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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이야기들/나라뜰헤매기

[보령지역]오천항, 그곳에 충청수영성이 우뚝 서있었다..//26년5월16일


 

 

 

2019년 방영된 KBS 드라마'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인 오천항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주말이어서인지 주차장은 만차로 주차장이 아닌 길가에 주차해 놓았다.

항구 위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충청수영성은 1510년 돌로 쌓은 성으로, 조선시대

충청도 서해안 방어의 사령부였다.

 

 

 

 

 

 

 

 

 

 

 

 

 

영보정에 올라 오천항에 정박한 배들과 푸른빛의 서해바다를 조망해 본다.

 

 

 

 

 

 

 

 

 

천상누대화증강산(天上樓臺畵中江山)이라 쓰인 편액, 높은 망루에 오르니 그림같은 강산이 펼쳐진다.

 

다산 정약ㄷ용은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제14권 영보정연유기(永保亭宴遊記)를 통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세상에서 호우(湖右)의 누정이 뛰어난 경치를 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보정을 으뜸으로 꼽는다.

옛날에 내가 해미에 귀양갔을때, 마음은 있었지만 가보지 못했다. 을묘년 가을에 나는 비로소 금정(金井)으로부터

이 정자에 오를 수 있었으니, 어찌 정자와 인연이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때 기이한 것을 좋아함으로 인해 

좌천되었다. 그러나 천하의 사물이 기이하지 않으면 드러날 수 없다는 것을 영보정을 보고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산이 육지에 있는것은 깍아 세운 듯 뽀족하고 잘라 놓은 듯 우뚝하지 않으면 이름이 날 수 없으나, 갑자기 물 가운데로

들어가 섬처럼 되어 있으면 작은 언덕처럼 조그맣게 솟아오른 것이라도 기이하게 보인다.

물이 강하(江下)에서부터 바다로 흐르는 것은 부득이한 사세이므로, 비록 깊은 물이 넘실 넘실 흘러가더라도 칭찬

하기에 부족하나, 갑자기 바다에서 산 속으로 들어가 호수가 되면, 그 물결치는 흥취는 기대할 수 없지만 그것이

기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고마산(姑麻山)이 서쪽으로 몇십리를 내달아 꿈뜰거리면서 바다 가운데 다다랐는데, 마치 학(鶴)이 목을 길게 빼고

물을 마시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이른바 물이 갑자기 산 속으로 들어가 호수가 된 것이다.

 

영보정은 이 산에 의지하고, 이 호수에 임해있기 때문에 이 지방의 으뜸이 된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사물은 기이하지

않으면 이름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때 절도사 유공 심원(柳公心源)이 나를 위해 술을 준비했고,

태학생(太學生) 신공 종수(申公宗洙)는 시인인데. 그와 함께 가을 달밤을 맞아 고마호에 배를 띄웠다가 길을 바꾸어

한산사(寒山寺) 아래에 배를 대었다. 

여기에는 또 노래하는 사람과 피리 부는 사람이 있어 그들과 더불어 절의 누대에 올라 좋은 음악을 연주하게 하였다.

나는 귀양 온 사람이므로, 근심스런 모습으로 저 하늘 한쪽에 계시는 임금을 우러러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이 마음 또한 여기에 같이 기록하여 영보정기(永保亭記)로 한다.

 

 

 

해유시화첩,

해유시화첩은 규남 하백원(圭南 下百源, 1781-1744)선생께서 충남 보령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리고, 

여러 선비들이 지은 시를 함께 묶은 시화첩이다.

1841년 석성(현, 부여군 석성면)현감에 제수된 규남 선생은 토호들의 사주와 모함으로 1842년 보령으로

유배되어 1843년에 석방되었다.

유배지에 머무른 1년 정도의 기간에 보령의 많은 선비들과 교우하였다.

 

1842년 4월 15일 규남 선생은 경헌 이우명, 평천 이병중, 취죽 조순영, 국은 심사숙, 조일여등과 배를 타고

송도와 안면도 사이를 지나 황학루, 영보정등을 유람하였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면 규남 선생은 그림을 그렸고 여섯 사람이 각 풍경에 시를 지어 화첩을 만들었다.

해유시화첩속의 내용은 송호와 영보정, 황학루 그림 3점과 전서체로 쓰인 서호기관 그림한점, 18편의

시문과 서문, 발문, 기문이 더해진 42쪽의 호접식 시화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