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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저산산이좋아/친구와산행길

[영종도, 운서, 인천 차이나 타운]운서역에서 출발, 차이나타운에서 오찬을..//26년6월20일


 
 
공항철도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는데 마음이 착잡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행군을 하자고 할것이 明若觀火한데,
어떻게 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운서역에 도착했다. 역시 바람이 너무 세다.
 

 
 
예견했던 일이지만 스케줄대로 도보로 이동하려면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더우기 우산으로 바람까지 안고 가야 하는데 힘도 들지만 시간이 더 걸리는건 감내해야한다.
역에서 300여m를 걸어가다, 두패로 나뉘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한사람은 계속 걸어서 가자하고

다섯사람들은 버스로 가자하고, 이런저런 격쟁을 거쳐 221번 버스를 30여분 기다렸다 타고

영종 역사관으로 이어지는 이정표가 있는 근교에서 하차, 걸어가면서도 서로들 말이 없다.
기분은 별로지만 이만하기를 다행이라고 안위를 하면서 비내리는 길을 말없이 걸었다.
 

 
 
비가 내리는데도 모노레일을 타고 기분좋게 지나가는 일행들이 보인다.

저사람들도 극성이라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우리들 기분은 아직도 별로다.

 

걸으면서 조용히 생각에 잠겨 보기도 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 있겠지, 내가 하자고 하면 따라 오겠지,하는 하게 된다.

하지만 살다보면 주변 사람들 생각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타인을 내기준으로 

판단하는 순간 갈등이 시작된다. 나이 들면서는 고집도 불통으로 바뀌고, 배려도 없어지고,

더우기 이해 하려고 하지를 않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런 심오한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철길따라 유카(yucca)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마치 하얀 종들이 주렁주렁 달린것처럼 보여서 눈에 띈다.
 

 
 

 
 

 
 

 
 

 

 

인천대교가 보이고,

갯벌로 펼쳐져 있는 둘레길을 우산을 받치고 걷는 분위기에 기분이 배가된다

 

 
 

 
 
갯벌에 펼쳐 놓은 하트모양의 옹달 샘,
누군가에게는 잊혀지질 않을 추억으로 간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제 계단을 오르면 영종박물관으로 연결된다.

 
 

 
 

 

 

연자매,

둥글고 판판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옆으로 세우고,

이를 말이나 소가 끌어 돌림으로써 곡식을 찧는 연장이다.

연자방아라고도 하며, 옛날 부잣집은 개인이 소유하였지만 보통은

마을사람이 공동 소유하고 사용하였다.
 

 

 

연자방아,

 
 

 
 

 
 

 
 
역사관 3층에 김찬삼 한국 최초의 세계 여행가의 기획전이 열리는 안내도 곁들어 있다.
 

 
 

 
 

 
 

 
 

 
 

 
 

 
 
양주성 선정비를 놋그릇을 모아 세우다.
양주성 선정비는 영종 첨절제사(永宗僉節制使) 양주성의 공덕을 기리는 비다.
고종 12년에 초지진을 포격하고 돌아가던 일본 군함 운요호가 영종진을 포격한 후
점령하자 이에 조정에서는 인천부를 방어영으로 승격시키고 홍문관 제학이었던
양주성을 영종 첨절제사로 임명하였다.
양주성은 재임기간동안 주민들에게 선정을 베풀며 운요호의 포격으로 불에 탄
관아를 복원하고,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그가 떠나자 주민들이 그 뜻을 기리고자
놋그릇을 모아 고종 14년(1877년)에 이 비를 세웠다고 한다.
원래는 곤돌 고갯마루에 세워져 있었으나 1990년대 초에 영종동민회관(현 영종동 경로당)
앞으로 옮겨졌다가 2020년에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강화를 침공한 프랑스 군인들,

1871년 4월 8일 영종방어사 이병숙은 영종도 앞바다에서 이양선이 바닷물의 깊이를 재고

있음을 관측하여 상부에 보고하였다. 이때 조선에서는 인천읍 관리 김진성과 통역관 등 3인을

콜로라도호에 승선시켜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교섭을 진행하였으나,미군 측에서 이들의 품계가

낮다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했으며, 광성보 전투와 초지진, 덕진진 전투로 이어졌다.

 

 
 
3층에 있는 한국 최초의 세계 여행가 김찬삼 기획전으로,
 

 
 

교사 김찬삼이 제자들과(1950-1953)

 

 

 

알래스카 케치칸에서(1959)

눈 덮인 지형과 기후 때문에 도로 교통이 불편한 알래스카에서는 

바다에서도 이류과 착륙을 할 수 있는 수륙양용 비행기가 중요 교통

수단으로 쓰였다.
 

 

 

알래스카 포인트 배로(1959)

교육자 김찬삼은 아이들을 사랑해 가는 곳마다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미국 샌디에이고(1960)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고릴라 부인'상과 함께,

청년시절 김찬삼의 별명은 고릴라였다. 자전거 여행으로 피부가 검게

그을린 데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입이 커서 붙여진 별명이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부근(1960)

미국 본토 여행을 함께 한 개조 자동차, 차량 앞쪽은 운전과 기록 등 서재로

뒷좌석은 휴식 공간으로 트렁크는 식량과 취사도구를 갖춘 부엌으로 꾸며 

움직이는 숙소로 활용하였다. 길가에서 식사하는 모습이다.

 

 

 

페루 쿠스코(1960)

나귀를 타고 안데스 산맥을 넘는 김찬삼, 안데스 원주민의 전통복장인

판초를 걸치고 양가죽 신발을 신었다. 찬삼에게는 김찬이라는 형이 있었는데

그 형도 여행을 좋아하였다. 그런데 자전거여행을 하다가 그만 19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 형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은 결심이 적혀 있었다. 

'내가 지금은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넘어가고 있지만 10년 후에는 안데스산맥을

넘어가리라!' 이 일기장을 읽고 김찬삼은 결심했다.'내가 형의 꿈을 대신하리라!'

김찬삼이 마침내 그 형의 소원을 성취해준 것이다.

 

 

 

수단(1961) 

아프리카 수단 남부 백나일 강가의 나체족

 

 

 

아프리카 가봉(1963)

슈바이처박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찬삼은 양념도 없이 국수만 끊여 먹으며 힘든 아프리카 여행을 했다.

 

 

 

가봉 랑바레네(1963)

슈바이처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김찬삼,

슈바이처 병원은 치료비가 무료인 대신 환자나 그 가족들이 병원을

위해 봉사한다.

 

 
 

 

 

유라시아(1992)

김찬삼에게 여행의 열망을 갖게 한 책 중 하나는 어릴적 읽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다. 그는 마르코폴로가 동방으로 왔던 것처럼 자신은 언젠가

서방으로 갈 것이라는 미래를 설계하였다.

그리고 나이 67세에 '해를 따라 서쪽으로'의 대장정에 올랐다. 중국'위해'에서

시작해 실크로드를 따라서 남아시아로, 유럽 최서단 포르투갈'카보다호카'까지

총314일 간, 총연장 73,000km, 약 40여개국 방문을 통한 아구답사(서방견문)의

위대한 여정을 완수하고 아구답사기(서방견문록)를 남겼다. 

 

 
 

나의 영원한애인 인 배낭과 지도와 카메라가 있는 한 나의 여행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의 말대로 그의 여행은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학들에 의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월미도행 여객선으로,
 

 
 

 
 
갈매기와 새우깡과의 대결,
 

 
 

 

 
선창에서 비맞으며 앉아있는 갈매기를 보면서,
잠시 생각에 젖어본다. 차이나 타운에 가서 무얼 먹을까?

 

 
 

 
 

 
 

 
 

 
 

 
 

 
월미도에서 버스를 타고 인천 차이나타운에
도착,

 
 

 
 

 
 
일전에 들렸던 풍미식당을 찾아서,
 

 
 
점심정식으로 백암이 대접했다.
인당 이만원으로 몇년전 그대로이다. 맛도 같다.
 

 
 

 
 

 
 

 

 


 

 
 

 
 

 
 

 
 

 
 

 
 

 
 
삼국지 스토리가 벽화로 이어져 있다.

 
 
공자상 뒤 계단을 내려오는 줌마들의 모습이
재미있어 보인다.
 

 
 
자유공원으로 들어 가는 길,
주변에 꽃이 제대로 피어있다.


 

  

 
 

 
 

 
 

 
 

 
 

 
 

 
 

 
  

 
 

 
 맥아더 장군 동상,
오래전, 들렸을때의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이다.

 
장미가 아직도 피어있어 한컷,

 
 

 
 
차이나 타운 황제의 계단에서,
1층,왕의 길
2층,황제의 알현
3층,무릉도원의 여행
4층,만리장성의 여정
5층,도화원의 복숭아
 

 
 
관운장의 청룡도를 쥔 손을 얼마나 만졌는지,
그곳 손등만 반질반질하다.
재물의 신 관우, "관우의 손을 세번 만지면 재물이 들어 온다는 설이 있다."고 적혀있다.
 

 
 

 

 

우여곡절을 격었지만 마침표는 잘 찍었다.
아쉬웠던건 나이에 걸맞게 움직여야 하는데
우리팀은 그런 부문에서 약간 우월주의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우려된다.

그래도 고마운건 다들 건강해서 전국을 헤집고
다닐수 있으니 다행이다. 그래서 고맙다.

 


 

 
 
22년 12월31일,
호친구네와 인천 차이나타운 풍미에 들러 식사하고,
하나개 해수욕장에 가서 해넘이를 보냈다.
이날, 해수욕장에는 인산인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