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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저산산이좋아/친구와산행길

옛정취가 물씬 풍기는 북한산의 겨울은!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옛정취 느끼기-

 

산에 오른다. 아무 생각없이..!

 

1월 15일(일요일) 구파발역 1번출구에서 친구들과 만나 

북한산국립공원행버스를 타고

선봉사-노적사-중성문-대한문-문수사-구기터널쪽으로 내려왔다.

 

특히 이곳 등산코스는 그냥 지나치면 북한산에 있는 하나의 계곡과

현존하는 성문과 사찰들만 기억날뿐인데

중간 중간 입간판의 내용을 자세이 보면 전란시 왕이 임시로

피란하여 거쳐할수 있는 "북한행군지"가 있던곳으로 지금은 소멸되어

그당시 건물들의 규모는 알수 없지만  

잘가꿔서 교육장으로 활용하면 유익한 관광자원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뭘 어떻게 어떤형식으로 후원한다는지 알수 없지만

 철거하지 않고

그냥 게재되어 있는걸 보면 뭐가 있긴 있는가 보다.

  

 


 

 

 

 

 

이곳 입구에 있는  사찰간판을  자세히 보면 좀 특이한것 같다.

 일반인들이 친근감을 갖도록 배려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산 초입이라 그런지 사찰 안내문이 많기도 하고..

 



 

 

  

 

 

 이런 안내현수막도 이왕이면 국립공원답게

모양을 내어 걸면 안되는지..?

소나무에다 질끈 묶은 모습이 그렇고 도토리를 누가 줍는다고

저런 글귀를써서 계속 걸어놓을꼬..!

 



















 



 





 

 



 

산영루는 북한산에 세워진 유일한 누각으로

 1755년 발간된 고양군지 등에

간단한 기록만이 전해져

그 정확한 위치와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었다.

 




 

 

 

 

특히 대서문에서 대남문으로 오르는

중간 용학사(龍學寺) 인근에 터와 주춧돌 13개가 남아 있으나

그동안 산영루 위치라고 단정짓지 못해왔다가 아래사진 발견으로

이 곳이 산영루라는 사실이 확인됐고.

 

1920년대 찍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진은 노적봉을 배경으로

 주춧돌을 포함해 5〜6m가량 높이의 산영루 건립 당시 모습이 담겨 있다.

 

<100년전 산영루사진>

 













 


 








 

 

 

 

 

대남문까지 오르는것도 그리 녹녹치 않다.

요즘은 아줌들이 더 잘오르는것 같은건 여성

파워가 세져서일까..?

 

 

 

 

 



 

  

 

 

대남문 오르기전 쉼터란곳에 있는

두개의 바위기둥..? 용처가 궁굼하다.


  

 

 

 

 

어느 산행에서건  2시간이상 걸어 정상부근에 이르르면

다리가 땅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뒷모습은 나이든 사람들의 공통된 자세인것 같다.

세상사 힘든 짐을 지고가야하는

 나그네라서일까..?

 


 

 


 


 

 











 

 

 

 

 


 





 

 

  

 

구기터널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너무 가파라서

 무릎을 조심해야겠다.

아프면 겉으로 표시도 안나고 꾀병이라고 하기 딱 좋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