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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저산산이좋아/친구와산행길

한우물 찬우물 물길따라 관악산 둘러보기

 

 

 

  


 


석수역에서 친구들을 만나 육교를 건너 금천구 시흥동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의 시계(市界)를 넘는다.  






 


한우물을끼고 찬우물을 지나 깔딱고개를 넘어 경인교대캠퍼스

정문앞으로 내려오니 오후 2시, 그저 몸풀기 정도..!


 

 




메마른 산길에 먼지도 많이 나고

앞서가는 산군이 많으면 목이 메케할 정도이다.



 

 

 


 

평평한 곳이면 어김없이 자리를 차지한 그룹이 있다.

 





 

  

 

 

 

언제보아도 부드러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관악산..! 

 정상에는 언제나 같이  KBS 기지국과

군부대 그리고 기상관측소 등이 보인다.

 








 

 한우물 및 주변 산성지

물은 말라 볼수없고 웅덩이만 잡초로 덮여있다.


 





 

 

 


 

 





석구상

   관악산화기를 누름으로써 한양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다는

조선시대의 도읍설화와 연관된 해태상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 석상이 해태보다는 개의 형상에 더 가깝고,

<시흥읍지>"형승조"에도 이를 뒷받침해줄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석구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길이 1.7m, 폭 0.9m, 높이 1.0가량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고

 발과 꼬리부분 또한 잘 묘사되어 있는 등 석상기법이 세밀하고 사실적이다.

한우물 근처에서는 "석구지()"라는 명문이 새겨진 석재가 발견되었는데

한우물이 석구지라 불린 것은 석구상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우물(사적제343호)

  통일신라시대(668-828)에 처음 만들어진 뒤

 조선시대에 서쪽으로 약간 옮겨 다시 축조됐다.

한우물은 산 정상에 있으면서도 물의 양에 변함이 없고,

가뭄 때에도 마르지 않아 신비로움을 더한다.

 가뭄 때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고,

전시에는 군용수로 사용했다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한우물은 임진왜란(1592-1598) 때 행주대첩(1593년)을 앞두고

 선거이(宣居怡)부대가 진을 치고 군용음료수로 사용하였으며,

그 외곽에는 신라시대의 산성이 축조되어 있다.

 





  

  

 

 

 

이곳이 왠일인지 개판이다.

사찰에서 키우는지..?


 


 

 

  

 

한참 쉬었다가 다시 올라가는데

역시 인파는 끊어지지 않았다.

 


 

 

 

 

  

2012년 1월 29일에 바라본 광경..

왼쪽으로 기아자동차 공장이 

오른쪽으로는 시흥동 시가지이다.

 


 

 

 

한가지씩 가져와도 이렇게 쌓이니 등산따로

배채우기 따로..! 베낭안에 아직도 남아있는데..?

 



 

 

 

각자 가져온 간식메뉴를 보면 나름대로 그사람의 생활상을 점칠수 있다.

마트를 이용하는 편리성을 미리 터득한 친구(연양갱,추억의빵)..

냉장고에 보관중인 귀중품을 슬쩍하여 비닐에 싸오는 친구(사과, 귤)..

손수 씻고 자르고 팩에 정성스럽게 담아오는 친구(딸기, 약과)

직접 만들어줘도 많다고 투절대며 가져오는 친구(만두, 식혜)

이 친구들 집에있는 내자들한테 고맙다고 하기는 하는지..

 



 

 

오늘따라 찬물을 마시려는 등산객들로

줄을 이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경인교대캠퍼스가 가까워진것 같다.


 


 

 


이곳에서 오뎅국파는 이분은 성업중..






 


  

 

 

이쯤이면 발걸음이 무디게 느껴온다.

 쉬엄쉬엄 걷는길에  아직도 눈이 남아 있다.

  



 

 

삼막사도 보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