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조형물"해머링 맨",
해머링은 미국의 조각가인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연작으로 1979년 미국 뉴욕 전시회에서
3.4m 높이로 처음 전시됐다. 이후 미국 시애틀·댈러스·캘리포니아·미니애폴리스·개인스빌·
로스앤젤레스,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바젤, 노르웨이 릴레스톰, 일본 나고야 등 11개 도시에 설치됐다.
광화문 해머링맨은 2002년 6월 4일 종로구 흥국생명빌딩 옆에 자리했다.
키 22m, 무게 50t으로 세계 11개 도시 해머링 중 가장 크다.
해머링은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하절기 기준)까지 35초에 한 번씩 망치질을 한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가동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동작은 몸을 구부린채 오른손에 있는 망치를 아래로 조심스럽게 천천히 내리치기를
반복하는데 이런 모습이 매일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경기대회에서 사용한 "AM805 의전용 콤비"
박물관 앞마당에 절단 해체되어 철근에 기대어 서 있는 광화문,
광화문은 경복궁과 함께 1395년(태조 4년)에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그 후 270여 년간 방치되다가 1865년(고종 2년) 재건되었는데, 1차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제 위치를 떠나는 수난을 겪다가 한국전쟁 때 포탄을 맞아 축대만 남기고 소실되었다.
2차 복원은 1968년 3월 15일에 시작하여 9개월만에 준공되었는데, 지금 박물관 앞마당에 있는
부재가 그것들이다. 그런데 화려한 단청으로 덮혀진 부재들의 속살에는 나무의 나이테 대신 콘크리트
속에 철근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추녀 마루에는 잡상도 마련한 전통구조 방식을 따랐다.
조선 18대 왕,
현종의 글씨
조선 제 17대 왕,
효종이 동생인 안평대군 이요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요의 회복을 기뻐하며 새옹지마 고사에 비유하였다.
매화가지에 앉은 새 그림,
징비록(懲毖錄),
영의정 유성룡이 임진왜란 기간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책
가장 오래된 한양의 판문,
풍속도병,
육조거리 모형,
육조거리는 광화문 앞의 대로를 이르는 명칭으로 의정부와 육조 같은 국가의 중추적인 관청들이 있었다.
높은 장량(長㾗)이 양쪽으로 영 지어 있는 너비 약 60m의 이 거리는 왕도의 중심 대로였다.
이 곳은 경복궁과 함께 왕도의 상징이었으며, 왕과 백성이 만나는 소통의 거리이기도 하였다.
한성부 판윤 구택규 초상화,
윤위(1725-1756)가 그린 구택규(具宅奎 1693-1754)의 초상화이다.
1753년(영조 29) 1월 17일부터 3월 25일까지 한성부 판윤으로 재직하였다.
한성부 판윤이 되기 전에 그는 1748년(영조 24) 영조의 명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법의학서인"증수무원록"을 편찬하기도 했다.
선조어필-청풍계(淸風溪)편액 글씨,
청풍계에 있던 안동(장동) 김씨 김상용(金尙용容 1561~1637) 의 가택 정자인
태고정에 걸려있던 "청풍계편액의 탁본이다. 태고정은 김상용과 교류하던
왕족·문인들의 모임 장소로 유명했는데, 여기에 선조 어필 편액인"청풍계"와
석봉 한호(1543~1605)가 쓴 "태고정(太古亭)이 걸려 있었다.
심의풍 호패,
23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83세에[ 한성부 판윤에 오르다.
호패는 현재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으로, 조선시대에 16세 이상의 남자에게 발급되었던 패찰이다.
호구를 파악하고 신원을 증명하기 위한 용도로 발급되었으며 신분과 계급에 따라 재질과 기재 사항이 달랐다.
심의풍 호패는 상아로 만든 아패로 이름과 생년을 비롯하여 벼슬에 들어간 연도, 과거에 합격한 시기가
기재되어 있다. 호패의 주인인 심의풍(1805~)은 23세 되던 해인 1827년(순조27) 무과에 합격하여,
선전관을 시작으로 전라도 수군 절도사,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83세때인 1887년(고종 24) 정 2품
한성부 판윤에 올랐다.
오강수문 철책문, 돌거북이,
2003년 청계천 복원 사업 당시 청계천 오간수문 터에서 출토된 철책문이다.
오간수문은 개천의 물이 도성 밖으로 흘러 나가도록 하기 위해 흥인지문 남쪽에
설치했던 수문이며, 여기에 철책문을 달아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였다.
거북이는 오간수문 터에서 출토된 거북이 모양의 석조물로, 홍예 기초석의
물 가름석 위에 놓여있었다.
한양의 금장구역과 은평구 이말산 비석,
한양에서는 도시의 보호를 위하여 도성 밖 일정지역까지 금장구역을 설정하여 무덤을 쓰지 못하게 했다.
이 구역을 벗어나면 묘지군이 형성되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곳이 은평구 이말산 근처(현 은평뉴타운 지역)이다.
이곳의 발굴조사에서는 5,000여 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전시된 보모상궁김씨의 비석 등 6기는 이말산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들이다. 한양의 금장구역은 북쪽으로는 북한산 보현봉에서 불광동-대조등-역촌동에 이르는
지역이며, 서쪽으로는 연신내-북가좌동-성산동, 남쪽으로는 한강, 동쪽으로는 중랑천-우이천으로 북한산에
이르는 지역이다. 동쪽으로는 양주 송계원 및 대현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양화도 및 덕수원에 이르며, 남쪽으로는
한강 및 노도에 이른다.
마포나루와 황포돛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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