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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저산산이좋아/한양도성길을

조선후기 대표적인 이궁(離宮)인 경희궁지에 가다..//25년1월3일


 

 

 

경희궁지(慶熙宮址) 사적 제271호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45(신문로2가)

 

경희궁의 첫 출입문인 흥화문(興化門),

1932년 박문사 북문으로 이치되었다가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되었고

1988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는데 원래는 동남쪽 금천교 밖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인 다포계(多包系)의 공포를 보이는 웅장한 건물이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

 

 

 

 

 

 

 

1901년(광무5년) 이전에 촬영된 경희궁 숭정전 사진

(프랑스어 교사인 샤를 알레베크가 제작한 사진 엽서)

 

 

 

 

경희궁에는 외조(外朝)인 흥화문을 비롯한 승정문(承政門)등 출입공간과

치조(治朝)인 숭정전, 자정전(資政殿)구역, 또 연조(燕朝)인 융복전(隆福殿),

장락전(長樂殿)구역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 외에도 회상전, 집경전, 만학정 등

100여동의 대소건물들이 있었음을 궁궐지나 서궐도안 등의 자료로서 알 수 있다.

 

 

 

 

 

경희궁은 원종의집터에 세워진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이궁이다.

원종(1580-1619)은 선조의 5째 아들이자 인조의 부친으로 후에 왕으로 추존되었다.

이 곳의 원래의 규모는 약 7만여평이었다. 그러나 민족항일기인 1907년부터 1910년에 걸쳐

강제로 철거되어 궁궐로서의 존재가차를 상실하였고, 궁터도 철저하게 파괴되고 변질되어

결국 현재의 규모로 축소되었다. 

 

 

 

 

순조 29년 10월 이 궁에 화재가 발생하여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1831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시대에 들어서 건물들은 헐리고

경성중학교가 세워졌다. 이때 숭정전을 비롯한 몇동의 건물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즉, 숭정전은 남산 기슭에 옮겨져 조계사의 본전으로 사용되어 현 동국대학교내

정각원(正覺院)으로 현판을 걸었는데, 후에 이곳으로 이전하려 했으나 너무 낡아서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숭전전은 이중월대 위에 세운 정면 5칸이다.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한 건물인데 기둥의 배열은 전·후 내외진으로 하였으며

후측 중앙에는 어좌를 꾸몄다. 건물의 4면은 꽃살문의 분합을 달았고, 그 위에는 교창을 내었다.

공포의 외부로는 창방위에 외2출목의 쇠서와 교두형 첨차를 두어 다포계의 특징을 보이고 있지만

공간포 대신 화반을 두고 공포 내부에는 출목없이 양봉형으로 보아지를 마련하여  보를 받치고 있음도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숭전문쪽을 바라보니,

 

 

 

자정문으로,

 

 

 

 

 

 

 

측문으로 나와,

 

 

 

일제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방공호,

 

 

 

내부는 들어갈 수가 없어  해설사가 휴대한 사진으로 보니,

120m 깊이있는 길이에 간간의 방을 만들어 놓은 걸 알 수 있다.

 

 

 

이 계단을 오르면 경희궁지로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