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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저산산이좋아/한강변돌아서

효심지극한 정조가 쉬어가던 용양봉저정

 







-동작충효길 1구간 - 

지근거리에 있는데도 처음 찾아본"용양봉저정(서울시유형문화제제 6호)"..!

 

서울시내에 이렇듯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가 수백년동안 지켜지고 있는걸 보면

그곳을 보존하기 위해 밤낮으로 수고하고 계신 분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자리는 경사진곳이라서 터를 북돋아 그 위에 정자를 세운것 같다.

 

지하철 9호선 3번출구로 나오면 20m앞에 소나무가 있는 축대담이 보이고

 바로 뒷편으로 노량진교회가 우뚝 서 있다. 

 



 



 


 


 

 

  

  

이곳에서는 언덕의 푸른 수풀사이로

한강의 맑은 물결이 내려다보이고 좀 더 멀리 눈을 돌리면 남산과

북악사이에 펼쳐지는 서울의 풍경이 그림같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용양봉저정은 조선시대 후기에 지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된 정자다.

용이 뛰놀고 봉이 날아오른다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용양봉저정은

 정조깨서 수원현륭원(顯隆園)에 모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러 가는 길에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들었다고 하여

"주정소(晝停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 정자는 처음 지을 당시 정문과 루정(樓亭)을 포함하여

2~3개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1동만이 남아있다.

 가운데에는 온돌방이 있으며, 왼쪽과 오른쪽에는 툇간을 설치하였다.

 효심이 깊은 정조는 노량나무에 배를 연결하여 다리를 놓고

 한강을 건너와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수원에 있는 현륭원으로 길을 떠나곤 하였다.

 


 

 


 



 

 


 



 

 




 

 

묘지에 있어야할 망주석이

왜 여기에 서있는지..?

 



 

 

  

 

 

원래 사도세자의 무덤인 영우원(永祐園)은  답십리 서울시립대학교 근처인

양주 배봉산에 있었는데 정조는 부왕의 무덤을 1789년(정조11년)11월에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현릉원이라 고쳐 불렀다.

그리고 이곳 화산아래에 있던 수원관아와 민가를 지금의 수원자리에 옮겨

화성(華城)을 건설하고 행궁을 다시 크게 고쳐 지었다.

정조가 화성에 행차하던 당시의 모습이 능행도에 그려져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