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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있는오솔길/이런저런모임

여름휴가-영릉(英陵) 답사기

 

 

 

  




 







영릉(英陵)-세계문화유산 사적제195호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 - 

영릉은 조선 왕릉 중에서도 천하의 명당자리라고 한다.

영릉 덕분에 조선 왕조의 국운이 100년은 더 연장되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이런 명성을 갖고 있는 영릉은 제4대 세종(1397~1450)과

소헌왕후(1395~1446) 심 씨의 합장릉이다.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1408년 충녕군에 봉해졌다.

 














  







 

 

 


 

혼천의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관측하던 장치 

 



 

  

 

 

 

자격루

세종 16년 장영실, 김빈 등이 왕명을 받아 만든 물시계다.

 






 

 

  

 

 

 

 

원래 태종의 뒤를 이을 왕세자는 맏아들 양녕대군이었는데

그는 자유분방한 성품의 소유자라 왕세자로서 지녀야 할  

예의범절과 딱딱한 궁중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그의 품행은 태종의 눈에도 벗어나 결국 1418년 충녕이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런데 세종이 태종에게 낙점받은 이유 중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 『태종실록』에 보인다.

 세종이 술을 적당히 마실 줄 알았다는 것이다.


 

 


 

 



원래 영릉은 1446년 소헌왕후 사망 후 헌릉 서쪽

대모산(현 서초구 내곡동)에 동릉이실로 조영된 능이다.

우측 석실은 왕의 수릉으로 삼았다가

 1450년 세종이 사망하자 합장해 조선 최초의 합장릉이 되었고

조선 전기 능제의 기본을 이루었다.

 



























 


 

 

 

 

 

그런데 세종의 능은 조성될 때부터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주장 때문에 논란이 잦았다.

 지관들이 강력하게 능 자리를 철회하자고 권했지만

 세종은 "다른 곳에서 복지를 얻는다고 하지만

선영 곁에 묻히는 것만 하겠는가?"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일단 세종의 고집대로 능을 조성했지만 세조 때 다시 강력한 천장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서거정이 "천장함은 복을 얻기 위함인데 왕이면 되었지

다시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라며 반대해 옮기지 못했다.

 

결국 예종 1년(1469)에 천장했는데 그곳이 풍수지리상

 최고의 길지 중 하나라는 현재의 영릉이다.

이때는 세조의 유언으로 병풍석과 석실 제도를 폐지하고 회격으로 합장했다.

한편 구 영릉에 있던 석물들은 모두 그 자리에 묻었는데,

1973년 석상, 장명등, 망주석, 문·무인석, 세종대왕 신도비 등이

 발굴되어 세종대왕기념관 앞뜰로 옮겨졌다.

 

영릉은 이장하면서 예종 때 선포된 『국조오례의』에 따라 병풍석과 석실 제도를 폐지하고,

 회격으로 하는 조선 전기 능제의 기본을 이루었다.

합장릉인 봉분 둘레에는 12면으로 꾸민 돌난간을 둘렀으며

 난간석을 받치고 있는 동자석주에는 한자로 십이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했다.

병풍석 없이 2개의 혼유석과 장명등,

 좌우에 망주석을 놓았는데 혼유석의 고석은 선대의 5개에서 4개로 줄었다.

또한 2개의 격실 사이에 48센티미터의 창문(창혈)을 뚫어 왕과 왕비의

혼령이 통하게 해 합장릉의 의도를 더욱 명확하게 했다.

 












 

 

 

 

 

 

봉분 능침 주변의 석양과 석호는 서로 엇바꾸었고

 좌우로 각각 2쌍씩 8마리를 밖을 향해 능을 수호하는 형상으로 배치했다.

 봉분의 동, 서, 북 세 방향에는 곡장을 둘렀다.

 봉분 앞 중계에는 문인석 1쌍, 하계에는 무인석 1쌍을 세우고

 문무인석 뒤에는 각각 석마를 배치했다.

  





 


 

  

 


릉안에 이런 비단 잉어들이 있는걸 아는 이들이 많지 않은것 같다.

인기척이 나면 모이를 얻어 먹으려고 떼지어 오는데..?

 



 

  


 

 

아름다운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사진으로 우리나라의 사계와 역사의 흐름 현장 사진을 나열해본다.

 











 








 

 









 








 


 








 

 

 

 

 

영릉답사를 마치고 다음은 어떻게 할까..?를

숙고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