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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있는오솔길/국내가볼자리

수덕사 방문

 

 

 

 

 

 

 예산의 수덕사(修德寺)

옛날의 아늑하고 포근한 모습이 아니었다. 하기야 수덕사뿐이겠는가..?

이름 난 사찰일수록 몇 해 뒤에 가보면 그 사이 숱한 불사(佛事)를 일으켜 커다란

건축물들로 경내를 채워놓아 사찰 본래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수덕사에도 입구에 그로테스크한 건물이 나타나 방문객을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게 아닌데.." 하며 걸어 들어가니 드디어 낯익은 소전 선생의 현판이 나타나 반긴다.

  추사 이후 한국 최고의 서예가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선생(1903~1981)의 필치다.

 

 

 

 

 

 

 

 

 

 

 

  오늘날 우리가 서예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은 소전 선생 덕분이다.

해방 직후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고 하는데

우리가 그대로 따라 쓸 것이 아니라고 하며 서예(書藝)라고 하자고

 주장하신 일을 떠올리면서 대웅전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어느덧 대웅전이 앞에 서 있다.

 덕숭총림 수덕사에는 좋은 곳이 많지만

하이라이트는 단연 대웅전이라는데

 별반 이론이 없을 것 같다.

 

 

 

 

 

 

 

 

 

 

 

 

 

 

 

수덕사 대웅전은 국보 제49호.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의 하나다.

 

 

 

 

 

 

 기록에 의하면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건립됐다고 전한다.

 그러니까 700년된 건물이다.

물론 그 세월 동안 여러 번 개보수를 했지만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1962년12월20일에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고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구성된 맞배지붕이며,

공포는 2출목으로 되어 있다. 대체로 부석사무량수전과 같은 형식이나,

초방(草枋) 위에 주심(柱心)도리를 지탱하는 우미량(樑)이

무량수전의 직선적인 것과는 달리 심한 곡선으로 변했고,

또 내반(內反)된 소슬, 장식적인 대공, 쇠혀처럼 뻗은 두공(頭工)의 끝 등

전반적으로 무량수전에 비해 고려 후기의 성격을 나타낸다고 한다.

 

 

 

 

 

 

사월 초팔일이 가까워 옴을 느끼게 한다.  

 

 

 

 

 

 

 

 

 

 

 

 

  수덕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던 수덕여관은 어디로 갔나 했더니

 나가며 보니 모조품 같은   초가집 한 채가 있다.

그러나 내 가슴에 남아 있는 정취어린 옛 수덕여관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이응로 화백의 돌에 새긴 그림은 남아 있어  눈길을 머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