부르던 노래

 

 

 

 

 

심훈의 필경사 (筆耕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