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장군 생가터를 찾아서..
인헌초등학교 앞에서 왼쪽으로 가면 낙성대역 4길이 나오는데
이 길로 조금 가면 강감찬 장군의 생가터가 나온다.
강감찬장군 유허비(서울시 기념물 제 3호)
이곳이 인헌공 강감찬장군이 태어난 장소라고 한다.
마을 한 가운데에 있을뿐 아니라 그 흔한 옛집이 있는것도 아니어서
기대와는 달리 약간은 실망했다는것..
다만, 낙성대 유허비와 향나무에 얽힌 얘기가 있어 그런가 보다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나올수 있었다.
향나무의 유래
유허지에는 장군과 더불어 자랐다고 전해지는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이 향나무는 1968년 2월 26일 서울시 보호수로 관리되어 왔으나
1987년 고사되었고, 그 고사목 일부를 기념관에 전시하고 있다.
현재의 향나무는 이곳을 정비하면서 150년된 나무를 고양시로부터
이식재하였는데 그때가 1996년 4월이었다.
무궁화꽃이 피어 있어서..
낙성대(落星垈)를 찾아서..
"낙성대"하면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이 연상된다.
지하철이 대중화되면서 2호선 역 이름으로 더 기억되는 장소로 되었거니와
언제부터인지 오래전 역사속의 인물들은 시험문제로 등장하는 정도이니
단답형으로 숙지하는 문화가 된 탓도 그중 한 이유가 되었을것이다.
"이 인물이 태어나던 날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져 생가터를 낙성대로 지었다.
이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퀴즈가 출제되었을때 정답이 떠 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 인물이 바로 강감찬장군이라니까요..~"
낙성대역에서 낙성대를 가려면 다소 걸어야 하며 초행인 경우는 헤맬수 있다.
낙성대역 4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관악 02를 타고 가다
낙성대공원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특히, 주말 아침녘에 02번 버스를 타려면 관악산가려는 산객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음도 참고하면 좋겠다.
자차를 이용한다면 관악구민 종합 체육센터에 주차해 놓고..
첫번째 만나게 되는 강감찬 카페이다.
올들어 처음으로 36˚C 나간다는 엄청 따가운 날씨인데도
이곳에 들어서니 시원하다는 느낌이 온다.
공원 광장에는 이곳을 들리는 주민들을 위한 각종 운동기구와
앉아 쉴수 있는 쉼터, 그리고 소나무향을 맡으며 걸을수 있는 숲길이 연계되어 있다.
정문방향으로 나와보면..
길 건너에 영어마을 관악캠프가 있고..
영문표기로된 낙성대공원 표지판이 보인다.
광장에 들어와서 이길따라 가면 되고..
낙성대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고
공원 안에는 강감찬 장군의 동상과 강감찬 장군의 사당인 안국사를 비롯,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비장 충천(飛將沖天) 한 강감찬 장군(948-1031)의 말 탄 모습..
강감찬 장군은 고려 현종 때의 장군으로
거란의 40만 대군을 물리친 것은 물론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대한민국 오천 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장군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낙성대는 바로 그런 위대한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장소다.
고려 정종 3년 봉천동에서 삼한벽상공신 궁진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장군이 태어날 때 이곳에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 이름 붙여졌다.
낙성대 안에 있는 삼층석탑은 고려 백성들이 강감찬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현재 강감찬 장군의 사당인 "안국사"에서 볼 수 있다.
홍살문을 지나기전에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연못을 보고..
몇발자욱 옮기면 홍살문에 이른다.
홍살문을 지나면 강감찬의 애국심과 용맹함 그리고 나라를 구한 장군에 대한 감사를
기리기 위해 만든 곳이 바로 안국사(安國祠) 앞에 이른다.
"落星垈" 라는 글자가 조경수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둘레 산책길로 오르는 길..
관악산 계곡의 시원 청정한 바람과 함께 "소나무 향"이
산뜻함을 더해 상쾌한 마음을 갖게 하는 쉬운 코스이다.
안국문 좌측에 있는 강감찬 장군 전시실을 들렸다.
자동출입문인데 꾹 눌러야 열린다.
슬쩍 눌렀다 안열리면 그냔 돌아갈수도 있다는것..
한번 더 세게 눌러보기 바란다.
전시실에는 강감찬 장군에 관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고
동영상이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첫번째 보이는 고사목 향나무가 있다.
강감찬(948~1031년)은 서희와 더불어서 거란족의 외침을 막은 장군으로 유명하다.
그의 시호는 인헌이다.
그래서 관악구에는 인헌초등학교처럼 인헌이 들어간 이름이 자주 눈에 띈다.
강감찬이 살던 고려 초기, 중국대륙에서는 송과 거란이 전쟁을 하던 시기였다.
거란은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고 요나라를 건국한다.
이후 고려까지 침범하려는 야욕을 보였다.
거란은 993년 1차 침입을 한다.
고려는 서희의 외교전략으로 거란과 전쟁을 치르지도 않고,
현재의 평안북도의 위쪽에 위치한 강동 6주를 회복한다.
거란은 1010년 2차 침입한다.
당시에는 개경이 함락되고 고려 현종이 나주까지 피란을 간다.
고려는 강동 6주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거란군과의 화친을 맺는다.
당시 고려 장수 양규는 돌아가는 거란군에 대항해서
고려의 수 많은 포로를 구출하던 중 전사한다.
1018년 거란이 3차로 공격한다.
강감찬은 이미 거란이 침입을 예상하고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다.
강감찬은 거란의 장수 소배압이 이끌던 거란군에 맞서
지금의 평안북도 구성군의 위치인 구주에서 크게 승리한다.
이 전투를 구주대첩(귀주대첩이라고도 부른다)으로 부른다.
이 전쟁으로 거란은 상당한 전력을 상실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후 고려 북방민족은 여진족이 강성하게 된다.
고려 초기 서희, 양규, 강감찬, 윤관, 박서와 같은 이들은
고려가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역사인식으로
거란, 여진, 몽골과 같은 북방민족에 맞서 당당히 싸워나갔다.
안에서는 영상이 계속 상영된다.
칼을 잡고 인증샷할수 있는 포토 죤..
전시실을 둘러보고 안국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로 "삼층석탑" 우측으로 강감찬 장군 "사적비"
그리고 내삼문이 정면에 보인다.
고려백성들이 장군이 나라를 구한 업적을 칭송하고자 3층 석탑을 세웠는데
1964년 파손된 부분을 보수하고 안국사와 공원을 만들면서
원래있던 생가터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그런데 석탑 상륜부가 소실되어 보이지 않는다.
내삼문을 들어가면 강감찬 장군의 영정을 모신 안국사이다.
장군님을 정면으로 보는 것은 결례이므로 좌.우 계단을 이용한다.
정면에 장군의 영정이 보이고..
좌측면과..
우측면의 내부 모습이다.
되돌아 내삼문을 바라보면 이런 경관이..
안국사 뒤에서..
안국사을 나와 강감찬축제 사무국을 지나..
사잇길을 빠져나오면..
낙성대 뒤로 오르는 등산로길이다.
전통가옥으로 지은 화장실이 있고..
관악문화예절원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낙성대를 한바퀴 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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