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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이야기들/나라밖엿보기

서유럽 - ITALY Firenze

 

              -여행 일곱째날 - ITALY, 피렌체⑤-    

 

어제하루를 바티칸, 로마시내 야간투어를 무리하게

소화하고 늦게 호텔로 돌아왔는데

오늘 아침은 5시에 모닝콜, 6시부터 조찬,

7시에 피렌체로 출발한다,

 

피렌체까지는 3시간 30분 소요 

 

 

 

 

 

 

 

 

 

 

 

 

 

 

 

 

 

 

 

 

 

 

 

 

 

 

 

고풍스런 식당찾아가는 길

 

 

 

 

 

돌아다니는차, 주차한 차들이 거의 소형이다.

 

 

 

 

 

 

 

 

 

피렌체에 도착  현지식 "파스타"로 점심을...

맛은 별로였으나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

파스타(국수)에 각종 영양가 있는 재료로 생산 공급 한다니..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는 많은 예술가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도시이다.

 

미켈란젤로레오나르도 다 빈치, 단테 등이 피렌체 출신이며,

그 밖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세계 최고의 예술의 도시로 부흥시켰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지 곳곳에는

 이들이 남긴 유적과 예술 작품이 남아 있는데,

 그중에서도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이 된 두오모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거나 새로운 인연을 꿈꾸게 하는

 낭만을 간직한 곳으로 많은 여행객이 찾아오고 있다.

 

오늘날의 피렌체는 쇼핑의 도시이기도 하다.

 유명한 고급 브랜드들이 피렌체에서 처음 생겨났고,

명품 아웃렛이 있어 쇼핑을 좋아하는 이에게 꿈의 도시이다.

 

미켈란젤로와 갈릴레오의 무덤이 있는 "산타 크로체 대성당"

 

 

 

 

 

 

 

 

 

 

 

바사리가 건축한 미켈란젤로의 무덤

메디치 가문의 공작 코시모 1세는 노령의 천재가 사망할 경우

피렌체가 그의 매장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로마의 실력자들에게 미리 통보해왔다.

미켈란젤로의 로마 화실에 남아 있는 모든 물건과 함께

그의 시신은 고향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여러 차례 협조를 구했다.

 마침내 거장이 눈을 감자 코시모 1세는 총애하던 예술가 조르조 바사리를

 로마로 보내 시신을 운구하게 하고 격에 맞게 피렌체에서 장례식을 준비하게 했다.

매장지는 미켈란젤로의 부친이 매장되어 있으며

카사 부오나로티와 인접한 산타 크로체 성당으로 결정되었다.

     

 

   

 

       

 

 

 

 

 

 

 

 

 

 

무장경찰들이 곳곳에 있어

이지역도 테러에 위험지역이라는게 실감..

 

 

 

 

 

옛명성을 이어가려는뜻도 있겠지만

여행객을 유치하기 위해 마차를 운용하고 있다.

 

 

 

 

 

 

 

 

 

 

 

 

 

 

 

어느 화가가 그리는 화폭을 살짝..

 

 

 

 

 

 

 

 

 

 

 

 

 

 

 

 

 

 

 

 

 

 

 

 

 

 

 

 

 

 

 

 

 

 

 

 

 

 

 

 

 

 

 

 

 

베키오 다리(Ponte  vcchio)

아르노강 위의 다리중 가장 오래 되었으며

 1345년 건설로 로마시대 마지막 다리로 알려 져 있다.

 원래 이다리는 푸주간.대장간.가죽처리장등이 있었는데

1593년 페르디난도 1세가 시끄럽고 악취가 난다며

모두 추방후 금세공업자들이 상점을 열어 현재까지  다양한 보석을 판매하며

특히 수공예제품은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한다 .

 

 

 

 

 

 

 

 

 

 

 

 

 

 1345년에 건설된 베키오 다리는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원래 이 자리에는 로마 시대에 지어진 나무 다리가 있었는데,

홍수로 휩쓸려가자 새로 건설한 것이다.

다리의 설계는 지오토의 제자인 타데오 가디가 맡았으며,

아르노 강의 가장 좁은 곳에 세워졌다.

원래 이 다리 위의 상점에는 푸줏간 등이 많아서 늘 냄새가 고약했는데,

가까이 궁전이 있었기 때문에 페르디난도 1세는 궁전 주변에 어울릴만한 보석상들을

이 다리의 상점에 들어서게 하면서 기존에 있던 상점들은 철거했다.

 

 이 다리에서 바라보는 아르노 강의 풍경이 아름다운 데다가,

 세기의 연인인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난 곳이기 때문에 더욱 낭만적인 장소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다리와 주변에는 자물쇠가 많이 채워져 있다.

사랑의 징표인 자물쇠를 열쇠로 채우고,

열쇠를 강에 던져 버리는 연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다빈치동상

 

 

 

 

 

 

 

 

 

 

곳곳에 이렇게 페인트로 분장한 사람들이 서있다.

촬영하거나 만지면 돈달라니..조심..

 

 

 

 

 

 

 

 

 

 

 

 

 

 

 

 

 

 

 

 

 

미켈란젤로의 "다윗상"

    1504년에 피렌체 정부는 다윗상을 의뢰했다.

계약 내용은 미켈란젤로가 대성당의 부벽에 세울 거인 남자 조각상을 만드는 것이다

 피렌체에 있는 거대한 대리석으로 하나의 조각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미켈란젤로가 의뢰 받았던 작업 중에는

가장 특별한 것이어서 예비 스케치부터 철저하게 준비했다.

  높이가 4m인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를 그 시대에 최고의 조각가로 만들어 주었다.

이 상은 고대 그리스 조각을 모방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색채를 가미하여 만들므로 피렌체 공화국의 영광을 기렸다.

 미켈란젤로는 다윗을 통상적인 승리자로 표현하지 않고

 깊은 사색에 잠긴 청년으로 표현했다.

다윗상은 분노와 슬픔을 절제하고 있듯이 보인다.

이것은 그리스 양식이지만 피렌체 조각 양식에도 적합하다고 보았다.

  이 작품은 완벽하고 결함 없는 남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이상을 표현했다.

 서양 미술사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남성의 누드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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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현재 피렌체의 아카데미아의 안에 있고,

똑 같이 본 뜬 모조품이 본래 서 있었던 시뇨리아 궁의 바깥에 서 있다.

눈동자가 있는 부분은 파내어서 회화와 거의 닮은 느낌을 준다.

시선에서도 강철같은 결의가 느껴진다.

시선이 먼 곳으로 향하고 있어 꿈꾸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두오모성당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본 이름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으로

 꽃의 성모 마리아란 뜻을 가졌다

 

 

 

 

 

 

 

 

 

 

 

 

 

 

 

 

 

 

 

 

 

 

 

 

 

 

 

 

 

 

 

 

 

 

 

 

 

 

 

 

 

단테의 생가를 찾아서..

피렌체에서 단테가 살았다는 집으로, 원래 단테가 살던 집은 없어졌지만

피렌체시가 단테가 살았다는 위치의 건물을 사들여 기념관으로 지었다고 한다.

 

단테는 1265년 5월 피렌체에서 태어나 드란데라는 세레명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후에 단테라고 불리게 되었다.

집안에는 명작인"신곡"이 여러나라 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단테 본인은 정치적 이유로 35세때 추방당해 피렌체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집 근처에는 단테의 애인인 베아트리체가 살았다고 한다.

 

 

 

 

 

 

 

 

  

 

 

 

 

 

 

 

 

 

 

 

 

 

 

 

 단테기념관 앞마당에는 "물을 뿌려보면 나타나는 단테의 흉상"이 있다.

이흉상을 밟으면 행운이 온다고 하는 루머가 있어 밟아보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이곳에 설치되어 있는 공용수도꼭지

대게 물이 안나온다.

 

 

 

 

 

가정에 설치한 방범창을 보면 엄청 굵은 쇠창살로 되어 있다.

오래된것 같은데 청동문화가 발달되어서 그런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