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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있는오솔길/성지순례(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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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까 황석두 삽티성지../22년1월8일 부여 홍산에서 무량사로 가는길에 "삽티성지"라는 안내석이 보인다. 그런데 그 위에 어느 종씨인지 모르겠지만 잘 지어진 사당이 눈에 확 들어오다보니 천주교 성지인 삽티성지라는 곳은 그냥 지나치는 우를 범할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더구나 십자가 색상이 흔히 보는 색이 아니라서 더 이상해 보였다. 맨아래 주차장에 차를 놓고 걸어서 올라가보니.. 위에도 두군데 주차장이 더 있다. 나무로 만든 십자가는 미세 먼지로 희뿌연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신자들에게 신앙이란 무었인가..?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한다. 이곳 삽티 성지에는 1790년대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하여 숨어 살았던 곳이다. 한국 천주교회가 초기 선각자 이존창 알로이시오 공사가 선생이 고향 예산 여사울에서 배척 받은후 홍산..
부여 충화에 있는 "지석리 성지"를 찾아서../22년1월6일 [승용차] 충남 부여읍에서 서천 방면 4번 국도로 진행하다 홍산면 소재지에서 좌측의 613번 지방도를 따라 3-4km쯤 가면 일흥 주유소가 있는 삼거리가 된다. 여기서 충화 쪽으로 계속 직진하면 2.8km 지점 좌측에 지석묘, 팔충사 직전에 있다. 부여 지석리는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 치명한 임천 괴인돌 출생 손선지 베드로와 임천 출생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두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시성비가 있는 곳이다. 병인박해 때 혹독한 고문 속에 순교한 이들을 위해 비신자인 손선지 종씨들이 기증한 밭에 시성비를 세웠다.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는 충청도 임천의 괴인돌이라는 마을이었다. 손선지(1820~1866, 베드로)의 고향이며, 정문호(1801~1866, 바르톨로메오)도 임천 출생이었다. 당시 박해를 피해 고향을..
[성지순례]익산 나바위성당../22년1월5일 익산을 지나다 보면 고즈넉한 들녘 한복판에 소나무숲이 있고 그 아래로 성당이 보인다. 그곳이 바로 "나바위 성당"이다. 주차장 한편에 웅포 곰개나루길 안내판이 있고 평일이라 그런지 우리가 당도한 오전 11경엔 승용차 1대만이 주차해 있었다. 나바위 성당은 전라도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곳으로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1821~1846)신부가 1845년 조선교구 3대 교구장이신 페레올주교, 다블로 신부, 11명의 조선 교우들과 서해를 통하여 귀국하면서 첫발을 내디딘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성당이 나바위 성당이다. 제대 주변에 있는 세례대와 성상들은 중국 남경 라자로 수도원에서 제작한 것으로 성당 건축때 들여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기념관을 지나.. 본당 뒷편으로 들어가면 화산 천주교회라..
2017년 직장사목국 국내성지순례../17년9월2일(토) 명동성당 성모동산에 8시 30분에 모이라는 공지에 따라.. 명단을 확인하고 9시에 배론성지로출발하는 3호차에 탑승했다. 2017년 직장사목부 국내성지순례 1. 일 시 : 9월 2일(토) 8:30 ~ 19:30 2. 주 제 : 순교자의 숨결을 따라서.. (베론성지 - 용소막성당 - 풍수원성당)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서울시내구간은 약간 밀리는듯 하더니 그런대로 흐름을 타고 문막 Ic를 빠져나가 원주를 거쳐 11시에 배론성지에 도착한다. 하루를 무사하게 함께해준 3대의 버스 배론성지에 도착하다. "배론"이라 하여 어떤 외방선교회와 관련이 있나..? 싶었는데 그러나 생각과는 엉뚱하게도 "배론"은 순수 우리나라 말로 이곳의 지형자체가 배 밑바닥과 같은 모양으로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충청북도 제천군 ..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홍산성당)성지/대전교구/17년2월23일 [대전교구] 지석리(支石里)성지 지석리는 병인박해(1866년) 때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 순교한 성 손선지 베드로와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가 태어난 고향으로 두 성인의 유해는 현재 천호 성지에 묻혀 있다. 그분들의 순교의 삶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억 해드리기를 바라는 후손들이 부지를 희사하여 기념비를 세우게 되었다 한다. 어려서 입교한 손선지는 16세 때 샤스탕 신부로부터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병인박해 때는 전주 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골에 살며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하였다. 또한 양반의 집안에서 태어난 정문호 성인은 천주교를 알게 되자 곧 입교했는데 교우들뿐만 아니라 외교인들에게조차 깊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 뒤 박해를 피해 고향을 버리고 여러 지방을 유랑하다가 병인박해 때에는 전주 지방의 ..
독뫼 공소(양지뜸) 성모동산 과 작은재 공소터/대전교구/17년2월22일(수) [대전교구] 독뫼 공소(양지뜸) 터 성모동산 천방산이 보이는 길을 지나 앞에 보이는 문산면사무소로 들어가는 길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수암리로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이곳 독뫼공소터는.. 재너머에 있는 산막골성지(판교면 금덕2리)와 왕래하도록 되어있으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시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가 있을 때에 서울, 경기, 내포지역 신자들이 이곳으로 피해들어와 교우촌을 이루어 살던 곳으로 독뫼(음지뜸)에서 옹기굴과 숯가마를 이용하여 첨례를 지냈고, 1899년 11월에는 뮤텔 주교의 사목 방문이 있었다. 박해시대 순교자 관련 기록에 의하면 독뫼 교우촌의 신자로는 이 암브로시오, 박 서방, 이 아폴로, 이 안드레아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3대째 교우인 이 암브로..
매괴 성모순례지(감곡성당)../청주교구/15년8월1일 [청주교구] 매괴 성모순례지-감곡성당 2015년 8월초 친구들과 여름 휴가차 삼척가는길에 들른 매괴 성모순례지.. 초대 본당 임가밀로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소속으로 1893년 서품후 받은후 바로 입국하여 그다음해인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본당 사목지가 북쪽끝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산지부락 이라서 본당 이전을 생각 하던중 사목 방문차 여주를 지나 장호원에 이르러 산밑에 대궐같은 집을 보고 이곳이 본당 사목지로서 적합 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즉시 임가밀로 신부는 "성모님 만일 저 대궐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기도 하였으며,부엉..
미사강변도시에 위치한 구산성지../16년9월24일 [수원교구] 구산 성지- 구산동성당 미사 스타필드에서 쇼핑과 오찬을 하고 구산성지에 도착하니 오후5시가 넘었다. 한국성인 103위 성인 중 71번째 나오는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을 비롯 여덟 분의 순교자가 묻히신 거룩한 聖地로 이곳 뒷산이 거북 형상을 닮았다 하여 거북 구(龜)자와 뫼 산(山)자를 써서 구산이란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낮은 돌담과 겹겹이 기와를 올려 쌓은 출입구에 들어서면 성모마리아 상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신다. 양반의 자제로 유복한 가정과 존경받는 가문에서 태어난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이 신앙의 험난한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830년경.. 경주 김씨 계림군파(鷄林群波) 15대 손인 김영춘의 맏아들로 정조 19년(1795년) 구산에서 태어난 그는 만집(萬集), 문집(文集), 두 동생과 함께..
2016년 직장사목부 국내 성지순례../16년9월3일 2016년 직장사목부 국내 성지순례 날짜:16년 9월 3일 장소:명동, 왜고개, 새남터 -천주교서울대교구 사목국 직장사목부- 9시 30분에 부지런한팀은 출발하고 있었다. 명동대성당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고딕 양식, 최초의 벽돌 건축 교회인 명동성당, 우뚝 솟은 첨탑이 특징으로, 12~15세기 무렵 서유럽에서 유행하던 건축 양식이다. 1688㎡의 부지에 길이 68m, 너비 29m, 높이 23m(종탑 높이 46.7m) 규모다. 프랑스 국적의 유진 코스트 신부가 설계를 맡았다. 코스트 신부는 명동성당을 짓기 전 중림동에 시험작으로 약현성당을 먼저 건축했다. 그래서인지 약현성당은 명동성당의 축소판이면서 건축학적으로 서로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명동성당의 준공 당시 명칭은 대지 이름을 딴 종현(鍾峴)성당이었으나..
해미성지../대전교구/15년5월23일 [대전교구] 해미순교성지(여숫골) 속칭 "해뫼"라 일컬어지는 해미 고을은 역사적으로 조선 초기에 병마 절도사의 치소를둔곳으로서 조선 중기에는 현으로 축소 개편된 진영에 1400-15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무관 영장이 현감을 겸하여 지역 통치를하던 곳이다. 내포일원의 해안 국토수비를 명목으로 진영장은 국사범을 독자적으로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다 할 국토 수비의 전공 기록을 남긴 바 없는 해미 진영은, 1790년대부터 1880년대에 이르는 100년간,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대량 처형한 오명만을 남기고 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천주교회사에 있어서, 대박해의 때로 기록된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조정의 천주교 탄압..
양화나루 잠두봉 절두산성지(절두산성당)../서울교구/14년11월16일 [서울교구] 절두산순교성지 - 절두산성당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것 같은 형상이라 잠두봉이라 불리웠던 곳이 1866년 병인양요시 프랑스함대가 양화진까지 진격하자 흥선대원군이 양이로 더럽혀진 한강의 물을 서학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한다고 척화비를 세우고 1만여명의 교인들을 이곳에서 목을 잘라 처형했다는데서 "절두산"이라 불리웠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후 순교자들의 넋이 서려 있는 이지역을 성지로 조성하였고 병인박해 100주년이 되던 1967년에 비로소 성당과 박물관이 준공되었다. 한강유일의 원형보존지역인 이곳은 1997년 우리역사의 중요한 유적지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사적제 399호(서울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로 지정되었다. 단체로 예약한 신자들, 개인으로 방문한 일반인들로 주차장이 포화상태라서 성지안 도..
배론,용소막성당/원주교구/14년10월9일 흑석동성당 15구역 성지순례 가는 날.. 오전 8시에 차는 정확하게 출발한다. 성지가는 길에 박달령휴게소에서 잠시 머무는 여유도.. [원주교구] 박해시대 교우촌이며 여러 사적과 복음사의 애환을 간직한 순교자들 요람지 배론(舟論) 성지에 도착하다. ​ 배론은 박해 시대 교우촌이며 여러 사적과 복음사의 애환들을 함께 간직한 순교자들의 요람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 알렉시오가 를 작성한 곳이며,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무덤이 있고, 1855년 한국 최초의 격식을 갖춘 신학교인 성 요셉신학교가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배론[舟論]이란 명칭은 마을이 위치한 골짜기의 형상이 배 밑바닥 같다고 한 것에서 부쳐진 이름으로, 본래는 팔송정 도점촌이며, 1890년대 이래 현재의 행정 구역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주변..
서소문 순교성지에서(약현성당)../서울교구/14년9월10일 [서울교구] 서소문 천주교 순교자 현양탑 - 약현성당 순교성지 조성 사업을 본격화한 서소문공원 천주교성지의 화강암으로 제작된 세 개의 탑은 마치 조선시대 죄인의 목에 걸린 형틀이다. 탑 아래쪽에는 유리로 막혀 있고 물이 흐르도록 되어있다. 사형장 서소문 밖 사거리 "서소문"은 서울의 여러 성문 중 광희문과 더불어 시체의 운반이 허용된 곳이다. 제1사형장 새남터와 제2의 사형장 당고개는 특색 있게, 또는 보다 장엄한 형률을 갖추어 사형수만을 취급하였다. 그 밖에 일반 죄인은 모두 이 서소문 밖 사거리에서 참수하였다. 조선시대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자, 의금부나 포도청에 붙잡힌 천주교 신자 중 배교(背敎)하지 않은 자들을 이곳으로 이동하여 학살하였으며, 옥사한 자들의 시체를 내다 버리어 시체가 산적해 ..
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건물 약현성당을 찾아서../서울교구/14년9월10일 [서울교구] 사적 제25호 중림동 약현성당 "9월 10일 Legio Mariae단원들과 약현성당을 방문"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건물로 1892년 프랑스인 신부 코스트가 설계·감독하여 지은 약현동 성당은 길이 약 32m, 너비 12m의 십자형 평면 구조이며 비교적 소규모의 성당이다. 옆면 창은 처마 높이가 낮아 뾰족아치가 아닌 원형아치로 되어 있으나, 앞면의 출입구와 옆면 좌우로 돌출한 출입구 창 부분이 각기 뾰족아치를 이루어 고딕 모양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축이라는 점과, 순수한 고딕양식은 아니지만 벽돌로 된 고딕성당으로 후세의 한국 교회건축의 모범이 되었다. 그리고 천주교 박해시대에 수많은 순교자를 낸 서소문 밖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 있다는 장소의 역사성으로 한국 천주교회..
당고개 순교성지../서울교구 [서울교구] 당고개 순교성지 -서소문 밖 네거리, 새남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성인을 탄생시킨 영광의 땅- 당고개 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때 10명의 남녀 교우들이 순교함으로써 서소문 밖 네거리, 새남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9명의 성인을 탄생시킨 영광의 땅이며, 기해박해를 장엄하게 끝맺은 한국 천주교회 순교사에서 의미 깊고 거룩한 순교 성지다. 당고개 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가 거의 끝나 가던 기해년 12월 27일과 28일 양일(음력)에 걸쳐 이곳에서 10명의 남녀 교우들이 순교함으로써 기해박해를 장엄하게 끝맺은 거룩한 곳이다. 당시 당고개는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던 곳은 아니었지만, 다른 형벌로 죄를 지은 죄인들은 처형한 적이 있었다. 일반 신자들은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었고, 사제들은 새남터에..
명동성당을 다녀오다../서울교구/14년8월4일 명동거리를 지나.. 명동 성당, 서울대교구 주교좌 성당에 도착하다. 한국 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수표교의 이웃이자 여러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며, 명례방 공동체가 형성된 곳이다. 명동 성당이 설정된 것은 1882년경으로 알려졌지만 이곳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그보다 100여 년 전인 1784년의 일이다. 그해 초겨울부터 수표교(현 종로구 수표동)의 이벽(李檗, 1754~1785, 세례자 요한)의 집에서 영세식이 있었고, 다음 해에는 현재 명동 부근인 명례방 소재 중국어 역관 김범우(金範禹, 1751~1786?, 토마스)의 집 (현재의 명동 성당 일대) 대청마루에 모인 이승훈(李承薰, 1756~1801, 베드로), 정약전,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요한), 권일신(權日身, 17..
공주황새바위성지를 찾아서../대전교구/ 14년5월27일 [대전교구] 공주황새바위성지 -흑석동성당 신자들 공주황새바위성지를 방문하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78호- 황새바위에서 바라본 황새바위형장터 현재는 주택가이지만 주변이 형 알려지고 있다. 공주 황새바위 순교 성지는 공산성의 서문 건너편, 왕릉의 입구 도로 곁 작은 구릉을 가리킨다. 천주교 박해시 신도들의 순교지이었으며, 순교자들의 무덤으로도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충청도는 초기 천주교의 전파과정에서 천주교세가 가장 왕성하여 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는데, 공주지역에서 특히 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공주지역에서 많은 천주교인들이 순교하였던 이유는 충청감영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공주지역에는 1603년 충청도 감영이 설치되어, 충청감영의 관찰사(감사)가 행정이외의 군사권과 사법권까지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
남한산성 순교성지..!/수원교구 [수원교구] 순교자 시신 돌보다 체포된 "한덕운" 그 정신 깃든 "영혼의 안식처" - 남한산성순교성지 남문-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성지 입구를 들어서니 우리 전통방식으로 지어진 성전이 보인다. 산 중 나무들에 둘러싸인 전통 목조건물은 한가롭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절로 풍겨오지만 박해시대 이곳은 그렇게 한가로운 곳이 아니었다. 광주 유수부(留守府)의 치소(治所), 즉 지금으로 치자면 도청이 소재한 큰 도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드나들던 이 자리는 큰 박해가 있을 적마다 수많은 순교자의 피가 흐른 순교자의 땅이다. 당시 광주는 넓다는 뜻의 광(廣)을 지역명에 사용할 정도로 넓은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다. 광주는 현재 광주시 지역뿐 아니라 한강 이남의 서울시 강남·송파·강동·서초구의 대부분의 지역과 성..
치명자산/전주교구 [전주교구] 치명자산 간략설명:동정부부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순교자의 안식처 주 소: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 산 11-2 문화정보 전라북도 기념물 제68호(유항검 일가 합장묘) 치명자산(중바위산) 정상은 1801년에 순교한 유항검(柳恒儉)의 가족들을 합장한 묘소가 있는 곳으로 동정부부 이 루갈다를 추앙하는 사람들은 "루갈다 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주 시내를 굽어보는 중바위는 전주 8경 중 손꼽히는 기린봉 능선에 위치해 호남의 넓은 평야를 내려다보고 있다. 1984년 9월 2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된 치명자산 유항검 일가 합장묘에는 호남의 첫 사도요 순교자였던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부인 신희(申喜), 둘째 아들 유문석(柳文碩) 요한과 조카 유중성(柳重誠) 마태오, 제수 ..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서울교구 [서울교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셔진 장소이며 한국 교회 사제 성소의 요람 믿음직한 젊은이들을 많이 부르시어 주님의 제자로 삼으시고, 주님의 일꾼으로 삼으소서. 종로구 혜화동 90-1에 위치한 가톨릭대학교 성당에는 최초의 한국인 신부님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한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은 여러 신자들에 의해 와서(지금의 왜고개)에 안장되었다가 서 야고보, 박 바오로, 한경선, 이민식 등 몇몇 신자들이 다시 미리내로 이장하였다. 그 후 1886년 기해, 병오박해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조사를 할 때 교구 재판 판사인 프와넬 신부가 미리내에 있던 봉분 중앙을 헤치고, 관을 묻은 뒤에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