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에 긋는 성호경
밖에서 묵주 반지 혹은 묵주 팔찌를 한 형제자매님들을 보면 “성당 다니세요?” 하고
반가운 마음에 먼저 말을 건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 덕분에 훨씬 빨리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크게 성호경을 긋는 형제자매님들을 본다면
우리는 훨씬 더 빨리 알아차리고 기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겠죠.
제가 바로 밖에서 크게 성호경을 긋는 자매님 중 한 명입니다.
그러나 저는 불과 3년 전만 해도 남들이 볼까 싶어서 얼른 배꼽에 성호를 긋던
소심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2018년에 저는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평신도 단체 ‘복음화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거래가 있었는데 그 거래 조건은 바로 어머니께서 저에게 골프채를 선물해주시는 대신
복음화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꽤 긴 시간 우여곡절 끝에 복음화학교 청년 과정을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니고 생활이다.’ 복음화학교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수도 없이 듣고 새겼던 말입니다.
잊지 않으려고 방에 크게 써 붙여 놓고 신앙을 생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때 저는 매일 생방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생방송의 시작과 끝에 성호경을 긋고 방송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스튜디오에 계신 감독님들을 비롯해서 부조종실에 계신 많은 제작진 중 몇 분은 꼭 한마디씩 하십니다.
‘성당 다니는구나.’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고,
몇 년을 냉담하시던 카메라 감독님께서도 ‘나도 성당에 나가야 하는데...’ 하시곤,
몇 주 뒤에 추기경님께서 본당에 오셨었다며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성호경이 가톨릭 신자임을 드러내는 표현이라는 걸 모두가 알 수는 없으니,
제 모습을 보고 ‘그거 뭐 하는 거니?’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저는 오히려 신이 나서 성호경을 긋는 거라고,
저는 성당에 다닌다고, 허송연 클라라라고 말씀드립니다.
이전까지는 성당이나 집 안이 아닌 곳에서는 조용히 배꼽에 성호경을 긋거나
성호경은 생략하고 마음속으로만 기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복음화학교에서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생활이라는 가르침을 받았고,
또 그곳에서 만난 분들과 함께하다 보니,
생각만으로 끝내는 신앙이 아니라 하느님을 생활 속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제가 자주 할 수 있고,
최선이면서도 쉬운 방법은 성호경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성호경은 작은 행동이지만,
마냥 작지만은 않으며, 한 번이라도 하느님을 떠올리게 하는 것,
무엇보다 바치는 그 순간 제가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방송 전후에도, 식당에 가서도, 예전처럼 누가 볼까 싶어서 얼른 배꼽 위에 성호경을 긋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크고 정성스럽게 성호경을 긋는 일이 하느님과 생활 속에서 늘 함께하는 저의 주문입니다.
간단하고 빠른 이 주문은 제가 살아가는 데에서 순간순간 하느님께서
언제나 함께해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큰 힘을 주고, 그런 저를 사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허송 클라라,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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