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사는이야기들/나라뜰헤매기

[원주혁신도시에서..24-30] 도심속의 옛 관청 원주감영에 가다..//24년8월22일


 

 

원주시 원일로에 위치한 원주감영,

조선시대 강원도의 26개 부, 목, 군, 현을 담당하던 곳이다.

1395년인 태조 4년에 설치되어 1895년에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됨에 따라 500년동안의 강원도 정청 업무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감영의 중삼문과 내삼문 사이에는 총 17기의 비석이 있다.

이 비석들은 조선시대 때 강원감영과 원주목관아에서 관찰사와 목사로 재직하였던

관인들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선정비는 관찰사와 목사에게 하나의 

모범 사례로 되기도 하였으며, 동시에 새로 부임하는 관찰사나 목사를 경계하는 의미도

깃들어 있었다.

 

 

 

 

 

 

 

 

2014년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시스코 교황에 의해 순교자들이 복자품에 오른다.

그중에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가 있다.

 

복자 김강이 시몬(金鋼伊,1765-1815)은,

1815년 을해박해때 강원도 울진(현 경북 울진군)에서 체포되어 안동에 수감되었다가

원주의 강원 감영으로 이송되어, 모진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고문으로 생긴 상처와 이질로 인해 옥사하고 말았다.

 

복자 최해성 요한(崔海成,1811-1839)은,

최경환 성인의 일가로 가족과 함께 원주의 서지(현 원주시 부론면 손곡 2리)로 이주해

작은 교우촌을 이루고 살다가 1839년 기해박해때 체포되어 21차례의 문초와 18번의

고문을 당하면서 1839년 9월 6일, 순교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29세였다.

 

복자 최 비르지타(崔-,1783-1839)는 황사영 알렉시오를 숨겨 준 죄목으로 유배당한 남편이

죽은 후 유배지를 떠나 오빠가 사는 서지 마을에 와서 살았다. 최해성의 고모이다.

강원 감영에 갇힌 오빠 최해성 요한을 보러 갔다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후 옥리들에게

목이 졸려 순교했다.

 

 

 

 

 

 

 

휴대용 업무편람,

 

 

 

조선시대 신분 증명패(戶牌),

 

 

 

 

 

 

 

 

 

 

 

 

 

느티나무

수령 600년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