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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있는오솔길/성지순례(111)

성 루까 황석두 삽티성지../22년1월8일

 

 

부여 홍산에서 무량사로 가는길에 "삽티성지"라는 안내석이 보인다. 

그런데 그 위에 어느 종씨인지 모르겠지만 잘 지어진 사당이 눈에 확 들어오다보니

천주교 성지인 삽티성지라는 곳은 그냥 지나치는 우를 범할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더구나 십자가 색상이 흔히 보는 색이 아니라서 더 이상해 보였다. 

 

 

 

맨아래 주차장에 차를 놓고 걸어서 올라가보니..

 

 

 

위에도 두군데 주차장이 더 있다.

 

 

 

 

 

나무로 만든 십자가는 미세 먼지로 희뿌연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신자들에게 신앙이란 무었인가..?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한다. 

 

 

 

 

 

 

 

 

 

 

 

 

 

 

 

<삽티성지 안내>

이곳 삽티 성지에는 1790년대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하여 숨어 살았던 곳이다.

한국 천주교회가 초기 선각자 이존창 알로이시오 공사가 선생이 고향 예산 여사울에서

배척 받은후 홍산 지방으로 피신하였다.

이존창 선생의 비밀 선교활동에 의해 홍산 지방에서 천주교 신앙을 지니게 된 교우들이 

숨어 살기 시작한 곳이 이곳 삽티계곡이었다.

 

그 후 1850년대에 충북 괴산 연풍에서 배척 받은 황석두 루카 성인이 가족들과 같이

이곳 삽티에 이주 했다. 성인의 양자 황천일 요한과 조카 황기원 안드레아가 그들이었다.

 

황석두 성인은 인근 서천의 판교에 있는 산막골에 선교 거점을 삼은 선교사 페롱신부를 

보필하면서 옥산의 부덕리, 내산의 도앙골, 외산의 북두머니, 내대, 거칠, 옥가실등에 있는

신자들을 지도 하였다.

 

이후 병인박해를 당하여 1866년 3월30일에 보령 갈매못에서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와

같이 순교한 황석도 성인의 시신을 양자 황천일과 조카 황기원이 수습하여 그해 5월 29일에

여기 삽티에 안장하였다.

그후 1866년 말에 홍산 현에 체포된 황천일과 황기원은 서울에서 사형 당하여 순교했다.

 

황석두 성인의 시신을 삽티에 안장한 사실에 대하여 황기원의 딸 황 마르타가 1922년에

다음과 같이 증언 하였다.

"병인년 4월16일(양력 5월29일)에 나의 백부가 가서 시신을 가져왔다고 한다.

홍산 사피(삽티)에 묻었다. 지금은 자손이 없기 때문에 가더라도 찾지 못한다.

 

일제 강점기까지 삽티에 거주하며 옹기를 굽고 살던 신자들이 떠난 이후 교우촌은 사라졌다.

1964년 5월 24일에 산지 개발 사업중 허물어진 무덤에서 성물들이 발굴되었고

2012년부터 천주교 대전교구는 성물발굴지점을 중심으로 성역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