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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있는오솔길/성지순례(111)

독뫼 공소(양지뜸) 성모동산 과 작은재 공소터/대전교구/17년2월22일(수)

               

                [대전교구]                         독뫼 공소(양지뜸) 터 성모동산

<충남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에 있는..>

 

 

 

 

천방산이 보이는 길을 지나 앞에 보이는

 문산면사무소로 들어가는 길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수암리로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이곳 독뫼공소터는..

재너머에 있는 산막골성지(판교면 금덕2리)와 왕래하도록 되어있으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시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가 있을 때에 서울, 경기, 내포지역 신자들이

 이곳으로 피해들어와 교우촌을 이루어 살던 곳으로

독뫼(음지뜸)에서 옹기굴과 숯가마를 이용하여 첨례를 지냈고,

 1899년 11월에는 뮤텔 주교의 사목 방문이 있었다.

 

박해시대 순교자 관련 기록에 의하면 독뫼 교우촌의 신자로는

이 암브로시오, 박 서방, 이 아폴로, 이 안드레아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3대째 교우인 이 암브로시오 독뫼에 살다가 비인 한터로 이사하여 살던 중

1866년 2월 비인 포교에게 붙잡혔다가 풀려난 뒤

 다시 독뫼로 돌아와서 살았다(병인치명사적 22권).

그의 부모 때부터 독뫼에 살았던 사실로 보아

독뫼 교우촌은 기해박해 전후에 형성된 것으로 이해된다.

 

 박 회장의 아들인 박 서방1869년에 이 암브로시오와 함께 잡혀

 순교한 점으로 보아 독뫼에 살던 신자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치명일기 146번, 병인치명사적 21권)

 

 본래 임천 취득이 사람으로 삼촌과 조카 사이인 안드레아이 아폴

 2대 3대 교우인데, 비인 한터로 이주하기까지 서천 독뫼에서 살았으며,

1866년 10월 12일에 삼촌 이 안드레아가 공주 포교에게 잡혀 순교한 뒤

이 아폴로는 다시 독뫼로 이주하여 1868년 5월에

경포에게 체포될 때까지 살았다(병인치명사적 17권).

 

그리고 이 안드레아가 1866년에 비인 한터에서 살다가

공주 포교에게 붙잡혔을 때도 이틀 동안 마을에서

 팔이 부러지도록 혹독하게 형벌을 받았다.

 

서천 독뫼에 살다가 비인 한터로 이사한 안드레아와 그 조카인 이 아폴로가

 1866년 2월 15일 비인 포교에게 체포되어 비인 관아에서

신문을 받았는데 두사람 모두 배교하고 3월 15일 석방되었다(병인치명사적 17권).

 

독뫼 공소 표지석에 독뫼의 순교자로 표시된 박 사도 요한 회장과

 박운서 바오로는 부자간인데,

아들인 박운서가 1866년 공주 포교에게 체포되자 아버지인 박 사도 요한이 자원하여

아들 박운서 대신 공주로 끌려가 순교했고(병인박해자순교자증언록, 정리번호 31번),

같은 해 5월에 아들 박운서가 다시 경포에게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5월 18일 좌포도청에서 심문을 받고 처형당했다.

(병인박해자순교자증언록, 정리번호 31번, 포도청 등록 하)

 

그런데 박운서의 거처는 자료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포도청등록"에는 본디 서천 구산면 태생이라고 했고(포도청 등록 하),

"치명일기"에는  서천 사람으로 남포 간재로 이사하여 살다가

붙잡혔다고 했으며(치명일기 192번),

 "병인박해순교자증언록"에는 서천 사람으로서 서천 정수동에 살다가 붙잡혔다고 했다

(병인박해자순교자증언록, 정리번호 31번).

 

그런데 "포도청등록"의 본디 서천 구산면 태생이라는 기록은 그가 태어난 곳을 가리키고,

 "병인박해순교자증언록"의 기록은 목격자 전 치프리아노가

 "치명일기"의 내용을 보충한 증언이므로

 '치명일기'보다 신빙성이 있으며, "치명일기"의 기록도 나름 근거가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들 자료를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이해하면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

즉, 박운서는 서천 구산면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아버지 박사도 요한이 그 대신 공주로 잡혀가 순교한 뒤 남포 간재로 이주했다가

 다시 서천 정수등으로 이사하여 살던 중에 체포된 것으로 이해된다.

서천 정수동은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정수동(정수골)으로 독뫼를 지나 산막골과 접한다.

 

작은재에서 살고 있었던 박 시몬은 독뫼에서 함께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독뫼 교우촌의 순교자들은 비인 한터로 이주하기도 하였고,

또 비인 한터에서 독뫼로 이주하기도 하였으므로 독뫼에서 함께 다루었다.

 

 

 


 

 

 

 

 

 

 

 


 

작은재 줄무덤 순례길

임도를 따라 오르다보면 작은재 줄무덤터가 나온다.

 

 

 

 

가는길에 십자가의 길이 있다.

 

 



 

 

 


 

 

 

 

이길로 넘어가면 산막골 성지가 나오는데

아래를 크릭하면 그곳을 볼수 있다.

http://blog.daum.net/rhchoi/7608346

 

 

 

 

 

금덕리 작은재 공소터

 

 

 

 

 

 

 

     나무마루 밑에 땅굴이 있는데, 곡식을 저장하는 공간.

         그 때 살았을 법한 주변 빈 집터 살강(찬장)흔적

 

 

 

 

찾아가는길

 

 

 

 

서해고속도로 서천 IC로 나와 문산면사무소전에서

좌회전하여 문산 저수지를 오른쪽에 두고 수암리 방향으로 가다

정수골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도로 끝까지 가면 

천방산으로 올라가는 산림도로가 나온다.

 

 산림도로 입구 왼쪽에 독뫼공소 기념비가 있고

오른쪽에 성모동산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