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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저산산이좋아/친구와산행길

[산행기]초여름 산행, 숲길을 찾아 양평 부용산(芙蓉山)으로..//26년6월13일


 

 

2년전인, 24년 6월 29일에 다녀왔던 부용산을 다시 찾았다.

지하철 노선도를 이용하여 검색해 보면,

우리집에서 양수리역까지는 24개 역을 거쳐 1시간 40분이 소요되는걸로 나온다.

그런데 갈아타는 왕십리에서 양평행 경의중앙선을 탈때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30여분 기다리는 것은 기본으로  감내해야 한다.

오늘이 그랬다, 10시에 양수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30분이나 늦었다.

이럴땐 기다려 준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배가되어 다가온다.

 

오전 10시 30분 ,

양수역에 내리니 역사 주변은 산행과 자전거하이킹을 위해 모인 사람들로 활기가 넘쳐 보였다.

 휴일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 보인다. 예보는 낮 최고기온이 31도까지 오른다고 한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듯한 날씨다. 이런 날 부용산을 찾은 이유는 울창한 숲길이 길게

이어져 있어 강한 햇볕을 피하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길로 가려는데 남한강줄기에 연꽃이 보인다.

 

 

 

진행방향을 연꽃이 있는 세미원으로 연결되는 가정천변으로  내려가봤다.

 

 

 

안쪽으로 들어가려는데 진입 통제선이 되어있다.

 

 

아직은 망울이 대부분이지만 몇몇 수련은 꽃잎을 열기 시작했다.

얼마후에 이곳으로 연꽃을 담으러 출사를 올 계획으로 있다.

 

 

 

한여름이면 이곳에가득 화려한 연꽃 세상이 펼쳐질텐데, 

지금은 그 시작을 알리는아쉬운 모습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진다.

 

 

 

 

 

 

 

 

 

 

 

 

 

 

 

이제부터 산행길로 들어선다.

 

 

 

 

 

 

 

한낮의 더위가 느껴지는 쨍한 해가 머리위에 있다.

 

 

 

우리가 가야 할 코스이다.

남한강과 같이 하는 숲길이어서 이 길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첫번째로 만나는 안내문,

'맑은 행복, 양평'이란 문구가 정겨워 보인다.

 

 

 

미끈하게 뻗어있는 나무들이 숲을 가꾸고 있다.

 

 

 

산 정상까지 3326m라는 표식,

오늘같은 날씨는 쉽게 볼 거리는 아니다.

 

 

 

 

 

한발짝씩 내디딜때마다 푹신한 느낌을 준다.

낙엽이 쌓인길을 걷는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두 물아, 

내 눈물과 같이 흘러라,

세 물이 되게...

 

 

 

2년전에도 잡초만 우거져 있던 밭,

초입에 있는 조그만 방죽에는 지금도 물이 고여있고 그곳에서는 여전히  물이 흘러 내리고 있다.

 

 

나무도 꼬리가 있는것 같아서,

 

 

 

부용산에도 고사목이 된 소나무가 여러곳에서 목격된다.

쌓인 눈 무게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나무들인것 같다.

 

 

 

약간 가파른 길을 오르려니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첫 안내 이정표에서 252m 걸어 온 지점,

많이 걸어 온것 같은데 느낌이 다르다.

 

 

 

 

 

사유지로 철망을 쳐 놓은곳이어서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오르 내리기를 몇번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다시 오름길이 나온다.

 

 

 

드디어 마지막 구간이다.

이 계단을 오르면 정상이다.

 

 

 

 

 

전망대,

몇사람이 누워있다.

 

 

 

 

 

 

 

부용산(芙蓉山),

높이는 366m, 나지막하지만 남한강과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다.

'부용'은 연꽃을 의미하며, 산의 형태나 풍경이 연꽃처럼 아름답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두물머리에 안개가 끼면, '부용산 봉우리가 연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왕비의 전설 깃든 부용산에서,

때는 고려시대, 한 왕비가 결혼 첫날밤 방귀를 뀌어 왕에게 미움을 사서 부용산으로 귀양을 갔다.

그런데 왕비는 왕자를 잉태하고 있었다.

결국, 부용산에서 왕자를 낳았지만, 아들의 정체성에 대해 비밀을 간직한채 홀로 아들을 키우며

조용한 삶을 살아갔다. 그것도 때가 있는 법, 아비없는 자식으로 살아가는것에 한계를 느껴 아들에게

왕자라는 사실을 알려주게 된다.

왕자는 도성에 들어가'아침에 심어 저녁에 따먹는 오이를 사라.'며 돌아다니다가 왕을 만나게 되어,

자초지정을 듣고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왕은 왕비를 다시 도성으로 불러들이지만,

왕비는 부용산에서의 부용산에서의 조용한 삶을 선택했다.

죽음을 맞이한 왕비는 부용산의 산신이, 되어 그 지역 사람들에게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고 있다.

 

 

 

 

 

 

 

 

 

 

점심을 하기 위해 즐겨 애용하던 장소를 찾아 간다.

산상에서의 젓심 한끼니를 위해, 방산이가 고생이 극심하다.

생수 큰통이며, 바나며, 방석이며, 베낭 무게만도 엄청나다.

그 고행에 비해 얻어먹는 사람은 고맙기는 하지만 금새 잃어버린다.

물론 공치사를 바라고 하는 일은 더우기 아닐테지만,

 

 

 

하산길,

 

 

 

 

 

누군가의 무덤에 망초가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돌보는이 없으면 이렇게 되고 있으니, 허망이로세..

 

 

 

신원리 마을 뒤산,

고사목도 많이 보인다.

 

 

 

 

 

요즘은 어딜가도 금계국과 망초가 판을 친다.

 

 

 

 

 

 

 

아사아틱 백합(Asiatic Lily),

 

 

 

 

 

베로니카(Veronica),

 

 

 

우리가 내려온 부용산,

신원역에서부터 시작하여 이길로 오르는것도 시도해 볼만한 일이다.

 

 

 

신원리 마을,

 

 

 

 

 

여운형(1866-1947)은,

일제 강점기 때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 운동가이자,

해방 이후, 좌우를 아우르며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힘쓴 정치인이다.

1947년 8월 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지근(韓智根)에게 저격 당해

생을 마감했다.

 

한지근은?

일제 강점기의 한인애국단, 반공세력과 관련된 인물이다.

여운형은 당시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좌파적 경향으로, 친소적 세력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를 문제삼아 여운형을 저격한 인물이다.

 

 

 



묘골애오아공원을 지난다.

'묘골'은 여운형이 태어난 마을 이름이며,'애오와(愛吾窩)는 '나의 사랑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고향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신원역에서 음료수로 체력을 보강하고, 오늘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