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산저산산이좋아/친구와산행길

[산행기]증산역에서 출발하여 봉산둘레길을 답하다..//24년11월23일


 

 

은평구에 있는 봉산,

증산역에서 등산로 따라 오르니 단풍이 수려하게 남아있다. 

은평둘레길, 서울둘레길 7코스길이다. 가족단위로, 단체로 이곳을 찾는이들이 많다.

이 근교에 거주하는 친구의 초청으로 왔는데 초행길이다. 

 

 

 

 

새총으로 맞추는 과녁이 곳곳에서 보이지만,

다른이들은 전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둘레길이 아닌 능선길로 가는데,

전에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이 드문 드문 보인다.

능선길은 낙엽으로 길이 완전히 덮혀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지기 안성맞춤이다.

 

 

 

중간 쉼터에 어김없이 운동기구가 있고,

열심히 운동하는 노익장들도 있다.

엉거주춤한 자세인데도 열심들이다.

 

 

 

 

 

 

느래기(새총)의 추억,

민속놀이중에 Y자 나무에 고무줄로 만든 기구를 이용하여 과녁을 맞추는 놀이가 있었는데

나이꽤나 든 이들은 너나없이 많이들 했을 것 같다. 참새도 잡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서울의 한 공간, 봉산 둘레길, 정수장 체육공원에서부터 수색 탁구장까지 4km거리에 과녁 30여개를

만들어 놓고  느리개(충청도 말..)로 맞추는 친구가 있다.

 

과녁기구도 여러가지이다. 나무가지에 매달아 놓은 깡통, 쓰러진 고목에 붙여놓은 쇠붙이, 이 중에는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 매달린 프라스틱패트병도 있다. 대충 얘기는 들었지만 실물은 오늘 처음 본다.

어찌보면 우스꽝스럽고 미련스럽게까지 보이지만 자연속에서 이런 게임을 하면서 지내는것도 괜찮을 것같다.

특히도, 이곳 봉산에 별로 도움이 되지않는 대벌레가 나무에 엄청 기생한다고한다. 이 벌레 수만개를 제거하는 

장한 일도 겸해 하고 있었으니 누가 알아주건 말건 자연을 아끼는 정성은 본 받을만한 일이다.

 

[ 스토리로 엮어본다..]

아침 일을 마치고 9시쯤 배낭을 매고 집을 나선다.

배낭속에는 탁구 라켓과, 작은 주머니엔 새총 두 자루와 실탄이 들어있다.

(실탄은 쇠구슬탄도 있지만 나는 흙과 세라믹을 혼합하여 빚은 탄을 쓴다. 이 실탄은 목표물에 맞으면

깨어지기 때문이다.)

증산동 뒷산인 봉산을 오른다. 정수장인 체육공원에서 이마에 수건을 동여매고 새총과 바지 주머니에는

실찬을 100여발 넣고는 첫 번째 과녁이 있는 곳에서 첫탄을  발사한다.

"딱"하고 첫발이 양철판에 맞고 마찰음이 사방에 퍼지면 내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어때..!하고 주변을 두리번 거려도 본다. 보는이 아무도 없다. 

그러나 명중하지 않으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맞출 때까지 쏜다. 오기가 발동해서다.

 

증산동에서 수색 탁구장까지 약 4km거리에 중간, 중간  약 30여개의 과녁이 있다. 내가 매달아 놓은것이다.

과녁이라야 통조림통 아니면 페트병 정도다.

과녁과 나와의 거리가 약 12~15m, 이걸 맞춰야 진행하는데 어느 때는 30개중 25개를 첫 방에 맞추는가 하면

어느 때는 죽어라 안 맞는다. 열번, 열다섯번을 쏴야 비로소 맞는다.

이럴 땐 짜증도 난다. 땅(깡통소리), 퍽(패트병소리) 명중하면 희열이 가슴에서부터 올라온다.

어느 사람은 새총을 쏘면서 앓던 우울증이 치료되었다는 고백을 들은적이 있다.

 

지나는 중간 지점에 펑퍼짐한 둔덕이 있고, 이곳에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있다.

동네 어르신 네다섯분이 운동을 즐기신다.

그 곳에 과녁이 있는데 내가 쏜 탄알이 과녁에 명중하면 본인이 맞춘것 같이 박수를 치며 좋아들 하신다.

나는 칭찬듣는게 좋아 그 곳에선 더 신중하게 쏜다. 나이들었어도 칭찬받는것이 좋은건 어린애나 같은가 보다.

"오늘은 첫방에 맞았으니 운수 대통하겠네.."하며 덕담도 해 주신다. 물론 운수 대통한 적은 없지만..

연세를 여쭤보니 호랑이(86학번)띠시란다. 항상 나오시던 분이 안 나오실때는 주위 분한테 여쭤도 본다.

어느때는 두 분이 싸워서 안 나오신다는데 일주일정도 안 나오실때도 있었다.

나이들면 고집이 더 세진다는데..? 그러나 화해하셨는지 다시 나란히 앉아 계신다.

"그 분들한테는 이 장소가 최고의 휴식터가 도어있을 터인데 싸워봤자 며칠이나 가겠어..?"

반복되는 뇌까림이 나이 편견이 되어있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 중 한분은 새총에 관심이 많으셔서 내 총을 이리저리 만져보고는 당신 고향에서는 새총을 "무대소"라 부른다고

하셨다. 고향이 개성이라신다. 우리 충청도에서는 "느래기"라고 불렀다.

이리 저리 시간이 흐르다 보니 두 분들과는 이유없는 정이 들은것 같다.

내게 다른 볼일이 있어 나가지 못했을 때는 잊지 않고 "어제는 왜 안 나왔냐"고 물으신다.

성이, 존함이 어찌 되는지는 여쭤보지 않아서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분께 뭐든 선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날씨도 추워지고 하니 장갑이라도 한 켤레씩 사 드릴까..?

생각하고 보니 장갑은 끼고들 계신다.

고심 끝에 두분께 따뜻한 국밥이라도 사 드시라고 이만원씩을 쥐어드렸다.

한사코 사양하시는 걸 "박수치고 응원해준 댓가"라며 얼른 자리를 떴다.

다음 날, 한분이 그 돈으로 돼지고기 세근을 사다 잡쉈다며 고마웠다고 하신다.

 

어떤때는 매일 쏘던 과녁이 실종되기도 한다. 나무가지에 보일락 말락 매달아 놓았는데 무슨 심사로 없앴는지 종종

그런일이 발생한다. 그런 때는 다음 날 다시 달고, 없애면 또 달고..

그렇게 30여개의 과녁을 맞추다 보면 1시간 320분후에야 탁구장에 도착한다.

이마에 동여 맨 수건은 젖어있고 등줄기로는   땀이 흐른다.

 

만보기를 들여다 보면 칠천보가 조금 넘게 찍혀있다.

 

 

새총을 쏘는 주인공, 

 

 

 

 

숲 능선길이 참 좋다.

 

 

 

 

드디어 둘레길로 들어섰다.

 

 

 

 

 

 

 

 

 

 

 

 

 

 

 

 

 

드디어 봉산 봉수대에 도착,

높이로는 209m이다.

 

 

 

 

 

 

 

 

 

 

 

 

 

 

수국사는,

「수국사는 1459년에 세조의 큰 아들 숭(崇:덕종으로 추존)의 왕생으을 위해

고양군 동쪽 봉현(峰峴)에 능침사찰(陵寢寺刹)로 창건을 명한 정인사의 후신이다.

하지만 재목이 부실하다하여 1471년에 덕종의 부인이자, 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

한씨가 판내시부 이효지(李孝智)에게 중창할 것을 명하여 총 119칸의 규모로 중창하는데,

당시 사격(寺格)이 봉선사와 쌍벽을 이루었다고 한다.

 

1721년에는 서오능에 소재하는 숙종과 인현왕후가 안장된 명릉의 능침사찰로 지정되면서

이름도 수국사로 바뀌었다.

6.25전란으로 옛 모습은 잃었지만, 1995년 황금법당을 지었다.

황금보전 법당은 외9포, 내15포, 108평 규모의 청기와로 된 전통목조법당이며 법당 안팍을

기와 이외에는 100% 순금으로 개금불사했다. 

 

현재 수국사에는 보물 제1580호인 고여 후기의 불상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 유물 36종

84점과 서울시 유형문화재 6점 (아미타후불화, 십유나한도, 극락구품도, 감로도, 신중도, 

현왕도)이 남아있다.」

 

 

 

 

 

 

 

 

 

 

 

삼오순대국,

늦은 점심으로 불광동에 있는 39년 되었다는 "삼오 순대국"에서

순대국으로, 나는 국물이 별로여서 수육을 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산행걸음수가 15,000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