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매못 성지 인근에 있는 오천항은 바다 양면에 있는 산이 방파제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아무리 심한 폭풍우에도 피해가 없고, 수심이 깊어 간만의 차로 인해 선박의 통행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서해안의 천혜의 항구이다.
오천항은 이미 백제 때부터 횡포라는 항구로 이용되었으며, 통일 신라 당시에는 당나라와의
교역항구로서 이름이 높았고, 고려로 접어들면서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오천항 일대를
지키는 군선이 머물렀던 곳이다.
오천에 수영이 설치된 것은 조선조 때이다. 조선조 당시 우리나라에는 바다를 지키는 3개의
수영이 있었다. 충무의 경상 수영, 여수의 전라 수영, 오천의 충청 수영이다.
각 수영에는 수군절도사를 상주시켰으며, 바다를 지키는 군영이 함께 있었다. 오천에는
조선 태조 5년(1405년)에 수군첨절제사가 자리하면서 처음으로 군영이 설치되었고,
중종 4년(1509년)에 서해안 방어 기지로 쌓기 시작한 오천성은 무려 16년간에 걸쳐 축성되었다.
높이 3m, r길이가 3,000m나 되는 오천성에는 4개의 성문이 있었고, 정3품관의 수도절제사가
상주하였다. 오천항은 군선 100여척이 정박하고, 수군도 3,000명이 항상 주둔하였던 군항이었다.
현재는 성벽 일부와 충청 수군절도사가 주둔했던 장교청 건물과 진휼청만이 남아 있다.

갈매못이 형장(刑場)이 된 이유
외연도와의 연관성,
외연도는 보령시에 속해 있는 70여개의 섬들 중 가장 멀리 있는 섬으로서 1846녀(현종12년) 6월에
프랑스 함대 세실 사렬관이 3척의 군함을 이끌고 외연도에 정작해서 기해박해 때(1839년)에 앵배르,
모방, 샤스탕 신부 등 3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을 살해한 책임을 묻는 편지를 상자에 남겨 놓고 돌아간
적이 있었다. 이사건을 조정에서는 조선 영해 침입 사건으로 간주하여 당시 옥중에 있던 김대건 신부의
처형이 앞당겨졌고, 1866년 3월 30일에는 흥선 대원군이 서양 오랑캐를 내친다는 의미에서 세실함장이
침범했던 외영도에서 가까운 오천의 수영을 택하여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를 비롯하여 오메트르
오 베드로 신부, 위앵 민 마르티노 루까 신부, 황석두 루까, 장주기 요셉 등 5명을 끌고 와 외연도를
바라보고 목을 쳐서 처형하게 하였던 것이다.
고종의 국혼,
병인년 3월은 고종의 국혼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았었다. 당시 궁중에서는 무당들을 불러 점을 친 결과
국혼을 앞두고 한양에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는것은 국가의 장래에 이롭 못하니, 사형수들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250리 밖으로 내보내어 형을 집행케 하라는 무당의 예언에 따라, 오천의 충청수영으로 보내어
군문효수하라는 명이 내려졌던 것이다.
성 황석두 루까상,















점심은 대천시내에 있는'시골돌솥쌈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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