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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이야기들/나라뜰헤매기

노란색으로 단청한 응봉산에서../19년4월6일(토)

 

 

 

 

축제를 치른뒤 며칠 지난 응봉산 개나리를 찾아..

 역시 응봉산은 오르지 않고는 설명할수 없는 한강주변의  명불허전이었다. 

 

조선초기 임금이 이곳에서 매를 놓아 사냥을 했다고 하여

응봉(鷹峰)이라고 불렸다는 자그마한 산..

 

 해발 100여m도 안되는 곳이지만 개나리가 피는 봄이 되면

곳을 지나는 길손들에겐 한번쯤 오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터이다.

 

 

 

 

봄맞이로 도시에서는 개나리, 벚꽃, 진달래를 찾는게 

어찌보면 삶의 활력소를  얻는 수단이 되어 있는것 같다. 

 

 

 

 

 

 

  

 

 

 

 

 

 

 

 

 

 

 

 

 

 

 

 

 

초입에 들어서니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게 

개나리로 장식한  포토죤이다.

 

 


 

정상에 올라 주변을 보면..

 

 

   

 

 

 

 

 

정상에서 바라본 성수대교..

 

 

 

 

 

 

 

 

 잠실방향..

 

 

 

 

 

 

 

 

여의도 방향.. 

 

 

 

 

남산방향..

 

 

 

 

다시 포토죤으로..

 

 

 

 

 

 

 

 

 

 

 

 

 

팔각정 망루에서 내려다 본 전경들..

 

 

 

 

 

 

 

 

 

 

 

 

 이곳 주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놓은 입간판들..

 

 

 

 

"두뭇개"

옥수동의 옛 이름이다. 

동쪽에서 흘러들어오는 한강 물줄기와 북쪽에서 흘러내려 오는

 한천(중랑천 냇물)의 두 물줄기가
이곳에서 합쳐진다고 하여 자연스레 붙여진 이름이다.

 이를 한자식 음사(音寫)로는 두모포(豆毛浦)다.


일제 초기까지만 해도 두모동, 두모리 등으로 불려 왔던 두뭇개가

 지금의 옥수동이란 이름으로 된 것은 1936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옥수정(町)이라 한 것을 광복 이후 우리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 마을 339번지에는 옥정수(玉井水)라는 유명한 우물이 있었기에

 "옥정숫 골"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이 고장 앞을 흐르고 있는 강은 동호(東湖)라 하여

"한강 8경"의 하나로 꼽을 정도로 경치가 빼여났다.

 

 

두뭇개 맞은편에는 세조의 측근 실세 한명희의 별장 압구정이 있었다.

압구정은 수양대군을 도와 왕위에 등극하는데 공을 세우고

 한껏 권세를 누렸던 당대의 풍운아 한명회가
관직이 삭탁된 뒤 노년을 보내다 죽음을 맞이했던 정자다.

 

조선의 진경산수화를 일으킨 겸제 정선의 그림 압구정이

 당시 두뭇개의 절경을 실감케 하고 있다.

 

이 두뭇개 일대는 조선시대 때에는 권세가들이 앞 다투어

정자를 지어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였다.
강변 경관이 아름다운 것으로는 소문이 나서

유하정(流霞亭), 황화정(皇華亭) 등 궁실은 물론 김안로의

보안당(保安堂) 정유길의 몽뢰정 (夢賚亭)

조선조 말 조대비가 태어난 쌍호정(雙虎亭) 등 개인 별장도 많았던 고장이다.

 

 

 

 

 

 

 

 

  호랑이 두마리가 받든 조대비의 생가, 쌍호정

수동 삼성아파트 108동 앞

이곳은 순조 8년(1808) 12월에 태어난 조대비(문조비로 추존)의 생가이다.

조대비가 출생하던 날 두마리의 호랑이가

정자앞에 와 있었기 때문에 쌍호정이라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