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영화인. 서울 출신. 본명은 대섭. 호는 해풍(海風).
1919년 제일고보 재학중 3.1운동에 참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복역,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방랑, 한때 항주 지강대학을 다녔다.
1923년 귀국, 안석주, 최승일 등과 신극 연구단체인 극문회(劇文會)를 조직,
1926년 동아일보에 영화 소설 <탈춤>을 연재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영화계에 진출, 1927년 영화 <먼동이 틀 때>을 원작, 각색, 감독하였다.
1930년 이루 <동방의 애인> <영원의 미소>
<직녀성> 등의 장편 소설과 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하였다.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 소설에 장편 <상록수>가 당선되자
그 상금으로 당진에 상록학원을 설립하였다.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는 신문 호외에 감격하여
그 뒷면에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즉흥시를 쓴 것을 마지막으로 급서하였다.
그의 작품은 대중적이며 계몽적인 것이고,
특히 <상록수>는 당시 브나로드라는 민족주의 운동을 반영한 것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탈춤>, <동방의 애인>, <영원의 미소>,
<상록수>(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현상 공모 당선작), <직녀성> 등이 있다.
<동작구편> 동작구가 낳은 인물 중의 인물 심훈 선생..!
동작구와 동작구민들보다는 충남 당진과
경기도 안산에서 더 주목하여 기리는 인물이다.
노량진은 심훈 선생이 3.1운동으로 감옥에 갔을 당시 주소지였는데..
동작구와 동작구민의 무관심을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는 않을런지..?
우리에겐 소설 <상록수>로 많이 알려져 있는 심훈 선생..!
그러나 심훈 선생은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영화인이기도 했고,
시인이기도 했으며, 방송인이기도 했다.
3.1운동 시절에는 열아홉의 나이게 감옥에 갔다 오기도 했고~
아래 사진은 "심훈생가터"라는 표석으로,
서울시에서 설치하였는데~
노량진배수지공원에 설치되어 있다가..
지금은 흑석동성당 입구로 옮겨져 있다.
아래 사진은 "심훈생가터"라는 표석으로..
가을에 멀리서 본 표지석
<당진군편> 심천보장로의 작은 할아버님이신 심명섭목사(심훈의 형님)의
-고택 앞마당에 애향가석- 해방전 애국가곡인 올드랭사인곡에
심훈의 필경사 (筆耕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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