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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있는오솔길/한국전통문화의 이해, 답사

[한국전통문화의 이해, 답사기행]융릉,건릉,화성행궁도 踏하고..//24년12월18일


 

 

안내도의 좌측은 정조와 효의왕후의 건릉이고,

우측은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융릉이며 오른쪽 하단은 정조의 초장지이다.

 

 

 

400년 된 향나무,

힘에 겨운듯 한쪽은 고사목이 되어있고, 살아있는 한쪽도 지팡이에 의존하고 있다.

 

 

 

현릉원 거동길,

창덕궁에서 현릉원까지 거동했던 길이 지도이다.

 

 

 

 

능으로 가는길 우측에 왕릉 관리자인 능참봉이 지내는 업무공간이자

제향을 준비하는 재실(齊室)이 있다.

 

 

 

재실을 지나 솔밭길을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가면 우측에 융릉과 정조초장지가 있고

좌측에 건릉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폭설로 오랜동안 지나는길마다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소나무들이 많이 넘어졌다.

 

 

 

정조 초장지는,

1800년 6월 정조가 승하하자 생전에 아버지 곁에 묻히고자 했던 정조의 뜻에 따라 현륭원(顯陵圓)

근처 동쪽에 건릉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1821년 정조비 효의왕후(孝懿王后, 1753-1821)가 승하하여 건릉에 합장하려고 할때

건릉의 능자리가 길지가 아니므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생전에 염두에 두었던 수원향교

옛터에 정조와 효의왕후를 합장하여 모시게 된게 현재의 건릉이다.

 

 

 

융릉으로,

홍살문 안쪽으로 정자각(丁字閣)과 비각(碑閣)이 있고, 동쪽에 있어야 할 수복방(守僕房)이 서쪽에 있다.

융릉의 정자각은 능침에서 비켜나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뒤주에 갖혀서 세상을 떠난 사도세자가 더 이상

답답하지 않도록 앞쪽을 훤히 틔웠다고 한다.

 

 

 


정조는 동대문구 배보산에 있던 아버지의 수은묘(垂恩墓)를 영우원(永祐園)으로 이름을 바꾼 후

이곳으로 천장(遷葬)하면서 현륭원(顯隆園으로 바꾸었다.

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은 정조의 명으로 격을 높여 봉분에는 모란과 연꽃을 조각한 병풍석(屛風石)을

두르고 무석인도 설치하였다.

 

1815년(순조 15)헌경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현륭원에 합장하였고 1899년(광무 3) 원(園)을 

능(陵)으로 높여 지금의 융릉(隆陵)이 되었다.

 

 

 

 

 

 

건릉으로,

정자각 앞의 동쪽에는 능지기가 머무는 수복방과 서쪽에 재실에서 마련한 음식을 데우는

수라간이 배치되어야 하나, 융릉에는 수복방이 사서쪽에 배치되어있고 수라간은 사라지고 없다. 

동쪽을 비워둔 것은 정조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한다.

 

 

 

 

멀리 떨어져 보아야 더 잘 보인다.

 

 

 

 


 

 

 

화성행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