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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있는오솔길/한국전통문화의 이해, 답사

[한국전통문화의 이해, 답사기행] 합천 海印寺를 찾아서..//24년8월21일


 

 

 

태풍 종다리가 올라온다는 예보에도 답사는 계획되어 있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오전 6시 30분에 집을 나서는데 빗줄기가 제법 세게 우산을 두드린다.

7시에 출발한 버스 와이퍼는 심심찮게 움직이더니 아래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부터는 움직임이 없다.

11시 30분에 합천에 도착했으니, 4시간 30분이 걸렸다.

비는 완전히 그쳤는데 더위는 떠날줄을 모른다.

 

해인사 입구에 있는 식당 "청림"에서 능이삼계탕으로 점심을 하고 13km를

더 올라가 답사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2011년 4월 23일에 가야산 등산하면서 들렸었고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다.

 

 

 

 

 

초입에 용성스님 부도비로 5용이 이수에 있다.

 

 


 

 

 

성보박물관의 전시가 잘 되어있다.

이곳에는 전속 해설사는 없고 안내를 부탁했는데 여직원이 설명해 준다.

 

 

 

 

 

 

유교목판,

 

 

 

 

 

 

홍치4년명동종,

 

 

 

 

 


 

박물관을 지나 사찰로 올라가는데 계곡물 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린다.

그래도 흐르는 땀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1.5kg 나가는 카메라를 휴대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든건

어쩔 수 없다.

 

 

 

 

 

 

12시 30분부터 오후 3시 반까지 해설사의 안내로 경내를 돌아보았다.

우리 민족, 믿음의 총화인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로, 불보사찰(佛寶寺刹)통도사,

승보사찰(僧寶寺刹)송광사와 더불어 법보종찰(法寶宗刹)해인사를 한국의 삼보사찰로 꼽는다. 

 

해인사는 국내 최대 사찰로 명산인 가야산 자락에 위치하여, 가야산을 뒤로하고

매화산을 앞에 두고 있어 그 웅장한 모습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경이로울 뿐 아니라 송림과 

산사가 어우려져 연출하는 설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경에 젖게 하고도 남는다.

 

 

 

 

고사목,

 

 

 

 

 

 

 

 

 

 

 

 

 

 

 

 

 

석등,

 

 

 

정중 삼층석탑,

 

 

 

 

 

 

 

 

 

 

 

 

 

 

 

팔만대장경,

해인사 팔만대장경 목판은 침략으로부터 한반도를 지켜내기 위해  부처에게 기원하는 뜻으로 새겨진 것이다.

세계의 불교 연구가들은 팔만대장경에 새겨진 글자들의 뛰어난 우수성과 문화적 수준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중국의 불교 연구가들은 중국 불경을  연구하는데 팔만대장경을 참고하기도 했다.

섬세하게 새겨진 한자들 역시 팔만대장경의 가치를 더해 주는데 글자를 새긴 방식이 일관된다는 점에서 한

사람이 작업한 결과물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팔만대장경은 뛰어난 역사성과 함께 사상, 종교, 역사적 사건, 개인적 경험들이 연결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문화유산이 된다. 한국의 역사적인 불교 사찰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우수한 세 곳을 삼보사찰이라 하는데

한국 최대 규모의 사찰인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의 보고라는 점 때문에 법보 사찰로 알려져 있다.

"법보"는 불교 교리의 근간이 되는 부처의 가르침들을 뜻하는 용어이다.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고 정확한 

불교경전이 보관된 해인사는 한국의 불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불자와 학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순례지다.

현재 500여 명의 승려들이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고 팔만대장경을 보전하면서 수행생활을 하고 있다.

 

장경판전(藏經板展),

대적광전 위에는 대장경을 모신 건물인 장경판전이 자리하고 있다. 

이 형국은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부처님께서 법보인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을 나타내므로 더욱 뜻 깊다.
국보 52호로 지정된 이 장경각을 처음 세운 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장경이 해인사로 옮겨진

때가 1397년임을 미루어 볼때 지금의 건물은 조선 초 무렵인 1488년 쯤에 세워졌으리라고 여겨지는데, 여려

차례에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다. 장경판전은 모두 네 동으로 되어 있다. 북쪽의 건물을 법보전이라하고

남쪽의 건물을 수다라전이라고 하는데, 이 두 건물을 잇는 작은 두동의 검물에는 사간판 대장경이 모셔져 있다.

이 장경각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조선조 초기의 건축물 가운데에서 건축 양식이 가장 뛰어나서 건축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이 건물은 대장경을 보관하는 데에 절대적인 요건인 습도와 통풍이 자연적으로 조절되도록

지어졌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장경각의 터는 본래 그 토질 자체도 좋거니와 그 땅에다 숯과 횟가루와 찰흙을 넣음으로써 여름철 장마기와

같이 습기가 많을 때에는 빨아들이고, 건조기에는 습기를 내보내곤 하여서 습도가 자연적으로 조절되게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그 기능을 더 원활하게 하려고, 판전의 창문도 격자창 모양으로 하였으며, 수다라전의 창은 

아랫창이 윗창보다 세배로 크게 하였고, 법보전의 창은 그 반대꼴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아주 과학적인 통풍

방법으로써, 건축 방식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따라가기 어려운 우리 선조들의 슬기를 잘 보여 준다.

 

 

 

 

 

수다라장(修多羅藏),

 

 

 

 

 

동사간판전,

 

 

 

 

 

 

 

 

법보전(法寶展),

 

 

 

 

 

 

 

학사대,

최치원동상이다.

계곡에 고은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중국에서 황소의 난시 토격문을 쓰고 인정을 받았으나

신라에 돌아 와서는 골품제에 막히고, 중앙에서 알아주는 이가 없어 외롭게 떠돌다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왕명에 의해 네분 고승의 비문을 지어서 당시 불교사를 알 수 있다.

사상비명(四山碑銘)이라 한다. 

 

 

 

 

 

 

도선국사와 고로쇠 나무,

 

 


 

 

 

역사가 있는 힐링공간,

작지만 큰절, 천녀고찰 동화사

 

 

 

귀경길에 버스안에서 한장을 담았다.

구름의 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