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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있는오솔길/나라밖그곳은

<중국여행> 곤명을 찾아..

  

<인천국제공항, 중국동방항공>  

 

1월 15일 <토요일>  

 

"조석은 쌀쌀하고 낮에는 따뜻하다고 하니까 아마 우리나라의 초봄 날씨 같은가 봐요.

 

두툼한 옷과 얇은 옷도 챙겨야할 것 같습니다." 

 

"예, 알았어요. 저녁7시쯤, 인천국제공항3층 A카운터 오른쪽 3, 4번 테이블에서 만나요..!"

"초봄 날씨..?" 정 추울 때 많이 껴입으면 따뜻하겠지."

영하12~13도로 바람까지 부는 오후5시 반쯤, 인천국제공항행 버스를 탔다.

예전에는 여행 가방을 올려놓을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없어져 발 앞에 세워놓았다.

 1시간 예상했는데 도로가 막혀 30분이 더 걸렸다. 

 

우리는 단체비자로 출국 때나 입국 때나 같이 수속을 밟아야 한다.

10시 출발예정인 비행기가 15분 쯤 후에 이륙했다.

곧 기내식으로 밥과 빵, 제육볶음, 쥬스가 나왔지만

약간의 밥에 제육볶음을 비벼 요기만 달랬다.

 

 4시간가량의 비행소요시간을 잠으로 채우려했지만  자리가 불편하고

소음 때문에 깊이 취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알아본 운남성과 곤명시를 상상해보았다.

 

 

 1월 16일 <일요일>

 

 중국시계로 새벽1시20분쯤(1시간 시차로 우리나라는 2시20분)

곤명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심야인데도 출국장으로 실어다주는 버스와 곤명공항은 한국인들로 북적거렸다.

 

중국은 한국인들에 의해 관광업이 성행하고 수입도 괜찮을 것이며

거기에 백의민족의 무한한 인정으로 거지들의 벌이 또한 높을 것 같았다.

 

단체비자로 중국입국수속을 밟고 나오니 가이드가 환영의 뜻으로 카네이션을 선물로 주었다.

가랑비? 이슬비를 맞으며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마이크로버스에 가방과 몸을 실었다. 

 

"혹시 머리가 아프거나 구토 증세는 없으신지요..? 

 

여러분은 지금 평균해발1,891m고도를 달리는 버스 안에 있다는 것, 아시지요..?

제주도의 한라산정상이 1,500여m이니까 대충 높이를 짐작하실 수 있겠습니다."

 

"지금 현재 아무런 증상이 없으면 괜찮은 거죠..?"

 

"네. 혹시 앞으로라도 고산증에 의해 두통이 오거나 목이 따끔하고 건조할 수 있으니

 물을 자주 마시세요. 베트남국경에서 100위안만 주면 배로 얼마든지 왕래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운이 좋지 않아 붙잡힐 경우 1,000위안만 주면 쉽게 풀려날 수 있습니다." 

 

"베트남에 가서 주로 무엇을 하다가 돌아오는데요..?" 

 

"주로 여행이 목적이고 이따금 중국에서는 불법인 도박을 합법적인

베트남에서 즐겼다가 오기도 합니다.

 

지금은 영상2도로 약간 쌀쌀한데 비가 와서 한기를 더 느끼실 것입니다.

 그런데 곤명의 주택이나 호텔은 온방시설이 별로 없다는 것, 아시지요..?

 

 왜냐하면 영하로 내려가지 않으니까 필요를 느끼지 않는 거죠.

 제가 이곳에 온지 8년 되었는데 눈 내리는 모습을 딱 두 번밖에 못 보았다는 것, 아시지요..?

눈도 내리자마자 바로 녹아버립니다. 에어컨을 흔히 볼 수 없지만 부유한 주택에서는 설치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지금 가는 사쿠라호텔에는 약하지만

 온방시설이 되어있어 제가 미리 켜놓고 왔습니다." 

 

10여 분쯤 달렸을까..? 숙소인 사쿠라호텔에 도착했다. 

 

"지금은 공항이 시내에 있어서 손님들을 맞이하기 쉽지만

몇 년 후에 외지로 나가게 되면 버스로 한 두 시간 달려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의 손님들이 모두 사쿠라호텔로 모였는지

넓은 로비역시 많은 한국인들이 무리지어 들끓었다. 

 

"내일아침식사는 호텔3층 식당에서 6시부터 시작하는데 

 

너무 늦게 나오시면 음식이 거의 떨어져 드실 게 없습니다.

 

그리고 내일관광은 10시에 룸에서 만나 출발하시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키를 받아 엘리베이터의 숫자8을 눌렀다. 

 

"우리는 내일아침식사를 7시 반에 모여서 같이 식당으로 내려갑시다."

 

미리 온방시설을 작동시켜놓았다는 룸 안은 소음만 요란할 뿐

 을씬년스러워 간단히 샤워 후 츄리닝을 입고 자야했다. 

 

자는 둥 마는 둥, 침대 옆 소형테이블의 시각이 4시, 4시 50분, 5시 20분..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다가 6시를 표시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행노트에 못한 메모를 하고 짐작으로 알 수 있는 낡은 TV속의 중국드라마를

시청하다가 가이드로부터 받은 카네이션 두 송이를 침대위에 올려놓고 셔터를 눌렀다.

 

룸으로 올라와 외출준비를 마치고 커튼을 열었다.

 

 

휴일이라서인지 대로는 한가로웠다.

 

 

 신호등은 있으나마나 아슬아슬하게 좌회전하거나 유턴하는 자동차들

 사이로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요리조리 잘도

빠져 다니는 것을 내려다보자니 소름이 돋았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대각선육교에 "누군가 참 좋은 아이디어를 개발해냈구나..!"

 

 중얼거리고 있는데 중심에 앉아 사방으로 오가는 사람들에게 굽신,

 굽신거리며 구걸하는 걸인의 모습에 "누구를 위한 육교인가..!" 한숨이 나왔다. 

 

 

 

 

"첫 코스가 화훼시장이라니까 큰며느리가 만들어준 꽃 헤어밴드를 해야지."

룸에서 10여분 주차장으로 일찍 나와 호텔을 배경으로, 남편을 모델로 사진을 찍었다.

 

 한국관광객들을 모시고자 대기하고 있는 대형, 중형버스들이 여러 대 있었다.

"8시쯤 식당에 내려가니까 음식이 별로 없더라. 목욕탕의 물은 왜 그리 더디게 빠져..?"

"수건은 낡아서 너덜, 너덜거려."

 

"변기 앞에는 욕조의 하수구가 새는지 바닥으로 물이 나와서 미끄러질까봐 조심스럽더라고."

호텔에 대한 이런저런 불만을 들으며 전용버스에 올랐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네..!"

 

의례적인 인사를 주고받았다.

"오늘은 영상1도로 이곳에서는 매우 추운 날씨입니다.

연평균기온이 14도로 웬만해서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얼음을 볼 수 없고

 제가 지금까지 이처럼 두꺼운 옷을 두 번 입었습니다.

 

지금부터 8세기말에서 9세기 초, 당나라 때 세워진 절, 원통사로 가시겠습니다." 

 

"화훼시장은요..?" 

 

"나중에 갈 겁니다. 여러분, 자유여행사에서 

 

나눠드린 코스와 다르게 관광하실 거라는 것, 아시지요..?" 

 

"꽃이 달린 헤어밴드까지 하고 나왔는데......... 모르겠는데요..?" 혼자 뇌까렸다.

 

 

곤명시내거리는 몇 년 전에 다녀왔던 베이징, 소주, 항주, 상해 등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중국의 이미지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크락숀과 "삐이익..!" 급정거하는 소리가 자주 들리고

 자전거와 오토바이들이 각종차량과 뒤섞여 혼잡스럽게 움직이는데도 사고가 나지 않는

신기한 점은 중국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였다.

 

"어머머머..! 저 자가용 좀 봐. 오른쪽골목에서 나와 곧장 1차선으로

들어서서 바로 유턴을 하네. 맞은편에서 차들이 달려오는데도.” 

 

"그래서 중국의 운전사들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능숙하게 운전잘 할 수 있다는 것,

 

아시지요..? 원통사는 1,255년 몽골 침입 때 소실되었다가 1,301년 원나라 때 중건되었고

 1,686년 강희제 때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과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 아시지요..?

 

곤명시내북쪽에 위치한 가장 큰 사찰로 운남성 불교협회가 있는

 우수한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곤명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불교 사찰로

 불교3대지파인 대승불교, 소승불교, 라마불교의 불상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보통 용과 같은 조각상들은 황제들만의 전용물이었지만

 이곳에서는 황제의 윤허아래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 아시지요..?

 

원통산 공원에 있는데 중국문화혁명 때도 곤명 등 지형이 험한

지역의 종교건축물들은 잘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중국근현대불교의

 큰 별 허운 스님은 운남성에서 중생구제와 불교재건을 발원했다는 것, 아시지요..?

 

스님은 원통사에 머물며 법을 설하고 49일 수륙법회를 봉행하는 등

 곤명사람들의 불심을 키웠답니다." 

 

"아시지요.,.? 모르겠는데요..? 흐흐흐........" 속으로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우산을 쓸 수도, 안 쓸 수도 없을 정도로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정문을 들어섰다.

 

공사 중인 건물을 돌아서니 많은 사람들이 촛불과 향을 태우며 열심히 절을 하고 있었다.

 

넓은 연못을 중심으로 좌우대칭건물인 원통보전과 천왕전, 팔각정이 세워져있는데

 정교한 나무 조각이 시선을 모으게 했고 한국과 다르게 여자 불상을 모시고 있는 점이 특이했다.

 

불상의 색상은 밝고 화려하여 엄숙한 분위기가 덜 풍기는 것 같았다. 원통보전 뒤에는

태국의 건축양식인 동불전이 있는데 그 안의 동불상은 태국국왕이 선물한 것이란다.

 

중국에는 사찰곳곳에 무릎을 꿇고 절하게끔 뒤편에서도 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첩되어있는 지붕모양이 중국적이다 싶다.

 

본당 옆 건물 안의 승려들이 한 줄로 원을 그리며 돌면서

"나무아비타불, 나무아비타불"을 외고 있었다. 아마 그 염불은 세계 공통어인 듯.

 

 우리의 절은 깊은 산속에 자리하고 있는데 중국은 시내에 있어서 유원지에 놀러온 것 같았다.

 

더구나 우리의 봄철에만 볼 수 있는 보라색목련이 활짝 피어있으니

마치 봄나들이 나온 기분..?

 

"우리 이곳에서 단체사진 한번 찍읍시다..!"

 

서먹서먹함을 없애는 최상의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아 가이드님께 디카를 맡겼다.

 

 

 

 

 

 

 

 

 

 

 

 

 

 

 

  

 

 

 

"다음엔 곤명시오화산 서쪽기슭에 위치한 25ha의 취호공원을 구경하시겠습니다.

 

 청나라초기 평서왕 오삼계(吴三桂)가 아내에게 지어준

 별장으로 14세기원나라 때 조성된 공원입니다.

 

처음엔 호수중심에다 동서남북으로 둑을 쌓아 한 개의 호수를 4개로 갈라놓았는데

 물 비취(水翠). 대나무비취(竹翠), 버드나무비취(柳翠)가 이루는 광경이 아름다워

1900년에 취호(翠湖)라 칭하였다는 것, 아시지요..? 원래는 하나의 만(灣)이었는데

점차 수위(水位)가 내려가면서 차츰차츰 호수가 되었답니다.

 

 4개의 호수 안에 여러 개의 섬들이 떠있고 섬들마다 다리가 연결되어

모두 돌아볼 수 있게 해놓았다는 것, 아시지요..?

 

크게 5개풍경구로 나뉘는데 호심도(湖心島)는 호심정(湖心亭)과 관어루(觀魚樓) 등

 청대건축물이 주를 이루고, 동남쪽은 수월헌(水月軒)과 금어도(金魚島),

동북쪽은 죽림도(竹林島)와 구룡연못(九龍池), 남쪽은 호로도(葫瀘島)와

구곡교(九曲橋), 서쪽은 해심정(海心亭)이 있습니다.

 

11월에서 2월말사이에는 바다 없는 곤명에서 유일하게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붉은입갈매기 떼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지붕양끝을 잡아당기는 모양의 정문을 들어서니

잔잔한 호수와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가 매우 한가로워보였다.

 

"호수에 박혀있는 저 많은 흰점들이 도대체 뭐야..?

먼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철새, 붉은입갈매기 떼들인가..?"

 

사람들이 지나가도 두려워하기는커녕 먹이를 주면 사방에서 날아와 쪼아

 먹는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물은 깨끗하지 않았지만 하얀 새들이 워낙 많아

흐린 날씨까지 커버해주면서 산뜻해보였다.

 

주변가까이에 있는 고층건물 때문에 집근처로

 잠시 바람을 쏘이러 나온 기분으로 일산의 호수공원을 걷는 느낌이랄까..?

 

“휴일인데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네요.” 

 

"추운 날씨 탓이죠." 

 

"지난 북경, 상해, 소주, 항주관광 때 보니까 아침에는

공원마다 많은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서 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곳에는 없네요..?" 

 

"날씨가 좋으면 산책 나오는 시민이 많고 여기저기서 단체로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운동하는 종류도 매우 다양한데 주로 노년층들이 많은 것, 아시지요..?" 

 

"가이드의 특별한 언어습관이 있구나..! 네, 압니다.

 

어느 나라 국민이든 건강을 제일로 삼는 건 다 마찬가지니까요." 혼자 웃었다.

 

아무튼 공원을 개방하여 주민들이 모여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중국의 제도는 높이 칭찬할만하다.

 

 넓은 호수와 갈매기 떼들이 주는 평화로움은 주민들이

여가를 즐기며 유유 자작하기 좋은 곳으로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좋은 휴식처가 될 것 같았다.

 

중국의 큰 명절인 구정, 국화와 튤립축제가 열릴 때, 5월 1일,

10월 1일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다니

 

그 무렵에는 관광을 피해야할 것 같다.

 

"오늘은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없고

 그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사람들도 없네요."

 

"그것도 추위 때문인 것, 아시지요..? 라는 말을 하려고 하죠..?"

 

생각하는 찰나 아니나 다를까..! 

 

"그것도 추위 때문인 것, 아시지요..?" 

 

 

 

 

가이드님, 여기서 우리셔터 좀 눌러주시겠어요..?" 

 

"빵을 먹이면 설사를 하니까 꼭 매점에서 판매하는 먹이만 줘야합니다." 

 

"네..!" 

 

 

우리 앞에 금방 새들이 모여들었다. 

 

"중국정부는 이 새들을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갈매기사진전도 엽니다." 

 

아무도 타는 이 없어 호수에 한가로이 떠있는 놀이 배 지붕 위에도

붉은입갈매기 떼들이 하얗게 몰려 앉았다.

 

그런데 호수 한 모퉁이에 ‘미운 오리새끼?’ 청둥오리 한 마리가 외롭게 서 있었다.

 

중국국가작곡자의 동상을 지나 호수 위를 거닐 수 있도록 설치한 난간이 보였다.

 

"와..! 갈매기들의 천국이로구나..!"

 

많은 인파 머리 위로 수를 셀 수 없을 만한 갈매기들이 날고 있었다. 

 

"운이 나쁘면 비싼 겉옷에 훈장을 맞을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한다는 것, 아시지요..? 사진기 주세요. 제가 찍어드릴게요." 

 

"머리나 눈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찍히지나 않을까? 아니면 분비물을 맞지 않을까..?'

 

 

 두려우면서도 마냥 신기했고 즐거웠다.

 

먹이를 들고 있는 중국인과 여동생의 손으로 한 마리가 날아오는 순간을 잽싸게 담았다.

  

 

 

 

 

 

 

 

 

 

 

 

 

 

 

 

  

 

 

 

 

 

 

 

 

 

 

 

 

 

 

"다음은 운남육군강무역사박물관으로 가시겠습니다."

한국독립기념관행사도 진행되었다는 운남육군강무역사박물관은

 항일독립투사로 잘 알려졌으며 우리나라초대국방부장관이었던

철기 이범석선생이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한국최초의 여류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권기옥 선생도 수학한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으로

익히 알고 있어 호기심을 유발시켰다.

 

취호공원 서쪽으로 나가 2차선도로를 건너니 바로 정문이 나타났다.

 

"독립애국자들을 양성한 민족독립인재양성의 요람으로 1909년에 운남성의

 실력자인 탕지야오가 창설하여 1928년까지 19기를 배출함으로

 졸업생 수는 4000여명에 달하는데 중국공산당1세대인 주더(朱德)를 비롯해

중국근대사에 등장하는 숱한 인물들을 탄생시켰다는 것, 아시지요..?

 

보병, 기병 ,포병, 공병, 4개 병과로 나뉘는데 교관(군관)의 대다수는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한 유학생들로 졸업생들은 신해혁명과 호국운동,

항일전쟁, 해방전쟁 때 큰 기여를 하여 전국인민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중국에서 유명한 군사학교 중의 하나였는데 해방 후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쳤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고 있으며 1988년부터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하였습니다."

 

 

1, 2층에는 당시자료들이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내부촬영이 금지되어

관리자의 눈을 피해 몇 장 도둑촬영을 하였다. 식당을 지나니

지금은 주민들의 휴식장소로 쓰이는 것 같은, 정방형형태의 강무학교연병장이었다는,

 너른 잔디 위에서 두 사람이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태극권같이

정열적이면서도 유연한 동작이 계속 이어져 남성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여성적이라 느껴졌다.

 

 

  

 

 

 

 

 

 

 

"다음은 곤명서남쪽서산 앞,

곤명호 한쪽에 있으며 중국4대 명루(황악루, 악양루, 등왕루, 대관루) 중

하나로 유명서예가들의 작품이 있는 대관루로 가시겠습니다."

 

 

겨울이라 비가 적게 내려서인지 대부분 차들이

 먼지와 흙으로 더러웠지만 중심가의 거리는 말끔했다.

거리의 잡상인들이 없는 이유인 것 같았다. 중국특유의 빨강으로 북

모양장식을 여러 개 세운 로터리 앞에서 하차하여 정문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중국관광지의 특별한 점인 광대하게 넓은 곳인가..?"

 

 관광차가 대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누렇게 뜬 식물이 있는가 하면 노랑,

보라, 빨갛게 피어있는 꽃들이 있어 대조를 보였다. "방금 구경했던 취호공원을 다시 왔나..?"

 생각할 정도로 넓은 호수가 보였다.

 

입구한쪽에 예쁘게 잘 키운 분재가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낮은 기온임에도

매화, 목련 등 여러 가지 꽃이 피어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분재기술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았다.

 

 

"따뜻한 봄에는 더 많은 꽃들을 볼 수 있다는 것, 아시지요..?

 

이곳 곤명에서는 일 년 내내 어디서든지 꽃을 대할 수 있습니다."

 

 

남극의 정취를 풍기는 큰 야자수 아래서 여동생 볼에

제부가 볼을 비비는 장난스런 모습을 디카에 담았다.

넓으면서도 흰 갈매기가 한가롭게 노닐어 아담한 느낌이 드는 호수를 지나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향해 계속 셔터를 눌렀다.

 

원모양으로 달릴 수 있는 말 타는 놀이기구는 우리의 것과 똑같았다.

 

 

"요즘은 호수의 수위가 낮아져 계속 물을 끌어 나룻배나

 유람선을 띄워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는 것, 아시지요..?"

 

 

가이드가 ‘아시지요?’ 라고 하거나 말거나 자연적으로 이상하게

생긴 커다란 바위인지, 아니면 사람이 미적으로 붙여 세운 기암인지 모르는 곳에서

각자 기념사진을 찍고 수양버들이 늘어져있는 호수 앞 건물, 대관루로 향했다.

 

 

"이곳의 돌과 모양은 북경의 자금성 내에 있는

양식을 본 딴 것으로 다른 곳으로부터 실어온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그럴 듯하게 진짜처럼 가짜를 너무나 잘 만드는

중국인의 속임수실력을 여기에서도 드러냈다.

 

"호수 한가운데 세워진 누각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저곳에서 글을 쓰고,

 노래하고, 배를 채우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던 팔자좋은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얼마나 넉넉하였을까..?" 궁금했다.

 

"명나라시기 군대를 주재시켜 요처를 지키던 목(沐)씨가 곤명호에서 수병(해군)을

 연습시키며 공원을 지었는데 그 후 호북의 중(乾印)이 초가를 짓고 경을 읽으면서

 관음사라는 절을 지었던 곳이라는 것, 아시지요..?

주변풍경이 아름다워서 1690년대 청나라 강희제(1654~1722)때 건

축되어 문인들이 모여 지은 시를 읊었던 곳입니다.

 

저 누각에 오르면 시야가 넓어지고 경관이 장관을 이룬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시인묵객들

이 올라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시를 짓고 역사를 논하며 여흥을 즐겼던 곳이라는 것, 아시지요..?

 

 그들이 남긴 문장이 지금도 보존되어있는데 문짝이나

 기둥 같은데 붙이거나 걸어두는 형태입니다.

 

 청나라건륭시기서예가인 손염옹의 대련천하제일장련이라는 시가 유명한데 우측의 90자는

 곤명호의 풍치에 대해, 좌측의 90자는 운남의 역사에 대해 쓰여 있습니다.

 

 어렸을 때 선생을 놀리는 시를 지어 그의 시를 보고 이불을 말아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다는 것, 아시지요..?

 

그만큼 시를 잘 지었다고 합니다. 

 이 시를 곤명의 유명한 서도가 육수당(陆树堂)선생이 행서체로

조각하여 유명하게 되었죠.

 

 대관루 현판도 그가 새겼지만 1857년 전쟁으로 소실되어 청나라동치5년,

 1866년에 마루룽(馬如龍)이란 사람이 재건하였고

 1888년에 조번이라는 민족 시인이 다시 썼다는 것, 아시지요..?"

 

 

3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정방형의 대관루는 3층의 누각으로 지붕이 노란색기와였다.

녹나무로 만들어진 맨 위층에 발랑천층이라는 편액이 걸려있었는데 1855년에

황제가 친히 하사한 것이란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니 사방으로 문이 있어 시원했고

 너른 호수가 앞에 펼쳐져 운치가 있었다. 실내에는 많은 그림과 시작품들이 걸려있었다.

 

"이 둥근 항아리 같은 건 뭐에요..?"

 

 

"위에서 동전을 내려뜨려 저 안에 들어가면 복을 받는다는 합니다."

 

주머니 안에 있는 동전을 꺼내어 과녁 맞추기 놀이하느라 잠시 소란스러웠다.

"와아..! 내가 떨어뜨린 동전이 들어갔어!"

 

"에이..! 내 건 안 들어갔네."

 

나도 두 개를 던져보았지만 허탕.

 

 '에이..! 돈 벌려는 중국인들의 속셈에 더 이상 넘어가지 말자..!"

 

 유명한 중국의 시인, 손염옹 동상 앞으로 가서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폼도 쟀다.

한가하게 장기를 두고 있는 중국남자어르신들의 모습,

 양귀비 등 예쁜 꽃으로 단장한 화단,

호랑이의 습격에도 자식을 지켜내는 어미 소의 지극한 사랑을 동상으로

세워 중국의 상징물이 된 우호동상, 구정명절에 대비하여 손님맞이작업으로 바쁜 모습,

나무에 매달아놓은 붉은 등, 아름다운 풍경들을 원 없이 담았다.

 

"무조건 다 찍지 말고 몇 개만 찍어."

 

"곤명에 다녀간 기념으로 남는 건 사진밖에 없는데..?

 

우리 여생에 또 여기를 찾을 리 있을까요..?"

 

자세히 찍어두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았다.

 

"근화포(近華浦)라 새겨진 정자 문 양쪽의 "曾经沧海难为水,欲上高楼且泊舟"라는 글은

 ‘대관루에 오르자면 배를 타야했기에 배를 정자 앞에 정박한다." 는 뜻이라고 한다.

취호공원과 대관루공원의 경치를 늘어진 버들가지 사이로 보고

겨울에는 갈매기 떼들을 대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취호는 갈매기숫자가 많고 대관루는 적으며 정원양식이라는 차이가 있다. 

 

 

  

 

 

 

 

 

  

 

 

  

 

 

 

 

 

  

 

 

 

 

 

  

 

 

  

 

 

 

 

 

  

 

 

  

 

 

  

 

 

 

   

"피곤하세요..? 이젠 점심식사 할 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이곳에서 짜증나도록 많은 게 시간밖에 없으니까 여유 있게 천천히 많이, 많이 드세요..!"

 

"곤명의 인구는 얼마나 되나요..?"

 

"약760만 명 정도 되는데 사람이 주거하기에 적합하므로 1년에 100만 명씩 느는 추세라는 것,

 아시지요..? 자가용만 150만 대로 중국에서 9번째로 많은 도시입니다.

 

자전거 대신 밧데리를 밤새 충전시켜 사용할 수 있는 오토바이 형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고

작년부터 지하철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94%가 산인 고산지대로

우리는 연 기온차가 심하지만 곤명은 일 기온(아침저녁)차가 심하다는 것,

아시지요..?"

 

한국관광객들의 대형관광버스가 일렬로 주차되어있는 큰 식당 앞에는

 각종과일을 파는 상인이 있었다. 가이드는 작고 노란 과일 한 봉지를 부탁하고

 둥근 테이블에 딱 여덟 명이 앉을 의자가 있는 끝 방으로 안내했다.

오리구이, 게 무침, 야채볶음, 대나무요리, 쌀밥, 계란부침,

부드럽고 싱싱한 상추, 배추 잎 등이 나오는 메뉴는 참으로 먹기에 좋았고 입에 딱 맞았다.

"지금까지의 중국관광 때는 큰 접시에 나오는 음식들을 향냄새 때문에 거의 되돌려 보냈는데.."

다른 일행도 나오는 음식마다 ‘맛있다!’며 50도짜리 술을 서로 권하고 받으면서 깨끗이 비웠다.

"우리 이웃인 덕소의 오사장님께서는 어디어디 외국여행을 다니셨나요..?"

"유럽은 거의 다 둘러보았고요, 인도에도 다녀왔습니다.

 

사실 이번에는 네팔 좀 다녀올까 해서 신청했는데

우리밖에 없어 방향을 곤명으로 돌린 겁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데요..?

"아무 일도 안하고 거저 놀고 먹습니다. 하하하..

 그래서 장모님으로부터 꾸중을 많이 듣습니다."

 

"어머나! 그래도 외국으로만 다니며 노시니까 괜찮은 거죠."

"연세에 비해 무척 젊어보이세요. 젊은 아내와 사시는 덕분인가 봐요."

"지금 머리를 기르는 중이에요. 파마를 하라고 집사람이 하도 성화해서 하하하.."

"입으시는 옷 코디도 부인께서 일일이 해주시나 봐요. 아주 남다르신데요..?"

"정말로 젊어보이세요! 멋지시구요."

 

한 시간 가량 담소를 나누며 맛있게 식사를 끝냈다.

한국의 나리꽃모양의 점 박힌 노란 꽃이 반가웠다.  

 

 

 

 

 

 

 

 

 

 

차에 오르며 맨 뒷줄에 앉은 이에게 인사를 했다.

"신따꺼, 츠팔노마! 하하하.."

"하하하.. 잘못 발음하면 욕으로 듣기 십상이지요..?"

"형부친구 양경남씨라고 있는데 잔뜩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오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원망스러울 때 부인이 써먹는대."

"호호호.."

가이드가 사준 열매의 맛은 우리의 귤 맛과 같은데 매우 달았고 겉이 퍼런 것은 시고 떫었다.

 

"다음은 서산의 용문(西山龍門)으로 갑니다."

 

"배가 부른데 산을 오르려면 힘들지 않을까..?" 약간 겁이 났다.

“용문이 있는 서산은 벽계산으로도 불리는데 곤명에서 서쪽으로 15㎞ 떨어져 위치한

최고해발2,508m, 길이4km의 웅대한 규모를 자랑한다는 것, 아시죠..?

예전에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는데 지금은 점검 중이라 전동차로 왕복한다는 것,

 아시지요..? 용문으로 오르면서 곤명시 남쪽서산아래에 있는 호수로

 단층운동으로 생겨난, 둘레가 약400Km정도의 곤명호인 전지(澱池)를 내려다볼 수

 있는데 면적이 370평방킬로미터로 싱가포르국토와 비슷하며 중국제6대담수호라는 것,

알고 계시지요? 호수라기보다는 바다 같은 느낌이겠죠. 그래서 아마

시베리아갈매기들도 바다로 착각하고 겨울을 보내기 위해 날아오는 것 같습니다.

 길이는 150km로 가장 깊은 곳은 8m, 유람선으로 약 2시간가량 관광할 수 있으며

음산(音山)과 백어구(白魚口) 등의 풍경구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아시지요..?

 고원명주(高原明珠)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전지(澱池)위를 지나며 본 바에 의하면

너무도 오염되어 있어 호수가 녹색으로 보입니다. 곤명시에서는 곤명관광개발계획의

 일환으로 호수일주고속도로공사를 하고 있고

 정화하기 위한 대대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

아시지요..? 889㏊(2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서산삼림공원의 최고봉인 나한산(罗汉山)은

수면에서 약620m 높이 솟아있으며 곤명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 운남민족촌을 구경하다 보면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싼, 커다란 돌산을 볼 수 있는데

 그 산이 국가3A급풍경구로 지정된 서산(西山)삼림공원이라는 것, 아시지요..?

 

 미인이 잠을 자고 있는 듯한 산세로 "잠자는 미인 산"이라 불리며 누워있는

 부처의 모습이라 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고도 불리는데

 웅대한 삼림이 공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주요관광지는 원나라 때 세워진 화정사(華亭寺), 태화사(太華寺),

니얼묘, 삼청각(三淸閣), 용문석굴(龍門石窟), 전지(澱池) 등이 있는데

 제일 높이 있는 용문석굴은 서산관광의 백미라 할 수 있다는 것,

 아시지요..? 용문석굴의 채광은 오전에 가장 좋다고 하여 오전에 방문하면 좋은 곳입니다."

 

용문석굴까지 가보지 못하게 된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춘추전국시기이전에 우라는 자가 신기한 도끼로 서산의 절벽사이를 찍었는데

물이 쏟아져 황하를 이루었다는 전설이 있다는 것, 아시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지내다보니 고향이 그리워져 마음씨 착한 우의 아내는 옥황상제에게 불쌍한

고기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끔 청하였답니다. 일단 폭포 위를 뛰어오른

고기들은 용으로 변하여 승천하게끔 하고 뛰어오르지 못한 고기들은 빨간

 점이 나게 하였답니다. 그래서 현재 황하에 사는

 물고기들 이마에는 빨간 점이 박혀있다는 것, 아시지요..?"

 

 

잠을 제 시간에 충분히 못 잔데다가 식곤증까지 몰려

가이드의 설명이 멀고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용문은 1840년부터 1853년까지 13년에 걸쳐 70여명의 석공들이 밧줄에

 매달려 돌을 깨어 조각한 것, 아시지요?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전동차로 가서

 돌 벽을 깎아 만든 통로를 도보로 갈 것입니다. 삼청각에서 용문의 정상인

달천각까지 1333단의 석단이 만들어져 있고 석단뿐 아니라 석실, 신상 등

벼랑을 깎아 만드는데 오래청이란 도사가 길을 만들었다는 것, 아시지요..?

 

 남해처부터 용문까지는 청나라의 명사 양루란과 양제태 부자가 3대에 걸쳐

72년이 걸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청각은 원대의 양왕이 더위를 피한 행국이었는데

후에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그 후 명나라의 공목씨

 가족의 지지 하에 새로 건축, 청나라말기에 와서 지금의 형태를 갖추었다는 것, 아시지요..?"

 

"선조들의 훌륭한 끈기와 인내심 덕분에 후손들이 대대손손

관광업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게 아니겠어..?" 혀를 찼다.

 

"중국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키가 140cm이상이면 성인용 입장권을 구입해야 합니다.

저는 일찍 키가 커서 손해를 많이 보았다는 것, 아시지요?.."

 

"그렇다면 키가 작은 사람은 늦게까지 성인용 표를 구입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140cm전후의 사람들은 입장권을 팔 때마다 키를 재야하겠군요. 하하하.."

불편하고 이상한 규정에 웃음이 났다.

 

 

전용버스에서 내리니 전동차를 타기 위해 길게 줄서있었다.

흔들거리는 전동차를 타고 십여 분 올라가는데 호수 쪽 길가에 작은 가게..?

 우리의 포장마차보다도 작은 점포들이 이따금씩 보였지만 장사가 되지 않는지 주인도,

손님도 없었다. 어쩌다 걸어서 내려가는 등산객들만 상대하려니 수지가 맞을 것 같지도 않았다.

 

 좌우전후로 막이가 없으므로 차디찬 바람에 셔터를 누르는 손이 차가워졌고 두 볼이 꽁꽁 얼었다.

 

"자, 내리십시오..!" 

 

 

 

 

   

작은 점포가 여러 개 붙어 있어 길어 보이는 가게주인들이 몰려나와

어눌한 한국말을 계속 반복하며 손님 끌기에 바빴다.

"예쁘다, 예뻐..!"

"여기로 들어오세요..!"

"싸요, 싸..!"

우리는 못들은 척 가이드를 따라 가파른 돌계단을 부지런히 걸어 올라갔다.

"와! 저 호수가 바로 곤명호구나..!" 잔뜩 흐린 날씨로

하늘과 호수와 건너편의 곤명시가 온통 잿빛이었다.

서산용문입구를 통과하여 만지면 재물이 생긴다는 재신상 앞에서 멈췄다.

 

"오른발 속에 손을 넣어 짚이는 것이 있으면 재운이 온다고 합니다.

믿거나말거나 한번 손을 넣어보세요..!"

 

절벽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은 건물과 발아래

까마득한 고속도로, 별장 등을 찍으며 좀 더 올라갔다. 

 

 

 

 

 

 

 

 

 

   

 

 

 

 

진무전(眞武殿) 앞에서 가이드로부터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두 가지를 들었다.

 

거북이등에 뱀이 엉켜있는 전설을 들으니 뱀 장군과

거북장군은 장수를 상징한다 하여 남편을 모델로 셔터를 눌렀다.

 

"몇백년 도를 닦은 뱀과 거북은 신이 되고 싶어서 하늘세상으로 진무를 찾아갔답니다.

하지만 진무전을 지키고 있는 장군들이 선물을 준비해야한다고 하여

뱀은 거북의 몸에 칭칭 감겨서 다시 장군들 앞에 나타났다는 것, 아시지요..?

 장군들이 선물을 내보이라고 하자 거북이는 길 장(長)자의 뱀이고,

뱀은 오래 장수할 수(壽) 거북이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리하여 진무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로 여겨 두 동물을 장군으로 모셨다는 것, 아시지요..?

 

" 지금 들어서 알게 되었습니다."계속 되는 이야기에 두 귀를 쫑긋 세웠다.

 

"송나라 때의 금동은 한평생 점을 치면서 생계를 유지하던 주공이란 사람이고

 옥녀는 방토를 할 줄 아는 도화녀란 사람이라는 것, 잘 아시지요..

하루는 주공한테 한 할머니가 와서 점을 쳐 "일 아들이 죽겠습니다."고 말해주자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갔답니다. 가는 길에 도화녀를 만나

도화녀가 할머니의 정황을 듣고 할머니 아들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는 것, 아시지요..?

  목숨을 구원받은 할머니는 주공을 찾아갔답니다.

할머니의 말을 들은 주공은 도화녀의 행동으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죽이려하지만

미리 예측하는 재간이 있는지라 피하였으므로 두 사람의 싸움은 끝이 없다는 것, 아시지요..?

이때 하늘 세상에 있는 진무가 인간세상에서 싸우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하늘로 모셔 호법신으로 모셨다는 것, 아시지요..?"

 

" 이야기도 방금 들어서 알게 되었다는 것, 아시지요..가이드님..?" 하고 반문하고 싶었다. 

 

 

 

  

  

벽에 효우천이라는 한자가 새겨진 곳 앞에서 가이드의 발길이 또 멈추었다.

 

"새끼와 어미 소를 기르는 목동이 살았는데 어느 해, 자연재해가 드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소를 잡아먹어야했다는 것 아시지요..? 어미 소를 잡기 위해

칼을 갈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려 갔다 오니 칼이 없어졌답니다.

 알고 보니 새끼소가 자기의 품속에 감춰두었다는 것, 아시지요..? 목동은 어미 소를 잡으려던

생각을 접었으므로 어미 소와 새끼소는 목동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쇠뿔로 이 샘을 팠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 앞에는 하늘도 감동한다..." 옛말이 떠올랐다. 

 

 

  

 

" 봉황새에 동전을 던져서 얹히면 복을 받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한번 던져보시지요."

뛰는 사람, 차분하게 제자리에서 던지는 사람, 떨어진 동전을 또 주워 다시 던지는 사람,

" 얹혀졌다..!" 소리 지르는 사람 등등. 표정이 가지각색이었다.

  

 

  

 

왼쪽 아래로는 아찔한 절벽과 너른 호수, 오른쪽위로는 끝도 보이지 않는 절벽!

역시 절벽 위에 나있는 터널식 길로 등을 굽혀가며 걸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길을

만든다면 머리에 빨간 머리띠를 두른 사람들의 만류로 가당치도 못할 일이다.

 

"이렇게 두꺼운 돌 벽을 어떻게 뚫었다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흔적으로 돌길은 미끌미끌, 반지르르했다.

자칫 미끄러워 "엉덩방아라도 찧을까..!" 걱정되어 조심조심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디뎠다.

 만약에 장난이라도 하여 몸의 균형을 잃어 왼쪽으로 넘어간다면 시체도 찾지 못할 것이다.

 

 

 

  

 

 

 

  

 

 

 

   

"사진기를 제게 주시고 이 터널로 된 길을 빨리 달려서 저만큼 가 계세요.

 용문이란 글씨 앞에서도 서계시고요."

제부와 여동생, 남편, 박춘옥님과 함께 석굴로 된 길을 달렸다.

좁은 길을 내려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며 때론 양보하면서 용문까지 갔다.

용문문설주아래의 둥근 공을 만지면 과거에 급제하거나 자손이 잘된다는 등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오는 사람마다 문질러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다.

장가계는 "아..!" 감탄하는 관광이라면 황산은

‘억!’하며 놀라는 관광이고 곤명은 만지는 관광인가 보다.

"참 만지는 것도 많구나..! 싶다. 무병장수로 오래오래 부자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소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공통일 것이다.

 바위를 깎고 계단을 만들어 절벽에 길을 만들고 온갖

종교를 한데 묶어 신봉하며 살았던 옛 중국인들의 소천의식에 감탄할 뿐이다.

달천각 위 절벽에 새겨놓은 조각상과 복이라는 글자에 또 한 번 감탄했다.

 달천각 옆으로 깊게 파인 굴이 보여 들여다보니

서산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도구도 발달되지 않고 많지 않은 그 옛날에 어떻게 저런 조각들을 벽에 새겼을까..?

더구나 양옆과 천정까지........ 또 저 위의 조각들은 어떻게..?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뒤돌아 갈 길을 머리를 오른쪽으로 내밀고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드넓은 곤명호를 향해 거리를 바짝 당겼다. 별장들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였다.

이곳을 찾았던 세계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곳을 들러 전동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가이드께서 중국옥수수를 부부가 한 개씩 먹을 수 있도록 사주셨다.

 

"맛있게 중국옥수수를 먹는 것도 기념이에요."디카에 담았다.

 

"그런데 옥수수맛이 왜 이래요.. 덜 익은 것 아네요..?"

 

가이드가 따지자 상인은 원래 맛이 그런 거라고 답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전용버스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 줄 전동차의 맨 뒤에 앉았다.

  

 

  

 

 

  

 

 

 

 

 

 

 

 

 

 

 

 

 

  

 

 

 

 

 

  

 

 

 

 

 

  

 

 

 

"다음엔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시겠습니다.

그런데 발만 받는 것은 20불이고

전신을 받게 되면 10불씩 더하게 된다는 것, 아시지요..? 전신으로 하실 것인지,

발만 받으실 것인지, 지금 결정지어서 말씀해주세요..!"

 

"글쎄요..!"

 

 

 

   

 

많은 간판이 복잡하게 걸려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의자에 앉으니 20세 전후의 젊은 남자 넷이 들어왔다.

 남자들 방에는 젊은 여자아이들이 들어갔으리라..

우리들은 전신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게 하고 머리서부터 발까지 누르거나 비비며 전신이 노곤하게끔 잘해주었다.

 네 명이 똑같은 속도로 저희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한 시간 가량 받으니 피로가 싹 가셨다.

미리 약속한대로 팁을 천 원씩 똑같이 주었다.  

 

 

  

 

 

"다음은 진주 상가로 가실 겁니다."

 

"가봐야 살 것도 없는데.."

"중국여행에서는 아무 것도 사지 않을 거야. 쓸모가 없거든."

"진주는 한국의 것이 더 좋은데 왜 중국의 것을 팔아줘..? 안 되지."

일행은 구경하면서 시간만 보내다가 나왔다.

물건을 팔아주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들어서인지 가이드표정이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았다. 

 

 

 

 

 

  

 

 

전용버스로 저녁식사 할 음식점으로 향했다.

"점심식사를 든든하게 잘했더니 아직 시장기가 없는데..?"

"나도 그래요."

"일은 하지 않고 하루 세끼 꼬박꼬박 먹으니까 배도 고프지 않네요.'

"그래도 막상 음식을 대하면 또 안 먹고 못 배길걸요..?"

거대한 쇼가 펼쳐지는 웅장한 대 극장 밑으로 들어가니 꽤 넓은 식당이 나왔다.

 점심식사와 비슷한 음식들이 푸짐하게 나왔다. 조금씩 골고루 맛을 본다는 것이 또 과식했다.

이렇게 먹다가는 이번 여행에서 돌아갈 때 2, 3kg이 늘 것 같았다.

 48도의 중국술이 나왔다.

 오사장님께서 신고식을 한다며 값을 치르셨다.

"식사에 서비스로 껴서 나오는 것이므로 일부러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데.."

미안하면서도 감사했다. 

 

 

 

 

   

 

6시쯤, 사쿠라호텔 룸으로 들어오니 가이드가 사준 과일을 덜어주고 가셨다.

"오늘저녁 이 자리, 내 앞에서 만난 것도 너희의 운명이리라..!"

  차에서 받은 바나나, 아직 싱싱한 카네이션을 같이 놓고 셔터를 눌렀다.

깨끗이 샤워를 하고 10시쯤 일찍 자리에 누웠다.

"제발 내일아침 7시까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게 해주소서..!" 안약을 넣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