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에 내리는 비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으니, 이젠 무덤덤하게 받아지기도 한다.
김포 골드라인 경전철 운양역사를 빠져나와 7-2번 버스를 타려고 시간표를 확인하였는데
30여분을 기다려야 한다. 상의 후, 택시를 타고 주변을 돌아보며 가는 솔솔한 재미도 얻었다.



매표소에 도착,
온라인으로 예매하지 않았으니 현장에서 신청서를 작성하여 신분증과 함께 제출했더니
입장권을 발급해준다. 이 입장권은 퇴장할때 군장병이 반드시 확인하니 분실하지 않아야 한다.




주차장에서 전시관까지 운용하는 셔틀버스는 시간을 정하지 않고 수시로 오르내린다.
관광객들은 거의 자차를 이용해서인지 우리 일행만 탑승했는데도 출발한다.
이곳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은 민북지역(남방한계선과 민간인출입통제선 사이인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으로
꼭 신분증을 휴대하여야 하며, 퇴장시간을 준수하여야 한다.

출발한지 6분여만에 평화생태전시관에 도착한다.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은 1978년에 노후화된 애기봉 전망대를 철거하고,
평화생태전시관, 조강전망대, 생태탐방로를 설치하였다.




주변은 안개로 보이지 않으니 실내에서 잠시 머물다 흔들다리로 이동했다.









애기봉생태공원 흔들다리,
평화생태전시관에서 조강전망대로 이어지는 다리로, 다리를 건너면서 애기봉과 조강의
아름다운 절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오늘은 깜깜이다.

흔들다리는 무주탑 현수교이며, 길이 112m, 보도폭 1.5m, 통행하중 54톤(성인 779명)이
오갈 수 있다.

대형 트리가 설치되어있는 계단이다. 12개의 작은 별이 있고, 상부에 큰 별이 보인다.
안개로 전체 규모는 확인을 할 수 없다.









큰별이다,




망배단을 지나 조강전망대로 이동한다.



조강전망대에서 해설사의 설명이 시작된다,
애기봉은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와 월곶면 조강리의 경계에 있는 높이 154m의 야산으로
쑥갓처럼 생겼다 하여 '쑥갓머리산'으로 불리던 곳으로, 쑥갓머리산이 애기봉(愛岐峰)으로
불리게 된것은 평안감사와 기녀 애기의 애틋한 설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며, 1966년에
애기봉을 방문한 고 박정희 대통령은 사랑하던 이를 그리워하던 애기의 한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의 한과 같다고 하여 '애기봉'이라는 친필 휘호를 내렸다고 한다.
애기봉은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군사요충지이기도 하여, 공원 안에는 당시
해병대 용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해병대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지명들,
조강나루는 6.25전쟁 전까지 100여 호의 가구가 밀집한 큰 마을이 있었고,
한강하구의 수운과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고 잔해지나, 1953년 7월
정전협정에서 '한강하구 중립수역'으로 지정되면서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었고
사실상 고립되어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게 된다.



이만갑 촬영시의 세트에서 기념을 남겨도 좋겠다.


간식으로 가져온 떡과 음료,


스타벅스에는 고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보이는게 없으니 그것이 답답하다.


이제 종탑과, 망배단이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망배단은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는 실향민들을 위해 1993년 김포시에서 건립하였으며,
탑의 높이인 3.3m는 한민족의 기원과 맞닿은 상징적인 숫자를 나타내었고, 탑의 형태는 새를
형상화하여 고향으로 날아가고 싶은 실향민의 염원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평화의 종은 6.25전쟁 희생자 유적 발굴 현장에서 수거된 탄피와 성탄 트리 철탑 등을
녹여 제작하였으며, UN문자를 상형화한 9m의 종탑과 2m 크기의 범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화공원 생태공원으로 내려 가는 길,



무적해병, 해병대전적비로,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나
도보로 이동하면서 주변을 돌아볼 예정으로 거리는1.2km이다.







애기봉 매표소로부터 0.6km 도보로 이동중에 홍살문과 묘역이 보인다.
한재당(寒齋堂)이란 조선 초기 이목(李穆)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고,
사당 뒷 산 묘역중 가장 윗 자리에 이목의 묘가 있었다.

한재당은 ,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무오사화 때 모함을 받아 28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이목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사당은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입구의 홍살문과 외삼문, 내삼문, 사당인
정간사를 일렬로 배치한 구조이다. 이 사당 바로 밑에 있던 구사당(1848년 건립)은
맞배 지붕 목조와가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일주문과 담장이 둘러 있었으나
현재는 담장만 남아 있고, 신사당은 이목의 후손들에 의해 1974년 이곳에 건립 되었다.
사당에는 이목의 위패와 숙종 43년(1717)과 경종 2년(1722)에 추증한 교지가 함께 보관되어 있다.
이목은 김종직의 제자로, 25세 되던 연산군 원년(1495)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고,
영안도(함경남도의 옛 이름) 평사를 지냈다.




정간사, 이목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정면 3칸의 맞배 지붕이며, 내삼문과 마주하고 있고,
주위는 담장으로 돌러져 있다.

다부/ 한재 이목선생,
내가 세상에 태어남에 풍파가 모질구나. 양생에 뜻을 둠에 너를 버리고 무엇을 구하리오?
나는 너를 지니고 다니면서 마시고 너는 나를 따라 노니, 꽃피는 아침 달뜨는 저녁에 즐겨서 싫어함이 없도다
내 항상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면서 경계하기를 삶은 죽음의 근원이요, 죽음은 삶의 뿌리라네,
안(心)만을 다스리면, 바깥(身)이 시든다고 혜강은 양생론을 지어서 그 어려움을 말하였으나,
그 어찌 빈배를 지수(智水)에 띄우고, 좋은 곡식을 인산(人山)에 심는 것만 하겠는가?
차를 통해 정신이 기운을 움직여 묘한 경지(안과 밖이 하나가 되는 경지)에 들어가면,
그 즐거움을 꾀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르게 되는니라. 이것이 내 마음의 차이니.
어찌 다른 곳에서 또 다시 이를 구하겠는가?

김포 구래에 있는 일식당에서,




'세상사는이야기들 > 나라뜰헤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봉은사를 둘러보니 이런곳도..//25년12월5일 (1) | 2025.12.16 |
|---|---|
| 상암동 하늘공원은 축제 준비에 한창이다..//25년10월16일 (0) | 2025.10.16 |
| 길상사에 꽃무릇은 언제쯤..//25년9월12일 (0) | 2025.09.12 |
| [부천여행]부천상동호수공원둘레길을 걷고, 호수식물원 수피아도 돌아 보았다.//25년9월6일 (0) | 2025.09.11 |
| [부천여행]부천에 한옥체험마을이 있고, 한국만화박물관이 있다.//25년9월6일 (0) | 2025.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