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을 돌아보는것은 덤으로,
일부와 수어장대를 향해 오른다.
남한산성을 돌아보다 눈에 자주 들어 오는게 부러진 소나무를 쌓아 놓은것이다.
얼마나 많이 부러졌는지 장작더미가 되어있다.
하산길에 국청사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섰다.
기왓장으로 담을 만들어 놓은게 정감이 간다.
일주문이 별도로 없을뿐만 아니라 단청도 되어있지 않다.
솟을 대문같은 출입문에 '나라를 맑게 해준다'는 국청사 현판이 걸려있다.
얼마 남지 않은 석탄일이어서 불자들의 바램을 비는 연등이 아름답다.
대웅전, 삼청각, 천불전 등 세개의 전각이 있다.
대웅전과 천불전 가운데 샘터가 있다.
안내문에 이 물은 방문객의 갈증을 풀어주고 마른 목을 적셔준다는
감로주라고 안내문에 적혀있다. 우리도 감로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였다.
뒤로 부처님과 공덕비가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중앙으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셨는데,
법당안의 주불은 국내에서는 3개뿐인 것이라고 한다.
신라 후기 859년 강원도 철원 심안사에 봉안된 천불의 하나로 전해지는 불상이 있는데
원래는 삼존불로 1393년 심원사 화재와 임진왜란 등으로 소실, 도난당한 것을 구해와
이곳에 봉안했다고한다.
국청사 연혁,
인조 3년(1625년)에 각성(覺性)대사를 팔도도총섭총절제중군주장에 임명하고 팔도의 승군을
동원하여 남한산성의 축조를 담당하게 할때 7개의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국청사이다.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담당하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비밀리에 군기와 화약·군량미 등을
비축하였던 사찰이다. 그 뒤 의병의 군기창고로 사용하다가 비밀이 누설되자 일본군이 불태워서
절터만 남아있던 것을 1968년에 보운(普運)중창하여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경직목사 우거처,
남의 집에 임시로 몸을 붙여 산다는 뜻으로 우거처(寓居處)라 이름지어진 곳이다.
1973년 1월 2일 은퇴한 후 2000년 4월 19일 별세하기까지 만 27년을 기거했던 곳이다.
문이 닫혀있어 관람불가 지역인줄 알았는데, 관람가능시간까지 안내되어있다ㅣ.
마을이 가까워지니, 자투리 땅을 이용해 주말 농장을 운용하기도 한다.
고추모종을 많이 심어 놓았다.
석산정에서,
오찬하고, 상품권 추첨도 하고,
가톨릭 교우회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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