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번째 규모인소양강댐,
다목적 댐으로 높이 123m, 만수위 198m, 제방 길이는 530m, 가용 저수량이 29억 톤이다.
1967년 4월에 착공하여 1972년 10월에 완공되었다. 당시 건설 비용이 318억 7천만원이었다.
홍수 발생시 하류로 물을 흘려보내는 시설인 여수로에는 총 9개의 수문이 장착되었다.
댐 건설 당시 만들어진 기존 여수로에 5개, 2010년에 건설된 보조 여수로에 4개의 수문이
각각 설치 되었다.
이 수문으로 홍수 조절을 해서 수도권 수재를 막아 준다.
춘천지구 전적 기념탑
한국전쟁 때 춘천 지구에 배치된 6사단 7연대는, SU-76 자주포 부대를 앞세우고
침입한 적 2사단을 춘천의 북쪽 관문인 소양강교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굳세게 막았다. 홍천 지구에 배치한 6사단 2연대도 적 12사단을 막아 싸웠다.
6.25전쟁 개전 직후 아군이 방어전에서 승리한 유일한 전투였을뿐 아니라
아군의 주력이 한강 방어선을 형성하고,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벌어준 매우 귀중한 승전이었다.
RF-86기(세이버 전투기)
이 항공기는 1950년 미국에서 제작되어 미 제5공군 소속으로
6.25북괴 기습 남침 도발 전쟁에서 적정정찰, 촬영, 작전지도 제작,
폭격임무 등을 수행하다 1952년 한국공군이 인수하여
대공전선에서 활햔하던 전투기이다.
북한군 동부전선 남침도 춘천지구에서 4일을 지연시켜
우리군이 후방에서 방어태세를 구축케 한 전투이다.
춘천시 우석로 70(석사동)에 있는,
국립 춘천 박물관이다.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로는 국보 제 124호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보물 제 1509호 허목 초상, 보물 제 1871호 동제염거화상탑지,
보물 제 1872호 전 회양 장연리 금동관음보살좌상 등 여러점이 있다.
치미(鴟尾)
지붕 용마루 양쪽 끝머리에 높게 얹는 기와로,
하단부와 연결되는 반원형 흠이 있어 고정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지광국사 해린(984-1070)이 왕사, 국사로 활약하던 시기인 10-11세기경은 법천사가 가장 융성한 시기로,
끝부분에 날카로운 깃이 곧추선 모습은 이 시기 법천사의 위상을 짐작해 보게 한다.
석가보니불 좌상(고려 10세기/원주 학성동)
이 고려 철불은 1912년경 원주 학성동에서 발견되었다.
이 철불과 얼굴과 몸체가 거의 비슷한 철불 한 점이 더 있는것으로 보아 같은 시기에 같은 곳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모양은 항마촉지인으로, 2천5백 년 전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온갖 번뇌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은 그 위대한 모습을 상징한다.
약사불(鐵造藥師佛 坐像)/원주 학성동
중생의 병을 고쳐 주기 위해 약 그릇을 오른손에 들고 있는 약사여래이다.
어깨가 좁은 편이고 몸통이 길쭉하며 손은 유난히 크게 강조되어 있다.
등면(背面)까지 세부가 잘 표현되어있고, 광배를 꽂았던 촉이 남아 있다.
철불 특유의 주조 분할선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밀랍주조법을 이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로자나불(石造 毘盧자那佛 坐像)/고려 10세기.영주 영천사
원주 영천사에 모셔졌던 이 불상은 원주 지역 다른 불상에서 흔히 보이는 것처럼
물결 모양 옷주름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으며, 등 뒤에는 광배를 결합했던 구멍이 남아있다.
남여(藍輿)/조선후기
석조(石造菩薩坐像)/조선 17-18세기
1972년 평창 대화면에서 발견된 불상으로 백색을 띠는 무른 재질의
비석(沸石)으로 조각한 것이다.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을 사용한 불상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 불상들은 17세기 후반부터 승호와 경옥 등으로 대표되는 조각승들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래 턱이 넓고 두터운 각진 얼굴, 다부진 어깨와
상체의 모습이 특징이다.
보살상 위에는 옻칠을 한 후에 금을 얇게 붙였던 것으로, 현재는 대부분
탈락되어 있다. 머리에 쓴 관과 귀걸이, 가사 등에서도 백색과 붉은 색으로
채색했던 흔적이 보인다.
전패(殿牌)/조선 1701년
조선시대 원찰의 불상앞에 설치된 수미단 위에는 화려하게 조가된
나무에 왕이나 왕비, 세자 등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문구를 적은 전패가 세워졌다.
이 전폐는 왕과 세자의 전패와 함께 입수된 것으로 왕의 전폐뒤에 1701년에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국왕인 숙종을 위해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미수 허묵의 초상화이다.
김유정은 1908년 2월 12일(음력 1월 11일) 춘천 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
팔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자주 횟배를 앓았다.
또한 말 더듬이여서 휘문고보 2학년 때 눌언 교정소에서 고치긴 했으나 늘 그일로 과묵했다.
그 밖에도 성장 과장에서 결핵성 늑막염, 치질 등 잦은 병치레를 받았다.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결석 때문에 제적처분을 받았다.
그때 김유정은 당대 명창 박녹주에게 열렬히 구애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향하여 야학운동을 벌이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김유정은 고향의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1933년 처음으로 잡지'제일선'에 '산골나그네'를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한다.
이어 1935년 소설'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1등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가작 입선함으로써 떠오르는 신예작가로 활발히 작품을 발표하고,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가입한다.
이듬해인 1936년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는 등 최악의 환경 속에서 작품활동을 벌인다.
왕성한 작품활동만큼이나 그의 병마도 끊임없이 김유정을 괴롭힌다.
생의 마지막 해인 1937년 다섯째 누이 유흥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죽는 날까지 펜을 놓지 못한다.
회남에게 편지 쓰기(3월 18일'필승전(前)'을 끝으로 1937년 3월 29일 그 쓸쓸하고 짧았던
삶을 마감한다. 나이 30의 짧은 일생에 수많은 향토적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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