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산저산산이좋아/한양도성길을

궁안의 궁, 건청궁 특별개방 전시를 참관하고..//23년9월9일

 

 

고종의 공간이었던 "장안당"과 명성황후의 공간이었던 "곤녕합"전각 

내부를 직접 들어가서 관람할수 있는 특별기간이 9월18일(금)까지이다.

 

경복궁 근정전을 통과하여 경회루를 지나 향원정을 돌아보다 보니 어느새 건청궁에 이른다.

 

 

 

 

 

아장, 아장 걸어가는 애기의 걸음걸이가 너무 장해 보인다.

먼 훗날 이 애가 장성해서  이곳에 다시 올때쯤이면 이곳은 어떻게

변해있을지, 궁굼하기도 하다.

 

 

 

 

 

 

 

 

 

건청궁은,

1885년부터 1896년까지 고종과 명성황후가 생활한 곳으로 1887년에는 국내 최초로 전기를 생산해 전등을 밝혔다.

특히, 명성황후가 1895년 10월 일본군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난 장소이기도 하다.

이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1907-1909년에 철거된 것으로 파악된다.

지금의  모습은 2006년에 복원한 것이다.

 

<영국인 여행작가 이사벨라 비숍(1831-1904)의 여행기에서,>

호수 중앙에 멋있게 장식한 누각이 세워진 아름다운 인공호에 닿을때까지,

우리는 거의 8백미터 정도를 건축물 사이를 통과해서 걸어온 셈이었다.

이 근처에는 지은 지 별로 오래되지 않은 외국식의 궁과 당시 왕과 왕비가 기거하고 있던

단조로운 한국식 건물들이 있었다. 왕비가 기거하는 궁의 안뜰로 들어서는 문 앞에서 

궁중 통역관과 내시들, 궁녀들과(···)중년의 상궁이 우리를 맞았다.

노란색 비단이 드리워진 수수한 방으로 안내되어 우리는 곧 커피와 케이크를 정중히

대접받았다. 그 후 저녁식사 때는 상궁이 궁중역관의 도움을 받아 아주 아름답게 꾸며진

식탁을 주도해 나갔다. 저녁식사는  놀랍게도 서양식으로 차려졌다.

(···)조그마한 알현실에 들어갔다. 알현실 한쪽끝의 단상 위에 왕, 왕세자와 왕비가 세 개의 

진홍빛 벨벳 의자 앞에 서 있었다.

 

 

 

 

 

장안당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숨 돌릴수 있는

이곳은 곤녕합행각 툇마루이다.

 

좌측 초양문(初陽門)으로 들어가면 왕의 처소인 "장안당"이다.

 

 

 

 

 

 

 

내실로 들어가려면 실내화로 갈아 신고,

본인 신발은 주머니에 넣은 후 들고 다녀야 한다.

 

 

 

관람객들은 건청궁 내부에서 고종과 명성황후가 머무른 공간을 엿볼수 있다.

고종의 처소였던 장안당을 왕의 집무실과 생활실로,

명성황후가 지냈던 곤녕합을 왕비의 알현실과 생활실, 궁녀생활실 등으로 꾸몄다.

 

왕의 집무실,

장안당의 넓은 대청에는 국욍의 권위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 장지문을 설치하고

그 앞에 어좌를 놓아 의례장소로 사용했다.

 

 

 

장안당 대청 서쪽 온돌방,

임금이 신하들과 외교관들을 접견하는 집무실이다.

 

 

 

 

 

왕의 생활실,

온돌방 4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종이 생활했던 공간이었다.

안쪽은 왕이 잠을 자고 식사를 들거나 의관을 정제하는 사적공간이고

그 앞의 방들은 알현실이거나 내관들이 대기하는 장소이다.

 

 

 

 

 

복도에서 밖을 보면 이런 광경이..

 

 

 

 

 

 

 

장안당 복도각,

곤녕합 서행각으로 통하는 복도이다.

 

 

 

명성황후의 공간, 곤녕합(坤寧閤),

 

 

 

 

 

궁녀 생활실,

개다리소반, 유경등이 있다.

 

 

 

 

 

 

 

이곳을 방문할때마다 의미있게 보이는 곳,

장안당에서 초양각으로 나가는 문옆에 있는 조그마한 행랑채이다.

 

 

 

장안당에서 내실 관람을 마치고 나와,

함광문을  넘어서면 곤녕합이 나온다.

 

 

 

 

 

앞에 "옥호루(玉壺樓)"라는 현판이 선명하다.

 

 

 

 

 

 

 

녹금당(綠琴堂),

곤녕합의 뒷쪽에 있는 건물이다.

 

 

 

5-6월에 홍자색 꽃이 피는 해당화가 화단에 피어있다.

이제는 시들어가는 몇개의 꽃과 열매가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게 한다.

 

 

 

관문각지(觀文閣址),

고종 10년(1873)에 건립된 관문각터다.

장안당 뒤편에 위치한 관문각은 당초에는 관문당으로 불렸으나

고종 12년(1875)에 어진을 봉안하고 관문각으로 고쳤다.

 

 

 

고종 28년 러시아 건축가 세레친 사바틴과 친군영이 공사를 맡아 2층(일부는 3층)의

서양식 건물로 개축되었다. 관문각이 헐림 시기는 1901년 이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청궁 오른쪽으로 나가면 "자선당"기단과 주춧돌을 볼수있다.

자선당은 왕세자와 세자비가 거처하는 곳으로

일제시대 자선당을 철거해 일본으로 가져가서 사립미술관건물로

사용하던 중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고 기단과 주춧돌만 국내로 돌아왔다.

 

기단 옆에 있는 인공 산이 녹산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소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해설사의 안내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경복궁 주변의 풍속도이다.