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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있는오솔길/한국전통문화의 이해, 답사

[한국전통문화의 이해, 답사기행]論山 明齋古宅, 돈암서원, 익산 나바위성당을 찾아..//26년5월27일


 

 

 

많은 비가 예보된 날에 떠나는 전통문화답사는 은근히 걱정이 되는게 순리다.

8시에 출발한 버스는 내려가는 내내 비내리는 모습은 를 볼 수가 없었고,

10시 40분에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위치한 명재고택에 도착했다.

숙종이 내린 정려문이 마을 어귀에 있다.

 

 

 

 

 

 

 

 

사랑채,

남자들 3세대가 불편없이 동거할 수 있는 구조이다. 뒷산이 노성산으로 산성이 있다.

 

 

 

 정남향에서 살짝 비틀어 배치를 한것은, 조선시대에 왕 외에는 정남으로 집을

짓지 못한데에서 만들어낸 지혜이기도 한것 같다. 

 

 

 

일상 생활에서 안채에서는 여성중심의, 사랑채에서는 남성들의 삶을

섬세하게 배려하여 표출한 건축이라고 한다.

 

 

 

 

 

 

 

 

사랑채 누마루 전면 축대위에 30-50cm 정도의 높고 낮은 여러개의 괴석으로

조그만 무릉도원을 만들어 놓았다.

그 옆에, 작은 판석, 일영표준(日影標準) 이라 불리는 해시계도 있다.

표지판을 판 위에 맞추고 중앙에 기둥을 세우면 시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안채로 들어가본다.

 

 

 

 

 

 

 

 

 

 

안채 뒤로 가서 들여다 본 대청 마루,

 

 

 

 

 

사랑채 뒷마당의 작은 공간에 화오(花塢)를 조성, 앵두, 석류, 매실 등과 같은

유실수를 심어 놓았다.

 

 

 

 

 

 

 

 

 

 

 

 

 

 

 

 

 

 

 

 


 

 

 

돈암서원으로 들어 가는 길,

밀농사가 잘되었다. 이 밀은 춘궁기에 수제비등으로 주식으로 살아왔다.

 

 

 

세계유네스코에 등재되어서인지 주변 관리가 잘 되어있다.

 

 

하마비가 서있고,

 

 

 

'산양루'와 어우러진 서원의 모습이 아름답다.

'산을 우러러 보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자연과 학문에 대한 경외와

 겸손한 마음을 담은 이름이다, 2츨으로 올라가면 서원 전체를 감상할 수 있다. 

 

 

 

'입덕문', 덕에 들아간다는 뜻이다.

 

 

 

돈암서원 원정비,

원정비는 1669년에 돈암서원 양성당 앞에 세워졌으며, 연산돈암서원지비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돈암서원을 세운 배경과 구조, 사계 김장생 부자의 성품과 

학문적 업적에 대한 칭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장생 부자는 주자학과 예학의 

대가로서 벼슬을 멀리하고 고향에 내려와 학문 연구에 매진 하였다.

송시열 찬, 송준길 글씨다.

 

 

 

 

 

 

 

 

정의재(精義齋),

정의란 자세한 의의라는 뜻이다. 정의재는 학문을 하는 유생들이 모여

경전의 의의를 자세히 강론하던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강대석 기단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장판각(藏板閣),

'장판'이란 판을 간직하여 보관한다는 뜻으로, 김장생의 문집인 '사계전서',

김장생의 부친 김계휘 당시의 사실을 기록한 '황강실기', 김집의 문집인 

'신독재전서'등과 '경서변의, '가례집람', '상례비요' 등이 보관되어 오고 있다.

 

 

 

숭례사(유경사),

숭례사는 돈암서원의 중신 건물이자 사당으로 사꼐 김장생과 김집, 송시열, 송준길이

봉안되어 있다. 숭례사란 이름은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로 군자가 열심히 덕을 닦고 

학문을 이루는 곳이란 뜻이다. 별칭으로 유경사란 이름도 지니고 있다.

 

 

 

정회당(靜會堂),

정회는 유생들이 수행하는 방법 중 하나로 고요하게 몸소 실천하며 수행한다는 뜻으로

사계선생의 부친인 황강공께서 강학하던 건물이며, 대둔산자락의 고운사터에서 1954년에 

옮겨 왔다. 정회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후면열 가운데 2칸은 마루방을 두었다.

 

 

 

 

응도당(凝道堂),

응도당은 돈암서원의 벡미이자 상징같은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이다.

이곳에서 가장 큰 건물로 강당 역할을 했는데, 여기에서는 주로 장수강학(유생들이 심신을

수양하는 것을 장수라 하고 스승과 문담을 주고 받으며 공부하는 것을 강학이라고 함)

건물 내부는 모두 마루를 깔았고, 옆면에는 비바람을 막는 풍판을 달았는데, 풍판 밑에는

눈썹 지붕을 두었다. 처마의 암막새 기와에 '숭정육년계유이월일서원'이란글이 있어 1633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며, 우리나라 건축물 중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하는 건물로 두고두고 추앙을 받고 있다.

그로 인해 서원 건물 중 별도로 국가 보물의 큰 지위를 누리고 있다.

 

 

 

돈암서원은 원래 인근 숲말에 있었으나 1880년 홍수로 서원 앞뜨락이 

침수 피해를 받으면서 1880년고 1881년 사이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그런데, 응도당은 건물이 워낙 커서 감히 옮길 엄두를 못하다 1971년 

비로소 이곳으로 가져왔다.

 

 

 

 

 

 

 

 

 

 


 

 

 

강경읍내에 있는'시골집'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익산 나바위성당은 익산시 망성면이 주소지다.

1987년 7월 18일 사적 제318호로 지정되었다. 이 성당은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1845년(헌종11)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1906년에 지은 건물이다.

 

 

 

 

 

 

 

 

 

 

 

 

 

 

 

 

 

 

 

 

 

 

 

 

1906년 베르모렐 신부가 감독과 설계를 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동원해 지었다. 당시에는 목조 건축으로 앞면 5칸, 옆면 13칸이었는데, 

1916년 건물을 고치면서 일부분을 벽돌로 바꿨으며, 그 뒤 다시 2차례

수리를 하였다.

 

 

 

 

 

 

 

김대건 신부님 성상,

 

 

 

 

 

 

성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

 

 

 

망금정(望錦亭),

망금정은 금강 황산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화산의 끝자락에 너른 바위가 있어

나바위로 불리는 곳에 있다. 예전에는 망금정 아래까지 금강 강물이 넘실거렸으나 

1925년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간척하면서 금강 줄기가 비뀌어 지금은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평야로 오늘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지방답사갔다 귀경하는 길이 저녁 6시경이니,

이렇게 빨리 오는날도 처음인것 같다. 한강은 언제나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