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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있는오솔길/出寫

2025년 제10회 대한민국사진축전에서..//25년12월3일


 
 

 
 

 
 

 
 

 

 



 

 

 

 

2025년 대한민국 사진축제에서 광주지역 신문기자로 있으면서 해방정국과 6.25 전쟁 상황을 

촬영한 귀한 사진이면서 역사적 증언이랄 수 있는 이경모 사진작가의 눈에 들어왔다.
 "원래 나는 서양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사진가가 된 것을 후회한적도 있었다.

사진가 이경모는 1926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20세의 나이에 호남신문사(현 광주일보의 전신)의

사진부장으로 보도사진 촬영을 시작하여 타계 1년전인 2000년 말까지 약 55년 동안 한국 근현대사

격동기의 현장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풍경과 문화재,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한국은행, 상업은행 본점-전쟁 발발 직전의 모습(서울 중구)/1950.6.

 

 

 

구 서울시경 옥상에서 내려다 본 태평로 일대,(서울 중구)/1953.9.

 

 

 

인력거를 타고 외출 나온 미군들,(서을 명동입구)/1945.9.

 

 

 

지금은 헐려 없어진 화신백화점 건물에 연합군을 환영하는 구호가 영어와 러시아어로 적혀있다.

도로는 한산하지만 전차는 항상 만원이었다,(서울 종로 화신백화점 앞)/1945.9.

 

 

 

일장기로 임시 태극기를 만들고, 몇일 전 까지는 일본국으로 강제 출국할때 동원됐던

브라스밴드가 갑자기 우리 노래를 연습해서 불러야 되는데, 악보도 없어서 밤을 새워

연습했다고 한다.(전남 광양)/1945.8.17.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사열하고 있다,(광주 중앙포로수용소)/1952.3.

 

 

 

인민군에 부역한 혐의로 체포된 주민들,(담양)/1951.12. 

 

  

 

 광주중앙공립국민학교에 광주계림국민학교가 개교되어 하나의 학교 건물을

두 학교가 나누어 쓰는 모습(전남 광주시 대인동),/1948.

 
 

피난지 천막학교 수업장면.(부산)

피난중에도 교육열은 대단하여 천막학교를 지어 아이들을 가르쳤다,/1951.7. 
 

 

 

우리측에서 주최한 전남 광주 해방 2주년 기념 대회장,(전남 광주)/1947.8.15

 

 

 

대한청년단 광주시지부, 김녹영 전 국회 부의장,/1947.6.

 

 

 

조선민족청년당 전남도당 결성식, 족청이라 불리었으며

이승만을 지지하는 당이다,(광주의 여름)/1947.

 

 

 

광주 금남로, 4연대장 이한림 소령,

훗날 육군 장군이 됐다,/1946.10.

 

 

 

광양 대동청년단 광양지부 결단식,(전남 광양)/1948.6.

 

 

 

전남도청 징병검사장(전남 광주)/1950.3.

 

 

 

전남 목포역 앞,/1945.9.

 

 

 

정부수립 축하 시가행진,(광주 충장로)/1948.8.15.

 

 

 

경찰이 후퇴하면서 무차별 학살한 시체들, 

이 호남지역은 여순사건이 발생하여 6.25전부터 전쟁중인 상태였다,(광양)/1948.10.

 

 

 

아기업은 한 경찰관의 부인이 살해돼 버려진 남편의 시신을 찾고있다,/1948.10.

 

 

 

누이가 수습한 동생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전남 광양)/1948.10.

 

 

 

전쟁중 호남쪽으로 이동중인 미군 선발대,(경남 진양 부근)/1950.10.

 

 

 

전선으로 출발하는 기갑부대,(광주 송정리역)/1952.6.

 

 

 

장흥에서 반란군을 토벌하고 개선있다,(광주 충장로)/1949.6.

 

 

 

귀순촉진대회, 경찰서장의 만세 삼창,(전남 보성)/1949.1.

 

 

 

조선민족청년당 전남도당 결성식 후 시가행진,(광주 충장로)/1947.여름

 

 

 

오른쪽부터 무초 주한미국대사, 박마리아, 콜트장군,-노래부르는 이화여대생들,(부산)/1951.6.

이 사진은 청년작가의 눈으로 찍은 걸작이다. 이기붕씨 집을 방문한 미군고위 장성들 사진으로서,

귀한 손님이라고 신발까지 신은채 방으로 들여서 이화여대생들을 초청해 마루에서 노래 부르게 하고 있다.

미군장성들은 노래 부르는 쪽을 보지도 않고 표정이 전부 굳어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 한 장이 당시 시대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록해서 많은 얘기를 해주고 있다. 

 

 

 

귀순자가 반란군에서 체험한 바를 군민들 앞에서 증언하고 있다,(전남 보성)/1948.10.

 

 

 

토벌대 간부와 진압군,(순천경찰서 앞마당)/1948.10.

 

 

 

사열을 받고 있는 제3육군병원 여군,(부산여고)/1950.9.

 

 

 

 

 

목총을 들고 총검술 훈련을 받고 있는 대동청년단 단원들,(전남 고흥)/1949.3.

 

 

 

개천에서 세탁중인 12연대 병사들,(경기 안성 부근)/1951.2.

 

 

 

화랑부대 작전을 지원하는 민간인 노무대,(전남 장성)/1951.1.

 

 

 

잔설-1948년 전국예술사진 공모전,(전남 나주)/1946.1.

 

 

 

사태 진압에 나선 국방군이 사건에 가담한 사람들과 일반 시민을 가려내기 위해

주민들을 한곳에 모아 놓았다. 오른쪽 대열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부역 혐의자로,

이들 중 89명이 11월 1일 처형되었다.(전남 여수서국민학교 교정)/1948.10.

 

 

 

난민촌의 난민들,(전남 화순)/1951.4.

 

 

 

전남 도의회 의원 후보자 합동 유세장,(전남 광주 서석국민학교)./1952.4.

 

 

 

발췌 개헌안으로 개정된 헌법에 의한 정·부통령 선거,(전남 광주)/1952.8.5.

 

 

 

선거(전남 광산군 서면)/1948.5.10.

 

 

 

여학생 군사훈련(광주,전남여중 교정)/1950.5.

 

 

 

양평 지평리 전투에서 승리한 프랑스 몽클레어 장군이 이끈 부대를

맥아더 사령관이 방문하고 있다. 뒤에 리짓웨이 사령관이 보인다.

이 전투의 승리로 중공군의 투지가 꺽였다,(지평리)/1951.2.

 

 

 

광주 상무대를 시찰하는 하지대장,

하지는 48년에 귀국 후 대장으로 승진하고,

이때 야전군 최고 사령관이었으니 방문했던 모양이다.(상무대)/1952.

 

 

 

중앙에 걸어 나오는 군인이 백선엽 장군으로 보인다.

 

 

 

좌부터 상공장관 임영신, 내무차관 윤치영, 국무총리 이범석, 국회의장 신익희, 

뒷 줄 가운데 경찰청장 장택상,(서울 동대문 운동장)/1950.3.1.

 

 

 

제1기 포병사령관 교육 수료식, 맨 뒷줄 가운데 박정희 대령이 앉아 있다,(광주 상무대)/1952.2.

 

 

 

유엔군 휴전협상 대표단을 태운 헬리콥터가 개성으로 출발하고 있다.(경기 문산리)/1953.7.

 

 

 

 

 

촌노/1965.

 

 

 

유당공원,(전남 담양군)/1946.6.

 

 

 

부친의 회갑잔치날.(전남 광양)/1953.4

 

 

 

 무당이 돈점을 치고 있다.(광주 월산동)/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