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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있는오솔길/한국전통문화의 이해, 답사

[한국전통문화의 이해, 답사기행]정조의 효성이 깃든 사찰, 용주사..//24년12월18일


 

 

화성 용주사,

조계종의 사찰로 신라말 854년 선종의 2대조인 염거화상에 의해 창건된 길양사가 그 전신이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으나 사도세자의 융릉이 이 근처로 왔을때는 쇠락해 있던것을

왕실의 원찰로 재건하고 용주사로 개명하였다.

이 사찰에는 정조가 좋아하는 "부모은경" 목각판이 남아있고, 김홍도의 부처님 후불탱화가 지금도

걸려있다.

 

 

 

 

 

 

정조의 위패를 모신 능침사찰이기에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왕실의 능, 원, 묘 등의 정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붉은 칠을 한 두개의 기둥을

연걸한 보에 붉은 살을 쭉 박은 형태로 경의를 표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궁궐 양식의 삼문,

양 옆으로 돌담이 아닌 행랑채가 붙어있어 임금이 용주사에서 

머물 수 있도록 여러면에서 신경쓴 것을 엿볼 수 있다.

 

 

 

불교의 화두인 "이 뭣고?"

 

 

 

 

천보루와 5층 석탑,

단단하고 견고한 느낌이 풍기는 궁궐 양식의 건축미를 느낄 수 있다.

 

 

 

불음각,

1985년 만들어진 범종으로 국보인 범종 대신 사용하는 종이다.

 

 

 

 

대웅보전,

1790년 창건 당시 지어진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조선 후기 능침사찰의 배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구조이며,

내부에 봉안되어있는 삼세여래후불탱화(보물)는 

조선중기 최고의 화가인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다.

 

또한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는 정조의 친필이라고 한다.

 

 

 

앞쪽인물은 크게 보이고, 뒤쪽인물은 작게 보이는

음영기법의 후불탱화이다.

 

 

 

 

 

보물지정 예고된 "감로왕도"

 

 

 

보현보살,

 

 

 

백의 관음,

 

 

 

 

 

 

 

 

호성전에 있는 위패,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위패를 모셨다.

 

 

 

 

전강대종사스님(1898-1974)의 사리탑,

지광국사현묘탑 모양으로 세워졌다.

 

 

 

 

효헹박물관 앞 정원에 세워진 "부모은중경탑",

부모의 크고 깊은 은혜를 보답하도록 가르친

불교경전이 3층 석탑에 새겨져 있다.  

 

 

 

용주사 효행 박물관에는,

 

 

 

소대와 전패,

소대(疏臺)

소대는 전패와 같이 불단 위에 모셔지는 의식장업구로, 의식의 발원문이나 소문을 말아서 보관하는 법구이다.

용주사 소대는 위아래로 세장한 장방형의 몸체를 사각형의 좌대로 받치고 있는 형태로, 투각을 이용한 섬세한

문양의 표현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전면과 측면에는 범자로 시방세계에 오염됨이 없이 깨끗하고 청정하게 한다는 뜻의 진언을 표현한 이 작품은

조각수법을 통해 전패와 함께 조성된것으로 추정된다.

 

전패(殿牌)

전패는 왕실의 안녕과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패로, 대부분의 사찰에서 주불전의 불단 위에 모셨던 의식장업구이다.

용주사 전패는 본래 4위로 구성되어 대웅보전의 불단 위에 모셔졌던것이나 현재는 명시문구가 사라진 1위만이

남아있어, 축원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권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