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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이야기들/나라밖엿보기

중국<무후사와 유비묘 그리고 금리거리...5. 11>=4일차

 

 

 

 

 

 

 

 

 

<구채구 관광을 마치고 성도로 돌아오는 4일차 관광>

 

토지가 비옥하고 천연 자원이 풍부하기로 유명한 중국 사천. 중국 역사가 낳은

 세기의 명작, 삼국지의 위촉오 중 유비가 세운 나라인 촉한의 주 무대가 되는 곳..

새도 넘기 힘들다는 천혜의 요새 검문관(劍門關),

제갈량의 후계자이자 뛰어난 지략가인 무장 강유의 고향,

나복채촌(蘿卜寨村) 삼국성지 무후사(武侯祠)

유비의 시신이 묻혀 있는 유비혜릉(劉備惠陵)까지..!

 

1800년 전, 천하 제패를 꿈꾸며 삼국 영웅들이 누비던

천혜의 절경을 찾아 사천성으로 떠난다.

 

 

차창으로 보이는 산중턱에는

2008512일 강도 8.0으로 무수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었던 

지진의 흔적을 남기려고 그 당시 피해 현장임을 표시해 놓고 있다.

 

 

 

 

 

 

 

관광버스에서 하차하여 바라본 금리거리..

오래된 흔적이 거리 전체에 배어 있었다.

 

 

 

 

 

 

 

 

사당안으로 들어서면

"무후사와 유비묘" 가 있다. 

 

 

 

 

 

 

 

 

 

 

 

 

 

 

 

 

 

 

 

 

 

 

 

 

안으로 들어가는 길 양편으론 수십년 넘게 정성을 깃들여

가꾸어 놓은 분재들이 진열 되어 있고..

 

 

 

 

 

 

 

 

 

 

 

 

 

 

 

 

 삼국시대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가이드의 안내를 받은후..

 

 

 

 

 

 

 

 

무후사는 당나라, 송나라때부터 이미 명성이 자자한 명소였으며,

현존의 주체건물은 청나라 강희제(1672)에 중건, 확장하였다고 한다.

사내에는 유비, 제갈량등 촉한의 영웅상 50구를 공봉하고있다.

 

 

 

 

 

 

 

 

 

 

 

 

 

 

 

 

 

 

 

 

 

 

중국 3대 명문장 "출사표"가 후세의 명장 악비(岳飛)의 필체로 이곳에 새겨있다.

 

  전출사표 : 이는 제갈공명이 위나라를 토벌하러 떠나면서 황제에게 올린 글로써..

     -신량아뢰옵니다..선제(유비)께서 왕업을 시작하신지 아직 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는데

     중도에서 돌아가시고 지금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리 익주는 오랜 싸움으로지쳐있으니..-

 

흔한 말로 이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장비                                                                    유비                                                                       관우   

 

 

 

 

 

 

 

 제갈량 

 

본래 촉나라의 황제인 유비가 주군이기에 소열사라고 불려야 맞겠지만,

제갈량이 모셔진 사당인 무후사가 대표 명칭으로 불리는 것은 

그만큼 중국에서 사람들에게 제갈량의 인기가 압도적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런지..? 

 

중국 사기극에서도 삼국이 겨루는 시절에 제갈량이 하는 말은

절대로 틀리지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알수있다

그래서 지금도 내생각에 제갈량은 언제나 총명하고 믿음이 가는  인물로 남아 있다

 

 

 

 

 

  

 

 

 

 

 

 

 

 

 

 

 

유비묘

 

가이드 설명에는 중국황제릉치고 이렇게 작은 묘는 없을것이라며

평소 근검한 유비의 성품으로 사후 단촐한 묘지조성에 대한 유언이 있었지 않았나..?

또한 분봉위에 조성된 나무들이 그대로 자라고 있는걸 보면

도굴 방지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는게 아닌지..?

 

 

 

 

 

 

중국에서는 작은 규모의 왕릉일지는 모르나

우리나라 왕릉과 비교해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휴지통도 옛모습처럼  말끔하게

만들어 배치해 놓았다.

 

 

 

 

 

 

삼의 묘

 

 

 

 

 

 

 

 

 

 

 

 

 

 

 

 

 

 

 

 

 

 

 

 

 삼국시대의 거리를 재연해 놓은 "금리거리" 관광

삼국시대 거리의 모습을 재현해서 만들어놓은 전통의 거리..

 늘어선 가게들 진열대에는  전통기념품들이 즐비하고

 

먹거리를 만들어 파는 음식점에서는 먹거리를 즐길 수 있겠는데

우리네와는 다른 식문화라서 들릴곳이 마땅치 않았다. 

 

 

 

 

 

 

 

 

 

 

 

 

 

 

 

 

 

 

 

얼마나 많은 신발들이 스치고 다녔으면 돌이 이렇게

반질 반질하게 닳았을까..?

몇겁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중국인들의 그 기나긴 세월에 끈을 놓지 않고 지금까지 이런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리하는 그 끈기에 기가 막힐지경이다.

 

내구두 발자국도 흔적은 남지 않겠지만 이곳을

밟고 지나갔다는 기억은 이 사진을 보면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것이라고 나 스스로 되뇌이고 싶다.

 

 

 

 

 

 

 

 

 

 

 

 

 

 

 

 

 

 

 

 

 

 

 

 

 

 

 

 

 

 

 

 

 

 

 

 

 

 

 

 

 

 

 

거리 중간에 연못이 있어

옛 도심거리의 삭막함을 조금이나마 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